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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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작가와 그의 작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미로를, 목적지와 출발지가 구별되지 않는 긴 순환로를 함께 걷는다. 그 길은 바로 고독이다- p 15



첫 문장부터 강렬한 느낌과 호기심을 불러 넣은 글로 2021년 콩쿠르 수상작이자 1976년 수상자 이후 역대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얻은 모하메드 음부라그 사르의 작품이다.



매년 콩쿠르 수상작이 발표되면 빠른 시일 내에 읽어 보고픈 마음이 드는데, 예년에 비해 빨리 출간됐다는 사실부터 반가웠고, 프랑스어권 내에서도 아프리카 출신으로 수상한 이력 또한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2008년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지닌 주인공 디에간 라티르 파이는 흑인문학 개설에서 풀네임조차 알려지지 않은 T.C 엘리만이란 인물의 작가가 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란 작품을 알게 된다.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단 한 편의 책만 출간한 채 사라져 버린 작가, 출간 당시 '흑인 랭보',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이란 찬사를 받았던 그는 찬반의 동시 다발적 평가를 받게 된다.



한 프랑스 교수가 밝힌 그의 책은 아프리카 바세르 족의 신화를 베껴서 썼을 뿐 독창성은 없다는 주장과 각기 다른 책들 속에 표현된 문장들을 그대로 짜깁기해서 전혀 다른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주장, 즉 표절에 대한 근거를 밝힌 내용들은 프랑스 문학계에 커다란 스캔들로 커진다.



이에 출판사는 문을 닫고 엘리만은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된 상황은 그의 작품을 읽은 디에간이 이후 작가로 파리에 데뷔하면서 그의 행방을 찾는 여정이 그려진다.



우연히 만난 60대의 세네갈 여성 작가 마렘 시가 D. 가 갖고 있던 세상에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엘레만의 작품을 읽은 그가 세상에서 평가된 엘레만에 대한 실체와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추적하는 진행을 다룬 글은  삼부로 나뉘어 그린다.



 디에간이 시가를 통해 엘리만과 그의 책을 만나는 과정, 2부는  그녀로부터 듣는 엘레만과의 관계를 듣는 내용, 3부는 다카르에 온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프랑스 지배 하에 영향을 받은 세네갈을 배경으로 식민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흑인 지식인들의 삶을 통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세레즈족의 쌍둥이 형제의 각자의 인생 행보를 통해 아프리카가 지닌 영향을 그대로 이어간 우세누와 프랑스로 건너가 백인화 되고자 한 아산의 이야기는 그들의 자녀인 시가와 엘레만에 이르는 영향을 보인다.



양차 대전을 통해 아프리카 병사로 차출된 흑인들의 생애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관통하고 프랑스 문단에서 백인과 같은 문학을 지향하고 있지만 서구의 시선이 여전히 그들만의 잣대로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들은 프랑스어 권에서 활동하는 흑인 문학권에 대한 현지의 모습처럼 비쳐 보인다.



이는 엘레만이 자신의 문학적인 면에서 작가로 봐줄 것을 희망한 것과는 달리 출신과 피부색, 개인사에만 치중해 보는  시선에 대한 비판은 물론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구도로 이어진다.



 표절이란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엘레만이 짜깁기해서 창작한 작품 자체가 그것 또한 기존을 허무는 하나의 도전으로서 창작 작품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는 엘레만의 주장은 글을 쓴다는 것과 글을 씀으로 해서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을 경지의 단 하나의 작품을 갖고 싶다는 작가들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답다'는 문학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인 편견은 서구의 잣대로 틀에 맞춰져 만들어진 작품으로 출간된 것이 아닌 엘레만처럼 서구의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문학이 그들에겐 하나의 충격이자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라는 점은  시가와 디에간, 무심브와의 행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서구 문단에  몸담고 서양의 시류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문학을 추구하고자 한 디에간과 고국을 등지고 비난을 감수하며 자신만의 글을 쓰는 시가와 고국에서 아프리카만의 문학을 통한 고유의 자신의 문학을 지향하려 한  무심브와의 행보는  비교될 수 있는 장면이다.




책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미스터리를 취하면서 독자들에게도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와 그 의도가 제대로 오독으로 읽혀졌을 때의 방향키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현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의 진행형(반정부 시위)을 함께 그려냄으로써 역사와 문학 간의 관계, 우리 삶에서 문학이 주는 힘과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전반적으로 책 제목부터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오마주 했으며 실존과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엘레만 찾기라는 미스터리 장치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내용들을 독자들을 붙들어 놓는 데 성공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엘레만이 간직한 은밀한 기억들을 찾는 과정에서 디에간을 대표하는 작가들 각자가 바라는 글쓰기에 대한 깊은 고민들은 창작이란 일연의 과정을  통해 그 고통을 즐기고 완성했을 때의 희열감들에 대한 성취감, 무엇보다도 단 하나의 근접할 수 없는  작품을 갖고자 하는 것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린 작품이라 전문 작가님들이라면 많은 공감을 사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다시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당신은 다른 것, 굴러다니고 달아나는 다른 것, 당신 앞에 놓인 다른 것의 반향과 함께 길 위에, 고독 속에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벽을 기약할 수 없는 밤 속에서 언제나 다른 것을 요구한다. --P. 60




-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질문을 찾아야 한다. 왜? 삶의 의미를 드러내줄 답을 얻으려고? 아니다. 삶의 의미는 삶이 끝날 때에야 드러나는 법이지.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순결하고 손댈 수 없는 질문의 침묵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그것 말이다. - P. 158~159

- 문학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늘 흔들고 마는 딜레마. 쓰기와 쓰지 않기 -P 539





문학을 접하다 보면 쉽게 적응하며 읽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는 동안 연신 질문과 스스로 해답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나에겐 이 작품이 그러했고  문장마다 인상 깊은 구절이 많았던, 엘레만이란 인물을 대변해  글쓰기와 문학의 관계를 이처럼 능숙하게 독자들을 이끈 저자의 필력이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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