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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평점 :

하루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는 예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것들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만큼 단어들 또한 우리들 곁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조어나 짧게 머리글만 따서 불리는 단어들이 입에서 입으로 자연스럽게 불린다.
지금은 우리나라 고유의 말도 일상화로 다시 쓰이는 단어도 있지만 사어로 우리들 삶에 사라진 단어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어의 생성과 소멸들의 시간을 되새겨보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찬 역사를 바탕으로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에즈미란 주인공의 성장사, 남성 위주의 사전편찬작업을 하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남성들과 함께 작업을 도우면서 여성들이 실제 사용하는 단어를 모으는 일까지 전반적인 그녀의 생을 통해 단어가 품은 정의와 쓰임새에 대한 생각을 던진다.
엄마를 잃은 어린 에즈미가 편찬작업을 하는 아빠 곁에서 단어공부를 하던 '스크립토리엄'은 그녀의 생활터전이자 성장하는 곳으로 머리박사를 위시해 많은 조수들이 각지에서 온 많은 쪽지들과 그에 합당한 예시들을 찾아가며 분류하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곳이다.
우연히 그녀가 바닥에서 주운 쪽지에 적힌 단어는 'Bondmaid (여자 노예)였고 그 의미는 머리 박사 집에서 집일을 도와주고 있는 '리지'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트렁크에 차곡차곡 단어들을 수집하는 에즈미는 이후 연극을 하는 틸다, 빌, 메이블을 만나면서 페미니즘 운동과 실제 생활에서 여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힌다.
실제 그녀가 겪은 임신과 출산, 입양,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딛고 다시 연필과 쪽지를 지니면서 작업에 몰두하는 과정은 그 당시 남성들에 의해 채택되고 사용된다는 단어의 한계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 속에 다듬어진 잃어버린 단어들을 모은 것을 토대로 하나의 사전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이는 자신의 뜻을 알아봐 주고 응원해 준 조판공 개러스의 사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드러난 사전편찬이란 진행이 우리가 쉽게 펼쳐서 사용하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느껴보게 한다.
하지만 남성들 위주의 채택된 단어가 많았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에즈미가 이런 허점을 보완하면서 여성들의 단어를 찾아주는 여정은 수용하고 품어주는 단어의 생명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여기엔 사회와 관습적인 문화가 기준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는 언어라는 것이, 단어와 단어가 서로 어울리면서 고립된 독자적인 의미가 아닌 서로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단어에는 끝이라는 게 없다. 그 의미에도, 그것들이 사용되는 방식에도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들의 역사는 너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현대의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원본의 메아리, 혹은 왜곡된 버전을 듣고 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종종 그 반대로 생각하곤 했다. 기이하게 생긴 옛 단어들은 그것들이 결국 취하게 될 형태의 서투른 초안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 시대, 우리의 혀 위에서 빚어지는 단어들이야말로 진실하고 완결된 것이라고. - p.295
지금도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사용하는 우리들이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라 의미 있게 다가온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