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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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인 저자가 어렸을 적 부터 부모에 의한 가르침과 행동으로 다녔던 유교 회당에서 겪었던 기억이  대학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관심밖이었던 유대인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에 익숙해 질 무렵, 그들의 가정사의  일부 행사에 참여했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부탁을 받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8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속에서 그와 나누었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긴엔 작가와 동년배의 시대 사람으로서 또 다른 사람의 세월이 섞여서 그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져 있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 이런 부탁을 자신에게 왜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서 추도사를 쓰려면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랍비의 모습밖에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와의 인터뷰를 위한 긴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랍비 자신의 어릴 적 태어나던 해 부터 그 자신이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고, 랍비가 되기위한 도전에 한 차례 실패 후에 우연히 캠프 지도사로 나서면서 유대교 학자의 권고로 다시 랍비에 도전하게 된다. 이에는 자신이 몰랐던 그 만의 잠재력을 발견해 준 유대학자의 도움이 컸다.  

이후에 랍비는 작가와 매번 만나면서 그간  느끼고 생활에서 어려웠던 시기, 종교와 전쟁,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묻고 싶었던 작가의 질문에 삶의 철학을 들려준다. 자신이 처음 부임했던 현재의 회당의 주위엔 유대교 회당이 하나 밖에 없었기에 타 종교와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실천 운동을 한다. 서로의 종교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주차장에서 벌어진 카톨릭 신부와의 화해, 타 종교의 지도자를 초빙해서 설교를 듣게 하는 적극적인 행동도 보여 준다. 이렇게  철저한 유대의식에 입각한 실천 행동을 한 랍비였음에도 자신의 자식을 잃었을 때의 괴로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음을 신도 앞에서 고백하고 , 그것을 당당히 이겨 나갈 수 있었던 종교적인 힘도 솔직한 모습으로 신도들에게 말해주는 용기도 보여준다.  

작가가 종교가 갖고 있는 신의 존재가 과학의 힘으론 증명 될 수 없고 과학의 힘으로 보여주는 인류의 발전관계가 종교가 설명하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고 난 후의 랍비가 보여준  말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과 종교간의 교리 사이에 있는 해결 되지 않는 미완의 숙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위태한 상황도 맞게 되고 자신이 그 동안 모았던 스크랩, 종교를 떠나서  간직해온 아랍 교과서와 그 속에 담긴 가족 사진을  보여준 장면은 뜨거운 감동을 주게 한다.  

행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엔 원초적인 생각- 만족 할 줄 아는것, 감사 할 줄 아는 것-( 자신이 가진것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것들에 대해서  ) 

이에 작가는 뚯을 같이한 사람들과 기금을 모아 노숙자 쉼터지원을 하게 되고 그러던 중에 헨리 목사를 만나 또 다른 인생의 뚯을 알아간다.

 

 헨리 코빙턴이란 사람은 브루클린에서 7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나서 어릴 적  아버지는 마약상으로 살고 있었고, 엄마와의 싸움 끝에 엄마가 쏜 총을 팔에 맞아서 엄마가 교도소행을 가게 되면서 침례교회에 다니게 되고 그 곳에서 위안을 얻게 되지만, 성령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담배, 절도 , 강도짓을 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과실치사 혐의로 교도소 7년행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이 무얼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외면하게 된다.   

복역 후에 해충방제 회사에 근무하고 오랜 여친인 아네트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아 가듯 하지만 첫 아이를 잃은 후에 경제적인 어려움과 상실에 쌓인채 방황을 하게 된다. 마약상으로 많은 돈을 갖고 있는 형을 보면서 마약에 손을 대고 많은 부를 쌓아 가지만 자신도 마약을 하게 됨으로써 중독에 이르게 되고 결국 자신의 부하로 있던 사람에게 협박으로 마약을 얻어서 가지고 온다. 그러던 중 보복이 두려워서 집 쓰레기통 뒤에 숨어서 하나님께  이 현실에서 살아남게 해 준다면 모든 것을 끊을 것을 맹세하게 된다. 이후에 목사로서의 길을 걷던 그는 작가가 살고 있는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옛 교회를 구입해서 노숙자와 함께 전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작가와 헨리사이의 친밀감은 작가가 타인을 바라보는 기준에 의하면 적합하지 않은 자였다. 타인의 삶을 이끌 정도의 사람이라면 마약이나 감옥을 나오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고, 더군다나 그가 초대해서 간 교회에서의 시설도 비참하고 타의 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방식과도 달라서 지원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음을 솔직하게 내비치고 있다. 결국 랍비에게 이 사실을 말하게 되고 랍비 또한 종교를 떠나서 모두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특정의 누구를 골라서 도움을 주란 것은 없다는 말을 해 준다.   

