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작가 중에서 유머가 깃든 작품을 잘 쓰는 작가를 고르라면 성석제 작가와 이기호 작가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적인 피곤함에 절어있는 독자들에게 얼핏 보면 유머와 해학이 들어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뭔가 톡 쏘는 맛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력면에서도 결코 해외 작가들에 비해 뒤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11년 만에 장편소설로 돌아온 저자의 신작, (이번 대산문학상 수상 축하합니다.) 비숑이라 불리는 강아지 이시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동물의 인생과 곁들여 함축적인 의미를 다시 느껴보게 한다.



타이어 공장에서 퇴직한 아버지가 어느 날 데리고 온 비숑 강아지, 이름이 이시봉이라 했다.



시봉아~도 아닌 이시봉~이라고 불러야만 달려오는 강아지,  피자집을 열면서 가게를 함께 지키던 이시봉이를 구하려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 후 시봉의 주인이자 작품 속 주요 인물인 시습을 비롯해 세 가지 이야기가 가지치기하듯 펼쳐지는 내용은 역시 이기호 작가답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우연히 이웃인 리다가 올린 이시봉이 고양이를 구하는  영상을 본 앙시앙 하우스로부터 순수 혈종이라며 이시봉에 대하 거래를 제안해 온 그들의 사연, 이시봉의 먼 조상부터 거슬러 올라가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가 왜 강아지 이름을 이시봉으로 지은 이유가 밝혀지는 내용은 서로 연관된 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들을 알기에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면서 그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지만 강아지 또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못 하지만 주인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순수한 눈망울과 꼬리 흔들기, 침을 흘리면서도 펄쩍 주인에게 뛰어오르는 행동들이 인간들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향대로 해석하고 오역하며 오해하면서 다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던진다.




- "개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에 들뜨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희망만 면밀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도 서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희망은 대부분 상대와 관계없이, 상대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대부분의 희망은 권태에서 온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땐 상대를 아예 파멸로 몰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상처받는 쪽은 되레 자기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 p 204 




순수혈통이란 명칭도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장치요, 동물들이 나를 이렇게 족보 있는 개로 올려달라고 하지 않았기에 작품 속에서 보인 인물들이 보인 복잡한 감정선들은 양심과 욕심이 난무한 인간의 세상을 비쳐 보인 듯하다.




시봉, 시봉, 이시봉이 내내 입가에서 맴돌면서 읽은 작품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에 대한 인간들의 무심함과 그런 무심함과는 달리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세상은 살만하다고, 20대 청년과 그 가족들이  반려견과 함께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경각심과 동반자 가족이란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별도 있게 마련이지만 이시봉과 시습의 가족들이 이제는 편안함을 가지며 살아갔음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실제 저자의 강아지 이름이 이시봉이라는데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들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라 시봉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 투쟁의 시간들을 다룬 내용들은 여전히 유효한 삶의 형태로 이어짐을 보인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