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리언 그레이를 바라 본 화가 바빌 홀워드는 그의 미모에 반해서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전시회 출품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미모에 빠진다. 그의 친구인 헨리경이 구입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헨리경 또한 도리언의 미모에 감탄을 하면서 그의 천부적인 언변을 늘어놓아 그의 미모에 찬사를 보내면서 다양한 쾌락을 제시해준다. 이에 순수했던 청년의 가슴에도 자신의 빼어난 미모로 인한 자신감과 자신의 초상화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흐름속에 자신 또한 언젠간 늙어가는 추한 모습으로 변할 것이란 사실에 맘 속으로 하나의 희망을 품게 된다.  

바로 불변의 영원토록 늙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되, 대신 초상화가 세월을 대변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은 곧 뚯한대로 되고 점차 도리언은 다양한 방식으로 쾌락을 즐기는 삶을 영위한다. 그런 와중에 연극을 하는 시빌 베인이란 여인과의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그런 그녀를 보여 주고자 헨리와 바빌을 연극에 초대하지만 그녀는 엉망으로 연극을 망친다.  설상 가상으로 도리언으로 부터 결혼취소와 냉대를 받은 그녀는 자살을 하게 되고 이 일로 괴로운 도리언은 오히려 헨리의 능수능란한 변론으로 위로를 받게 된다.  

어느날, 집에 있던 자신의 초상화를 들여다 본 도리언은 그림의 자신 모습이 입술이 일그러지고 점차 변해가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집의 제일 위에 있는 방에 그림을 옮겨 놓고 천을 둘러치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도무지 맘을 잡을 수 없던 그는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위한 탈출구를 찾게된다.각종 파티, 종교, 예술활동, 향수와 그 제조방법, 음악 , 보석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로 해소를 하지만 이것도 한 순간 일뿐, 런던을 벗어나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교외의 지역으로 까지 가서  아편에 절은 생활을 하게 되고 주위의 사람들부터도 점차 멀어지게 되며, 지인들의 생활까지 망치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 

그러던 중 파리로 가는 도중 들른 바질의 충고를 듣고 자신의 초상화 때문에 이 모든일이 벌어졌단 생각에 초상화가 있는 그 장소에서 그를 살해하게 된다. 이 시체 처신을 한 때 왕래가 있었던 친구 알런 켐벨에게 협박조로 부탁을 하게 되고 그 사건은 점차 사람들로 부터 잊혀지길 바라게 된다. 

그러던 차에 런던의 외진 부두에서 마약을 하는 소굴에 갔다가 그 곳에서  시빌 베인의 동생인 제임스의 공격을 받은 충격과  사냥터까지 따라와 그를 헤치려던 그의 죽음을 보면서 선 행동을 한다면, 그간의 자신의 행동을  용서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헨리경에게 자신의 이런 행동 의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자신이 살햊범이란 말을 내비치지만 헨리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꼭대기 방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한 동안 보지 않았던 자신의 초상화를 다시 보게된 그는 점차 자신의 추한 모습으로 계속 변해버린 초상화를 보고 이 초상화만 없다면 자신의 변한 모습과 다시금 새 생활을 함에 있어서 방해가 될 것이 없어질 거란 생각에 칼을 들고 초상화를 찢는 행동으로까지 번진다. 

한 밤중에 비명을 들은 하인들이 창을 통해서 들어간 그 방에선 미모의 모습을 간직한 초상화가 있고 누구인지 모르지만 피를 흘리며 가슴에 칼이 꽃힌채 죽어있는 늙은 모습의 남자를 발견한다. 그의 손에 끼여 있던 반지을 보고서 비로소 그가 누구인지 알게된다. 