결국 작가가 신문에 이들 교회의 사정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숙자들 개개인의 사연을 칼럼에 씀으로써 그 교회는 헨리의 말 따라 기적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수 많은 옷, 가방, 구두, 식량, 돈 지원) 

랍비의 평화로운 음율 소리가 끝없이 이어진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 하게 됨으로써 이승에서의 제 2의 스승인 그를 떠나보내게 되고 유대 회당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는 것으로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한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종교를 가지고 있든, 무신론자이든 간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땐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고 간절함을 구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책  내용중 인간은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는 말 처럼 ,평소엔 신을 외면하다가 어려움이 닥칠 땐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에 매달리게 된다. (랍비는 이러한 행동보단 평소에 꾸준한 기도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 과학이 날로 발전하고 인류의 기원과 타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의 힘으로 뭐라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과학이 증명해 내고 있을 때 우리는 종교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신은 존재한가? 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랍비는 과학이 발달해고 삶이 끝나는 순간 너머엔 뭐가 있을까로 물음을 제시하면서 생명이 다하는 지점, 바로 거기에 신이 계신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내가 믿는 종교와 타 사람이 믿는 종교가 달라서 오는 서로간의 서로의 교리가 맞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있어서 랍비의 처신은 참으로 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단 생각이 든다.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믿어야만 ' 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겸손하게 인정 할 줄 안다는 것(이것이 종교인들이 인정하기엔 참으로 어려운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이란 말엔 오랜 종교인으로서 교리를 받들어 생활 해온 종교인의 표용력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타계하신 법정 스님이 고 김 수환 추기경님이 초청해서 설법하셨던 명동성당이나, 법정 스님이 살아 생전 길상사에서 추기경님과 다른 종교인들의 초대한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종교의 기본 원리란 것이 결국 하나의 공통된 진리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가 있다. 또한 밥퍼의 주인공인 최 일도 목사님이 실천하고 있는 봉사 활동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갖고 있는 능력 안에서 최대한 같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베품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항상  좀 더 채우기에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그간 생각해 오던 , 아니 우리 모두가 생각해 오던 질문들- 타 종교 사람과의 결혼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 결혼 생활에서 오는 갈등 해소 문제, 돌아가신 분을 보면서,"아직 내 순서가 아니야", 하는 보이지 않는 죽음이란 문제 앞에서 느끼는 물음에 대해서 생각할 것을 많이 던지게 하고 그 물음에 아주 간단하면서도 쉽게 놓치고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문제의 해결을 명쾌히 말해 주고 있단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 요즘 우리나라에 슬픔이 겹친 경우도 그랬고, 책을 읽다 보면 옆 사람이 눈치 챌까봐 참고 읽으면서도 눈물 방울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는 간간히 랍비의 생활화된 유머와 종교자로서 갖고 있었던 진지한 태도, 경험이 어우러져서 읽는 도중엔 간간히 웃음도 나오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영원이라는 안식처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어릴 땐 몰랐던 삶의 귀로에 대해서도 진지한 물음도 갖게 되고 공허함도 느끼게 된다. 랍비가 말한 것처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단 말엔 일말의 공통된 공수레 공수거란 불교 용어도 생각나고, 종교에 의해서 치러지는 전쟁은 결국 인간들이 종교의 교리를 어기고 한다는 말엔 공감이 많이 와 닿는 느낌이다.  

8년이란 세월 동안 랍비와 나눈 대화는 결국 과오를 뉘우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헨리에게 까지 그 연결고리가 이어짐과 신도들이 그를 렙 이라고 부른단 사실에선 두  사람의 종교 지도자가 작가를 중간고리로 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어준  인연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작가가 진정한 유대인의 종교를 다시금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점과 그 이후의 행동으로 기부 활동을 하게 됨은 작은 씨앗이 번져서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단 희망도 엿보이게 한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종교를 대하는 태도와 그 실천 행동에 대해서 잘못한 점을 알게 되고 반성하는 기회도 가져 온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그의 솔직 담백한 고백과 더불어서 쓰여진 책이라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고 감동의 여운이 책을 덮고서도 한 동안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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