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평점 :
전작인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란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지구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가 초래한 무시한 반 인륜적인 행태 고발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직 유엔 식량자문위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은 토대로 이번엔 좀더 강한 팩션으로 저술한점이 눈길을 끈다. 각 장마다의 제목이 결코 무심히 넘어가지 못하게 단 것도 눈길을 끈다. 명색히 국제법이 있지만 인권면에선 구속력행사를 실제론 할 수가 없는 유명무실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다만 결의안을 표시하는 것으로 무마된다는 것에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1948년의 프라하 쿠데타로 인해서 점차 냉전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인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더욱 얼어붙게 했으며,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이 펼치는 (지글러는 이들을 세계지상주의자 라 불렀다.)에 그나마 대결한 만한 상대로 지목한 단체로는 울며 겨자먹기로 알카에다를 지목한 점은 현재 지구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 현실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전체 지구를 북반구와 남반구로 나뉠때 전체 북반구의 인구를 살리는 몫은 전적으로 남반구의 사람들이며 이들은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인 부채라는 짐을 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부채를 제공하는 원인으론 세계화지상주의자들(외국 채권자들). 과 국가의 지배계층 구성원, 즉 매판상인이라고 불리는 콤프라도르(사들이는 사람들 이란 뚯이란다.)가 보호하는 지도자급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국주의 산물로서 제국시절 그들을 돕다가 자주를 찾은 후에도 유대관계를 지속함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권위,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말한다. 위의 사람들은 모두 채무국 현지에서 지도자와 현지 간부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서 서로의 이익을 추구해나간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아무리 농작물이 천연적인 자연의 재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풍년을 이룩했다해도 부채라는 짐을 이고있는 시지프스의 거인처럼 자국의 교육, 도로, 항만, 병에 대한 예방 처방을 위해 쓰일 자금을 모일 새가 없이 바로 빠져나가는 뫼비우스 띠의 형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부채가 낳은 부산물인 기아는 현실 세계에서, 특히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 널리 퍼져있는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이디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소규모의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는 농작경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거대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외에 여러 커피 메이커의 대명사인 회사들의 기막힌 상술에 의해서 거의 거리에 내몰릴 상황까지 몰아간다. 가격 폭락을 조장하고 그 커피로 다시 여러 형태의 커피를 생산함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생산지에서의 이루어지는 이익금을 그 나라에서 소화시키는 것이 아닌 달러나 그에 상응하는 다른 화폐로 바꾸어 본사가 있는 스위스 바젤에 입금시키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가격 폭락속에서도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이 내몰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기위해서 서로 협동하는모습인 이디르(장례모임). 이쿠브(소액대출 네트워크), 데바(노동조합 동업자) 를 통해서 약간의 희망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남미의 전형적인 라티푼디움은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나라에서 고질적으로 내려져오는 농장 경영방식이다. 이것은 끝없이 헤어나올 수 없는 노동의 노예로서 평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으로 브라질의 대통령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겪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가아제로 프로그램실사를 하고자 했으나 현재로선 실패했다는 말이 거의 기정 사실이란 글엔 인간의 어떤 불굴의 의지도 수 백년간 지속된 악습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몇 십년 전만 해도 그다지 많지 않던 부채의 액수가 현저히 계속 늘어나는 구조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국가의 치안과 통합발전이란 두 가지로 인해서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룰라 대통령은 완전 자유방임주의와 극빈 가정들에 대한 지원을 동시에 진행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즉, 최소힌 굶주린 자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가능하다는 일말의 희망 정책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지역에 쓰레기더미와 쥐들 , 가종 병충들로 범벅이 된 브라질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먹는 것의 중요함은 물론이고 제국주의에 물든 관료들과 공무원들의 행태가 어디에고 있는 인간 말종들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내내 씁씁함을 지울 수가 없다.
유엔의 각종 회의가 시작될 즈음이면 보이지 않는 적들의 일사 분란한 매수 작업이 시작이 되고 인사 결정권에까지 침투하는 강대국과 그 곁에서 각종 이익을 추구하는 네슬레를 비롯해서 노바티스란 거대 제약회사의 이중적인 양면성의 기업형태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다발적으로 지속적인 형태의 질병인 수면병, 댕기열의 경우엔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질병이 분명한데도 수요가 극히 적고 이익이 적다는 이유로 제약 개발을 서두르지 않는 제약회사의 악형태엔 어떤 유엔 차원에서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소홀히 다뤄지는 병" 이란 이름이 붙은 이 질병들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어떤 기본적인 권리 조차도 박탈당한다는 기본 원리가 깔려있다 . 책 구절중 "뉴욕에 말라리아가 생기지 않는 것이 유감" 이란 말엔 소수의 강대국들의 이기심과 극히 이중적인 면에서 극에 달함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유전자 변형으로 큰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종자회사인 몬토사의 소송행태는 99를 가진 자가 1을 더 해서 100을 채우고자 하는 놀부심보랄수 밖에 없는 행동을 보여준다. 개인 농부를 고발하고 그 소송에서 승소하기 까지, 그리고 모유보단 소에서 나온 우유가 더욱 좋다는 식으로 일부 아프리카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분유무상제공형태, 그것이 끊김으로서 모유도, 분유도 먹을 수 없게 된 영아가 사망하게 되는 과정은 손에 주먹이 절로 쥐어지게 만든다. "세계의 절반은...에서는 할아버지나 , 아버지가 곁에 손자 , 자녀들을 옆에 앉혀놓고 차분히 세계의 돌아가는 식량정세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라면 이 책은 좀더 과감히 세부적인 이름까지 나열해서 가면을 쓰고 행하는 이중적플레이에 대해서 쓰고있다. 몰랐다면, 그러려니 했을 세계의 돌고 도는 식량에 대한 원조와 그 뒷면에 감춰진 강대국들의 이익에 맞춰서, 아니 거대 다목적 기업의 위협에 두 손든 강대국들이 전방위적으로 행해지는 꼭두각시 놀음에 힘없고 순수하게 오직 자신의 할 일만 추구하는 소박한 민초들의 삶만 여지없이 사라져간다. 이들의 악랄한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선 지금도 조금스런 움직임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안되고,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자고 외친다. 인도사람들의 미국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이야기나, 베트남의 고엽제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법정투쟁같은 것은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이처럼 깨어 있는 의식들의 단결을 통해서 전 지구적인 새로운 시민의식이 생겨나고 활동이 활발해 진다면 먼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아닐것이란 희망의 메세지를 던짐으로써 이 글을 끝맺지만 , 책을 덮고서도 쉽게 놓을 수가 없는 휴유증을 남긴 책이다. 과연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즐겨 마시던 커피를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