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 윌리엄!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살아가면서 내면으로 간직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 중에는 굳이 꺼내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설령 그것이 타인에 의해 의도치 않은 행동과 말 때문에 나 자신의 입으로 표출해내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루시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여성이다.
첫 번째 남편 윌리엄과 이혼 후 재혼을 하고 그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전 남편이지만 그들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두 자녀가 있기에, 이제는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란 상처를 시간 속에 흘려보내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작가로 성공했고 윌리엄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 그녀가 보인 행보는 윌리엄이 세 번째 부인이 딸을 데리고 나가면서 초췌해지고 꿈을 통한 공포에 시달리는 그를 보는 마음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친구처럼, 때론 걷잡을 수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연민으로 나타난다.
그녀 스스로 투명인간처럼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윌리엄이 부모에 대해 생각하는 점들은 비록 둘의 상황이 다를지언정 마음의 고통이란 점에선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껴보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특히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 당사자만 안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루시가 윌리엄과 그의 배다른 누나를 찾아가는 여정엔 부부로 살아오면서도 미처 상대방에 대해 전부 알고 지내지 못했다는 사실들을 느끼는 점들은 모든 인생에는 타인과 나의 사이, 심지어 나 조차도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던진다.
특히 윌리엄이 말한 선택과 자유에 대해 말한 대목은 공감을 일으킨 장면이다.
나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부분들이 결국은 인생 전체를 비춰볼 때 얼마 큼의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부분들,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정말 자유 위지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루시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읽는 독자들 또한 자신에게 물어보고 있지 않을까?
전작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도 그린 바 있는 그녀의 삶에 대한 고통들은 시어머니 캐서린의 자라온 환경이 드러난 장면과 마주했을 때의 일말의 배신감이 들었겠단 생각이 든다.
저자의 글은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굴곡진 인생을 담아내지 않는다.
우리들의 인생 단면 단면을 베어내듯 그것을 통해 상처와 화해, 용서, 그리움에 대한 회상들을 일상의 패턴으로 모아진 그림처럼 다루기에 실제 그녀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누구나 그러할 수도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의 권위적인 윌리엄의 모습이 더는 그 권위의 빛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루시의 마음, 한 사람의 인생에는 이렇듯 겉으로 보이는 빛의 이면엔 결핍과 상처로 가득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그려낸 내용은 기존의 타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읽는 동안 이혼한 부부 사이엔 이렇듯 우정 비슷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구나를 생각하게 했다.
자녀란 끈이 있기에 완전한 남남이 될 수 없음을, 그렇기 때문에 루시가 자신의 성인 바턴으로 돌아오고 한때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란 관계에서 무덤덤한 애정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관계를 통해 인생에 대한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껴보게 된다.
-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p 298쪽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길 위에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 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용서와 화해, 이해를 통한 성장, 그것이 또한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말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