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사료편찬관
마엘 르누아르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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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의 총애를 받은 적도 잃은 적도 많았다. 어느 경우든 대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콜레주 루아얄에서 장남 왕세자와 같은 학급에 배정되었다.” _ 9p



아프리카 모로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의 박차를 가하던 시기, 15살의 한 소년이 아무런 연고와 이유도 모른 채 왕국의 왕세자와 함께 공부하는 동급생으로 선발되 콜레주 루아얄에 들어간다.



미래의 왕으로 등극할 왕세자를 보필할 인재 양성이란 목표아래 공부를 하던 그 시절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를 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둔 그는 조국에 돌아온 후 독립국이 된 선위 술탄의 왕정에서 교육부 장관실 기술 고문으로 일하게 된다.



몇 년 후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고 동기들이 요직에 오르면서 그 자신도 기대를 했으나 그 기대는 특별히 만들었다는 직무라며  유배나 다름없는 외진 타르파 지역 교육 감독관으로 떠나게 된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따른 당혹감, 왕에게 밉보인 말이나 행동을 했던가에 대한 무수한 억측과 반성들 내지는 의혹들을 안고 7년이란 세월을 보낸다.




- “왕은 자신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싫어해. 그와는 어떤 관계도 불가능하지. 수준이 좀 떨어지는 신하를 대할 때는 지적으로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찾으려 안달하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그를 없애지 못해 안달하지. 누구도 감히 그에게 그늘을 드리워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이후 왕의 부름을 다시 받은 그는 왕국의 사료편찬관이란 직에 임명된다.




실총이 은총으로 바뀌는 순간, 그는 왕의 명을 받아 충실히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자신이 그동안 쌓은 지식을 십분 발휘하여 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실총으로 바뀔지 그에 따른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능력에 대한 이 같은 오마주는 물론 나를 안심시키고 격려하는 것일 테지만, 이 표면적인 경의의 배후에서 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완벽한 짜 맞춤이 어쩌면 표적 조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무기의 조준장치에 맞춰 놓고 언제든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세심하게 고른 표적 말이다.





더군다나 쿠데타와 왕정에 대한 불만들을 갖고 있는 세력들의 활동, 한눈에 반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왕국과 왕에 대한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반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이것이 과연 진정한 그녀의 생각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한다.




모로코의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를 배경으로 다룬 이 작품은 왕국의 사료편찬이란 직책을 수행하면서 겪은 그 시대를 회고하는 한 편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모로코라 하면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릴 만큼 서양과 아프리카의 연결고리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열강들의 침략을 받은 역사의 흔적은 이슬람 왕정 아래 우여곡절의 고비고비를 넘긴 압데라마네란 인물의 회고를 통해 프랑스와 스페인, 자국의 시대를 고스란히 겪은 시대적인 흐름들의 펼쳐진다.




이유도 모른 채 은총에서 한순간 실총으로 떨어지는 인생살이, 체스판에서 왕을 이길 수 있지만 이기면 안 되는 교묘한 줄타기의 순간은 핀이란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언제 나이트나 룩, 킹에 의해 장 밖으로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긴장감의 연속들이 펼쳐진다.




특히 후반부에 선대 왕인 물라이 이스마엘에 대한 축하 기념에 대한 명을 받았을 때 그가 받은 압력감들은 공포와 칭찬이란 양 갈래의 길 속에 어떤 행보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뇌와 실제 프랑스 사료편찬에 관여했던 볼테르, 라신을 비롯해 프루스트, 생말로의 회상록, 천일야화를 통해 꿈과 환상, 여기에  주인공을 통해 모로코 역사를 관통하는 국내의 불안정한 분위기까지를 역사 소설처럼 그린다.




왕을 위해 위기의 순간 나이트, 룩이 되기도 했던 그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왕에게 충성하던 그 시기, 지적인 능력을 모두 갖췄음에도 왕의 말 한마디, 행동 한마디를 모두 캐치하고 담당해야 했던 인생의 파고는 실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만을 써야 한다는 직책에 대해 어떤 중압감을 느끼는지, 왕 말 한마디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는 불안한 나날들을 역사적 사실들과 풍부한 수사학적 글로 느낄 수가 있다.




특히 실제 정치사란 역사와 문학 작품들을 연결해 등장인물이 경험하는 다이내믹한 인생 행보는 한 편의 모로코 역사 외에 프랑스사를 엿볼 수 있는 후반부가 인상적이다.




'납의 시대'란 별칭이 붙은 가혹한 정치를 펼쳤던 하산 2세의 곁을 지켜봤던 압데라마네의 시선으로 그린 이야기는  역사가 있고 인간이 그 역사 속에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인생역정을 그린 작품이라   저자가 기울인 조사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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