 

오스카 와일드 자신이 자신의 내면적 이야기가 많이 있는 이야기라고 밣혀서 그런진 몰라도 첫 장면에서 헨리경이나 바질이 반한 그 청년의 모습 표현은 흡사 그의 동성애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19세기의 상황을 잘 드러낸  아주 긴 문장(만연체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과 그 속에서 어루어져 나오는 유려한 문체와 대사는 마치 19세기를 옆에서 보는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인간의 한 없는 늙어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문장 대사 곳곳에 나오고 결혼관이 헨리경의 입을 통해서 나태내고 있다.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기만하며, 사랑을 시작하고 상대방을 기만하며 사랑을 끝내지. 세상 사람들이 로맨스라고 말하는 것, 바로 그런 거라네.) (결혼 생활이란 그저 습관 , 그것도 나쁜 습관에 불과하지만 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닌 최악의 습관조차도 막상 잃어버리고 나면 후회하는게 바로 인간이란 족속 아닌가?) ( 노년의 비극은 사람이 늙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 겉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다는 데 있지.) 

 인간의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하는 미의 추구역사 앞에서 도리언이 원하는 바가 그대로 이어지는 , 즉 초상화가 세월의 흐름을 따라 늙어가고 대신 자신은 항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도리언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시대라면 과연 이런 도리언의 행동을 비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형의 천국이고 대한 민국 남.녀라면 누구나 한 두곳은 예사로 알고 맞는 보톡스부터 미용성형에 관대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해 보면 성형을 함으로써 좀 더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기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인상을 갖기 위한 노력의 방편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거란 생각이 든다.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나타난 이 소설이 현대에 나왔다면 아마도 그 당시 그가 받았던 비난은 안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상상을 뛰어넘는 가상 현실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는  이 소설을,  내용은 시대를 너무 앞선 나머지 그 당시엔 너무 획기적이고 또 동성애란 취향을 가진 그였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미를 추구하고 영원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도리언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항상 불안, 초조, 그리고 마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외로움이 자라고 있는 것을 나타낸 그의 글 솜씨는 읽어 내려가는 동안 환상과 현실, 유미적인 예술의 가치를 보여준다.  

읽는 동안 내내 그의 생각이 이러했구나 하는 글은 그간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술적인 반박문에서도 그 뚯을 잘 나타내주는 서문이 있기에 일단 책을 읽기 전에 서문을 읽고 들어간다면, 좀 더 그의 사상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자이다.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비평가는 아름다운 사물에서 받는 인상을 다른 방식으로 혹은 새로운 재료로 옮겨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비평의 가장 저급한 형태이자 가장 고급한 형태는  자서전적인 양식이다.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추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매력적인 면모가 없는 추악한 사람이다. 

이것은 결함이다.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추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교양있는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물은 오직 아름다움만을 의미 한다.  

도덕적인 책이라거나 부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을 잘 썼거나 잘못 썼거나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실주의에 대한 19세기의 혐오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칼리반의 분노다. 

낭만주의에 대한 19세기의 혐오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지 않는  칼리반의 분노다. 

인간의 도덕적인 삶이 예술가의 주제 가운데 일부를 형성하는 반면, 예술의 도덕성을 불완전한 수단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어떠한 예술가도 무언가를 증명하길 원하지 않는다. 

진실한 것들조차 증명 될 수 있다. 

어떠한 예술가도 윤리적인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윤리적인 동정심을 양식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매너리즘이다.  

어떠한 예술가도 결코 병적이지 않다. 예술가는 모든것을 표현 할 수 있다.  

예술가에게 생가과 언어는 예술의 도구이다.  

예술가에게 악덕과 미덕은 예술을 위한 재료이다. 

형식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예술 양식은 음악가의 예술이다.  

감정의 관점에서 보면, 배우의 기교가 그 양식이다. 

모든 예술은 표면인 동시에 상징이다.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다. 

상징을 읽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다. 

예술이 진정으로 반영하는 것은 관객이지 삶이 아니다. 

예술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은 그 작품이 새롭고 복합적이며 생명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비평가들이 인정하지 않을 때 예술가는 자기자신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유용한 것을 만든이가 그것에 감탄하지 않는 한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에 열렬히 감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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