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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917/pimg_7136731163560477.jpg)
몽족_
흔히 중국인들이 멸시 조로 말하는 표현에 의하면 묘족, 먀요족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동안의 거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중국에서도 최고 산지대에 살고 있는 중국의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 가운데 4번째로 큰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고유의 그들만의 문화를 지닌 민족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휩슬려 라오스에 남아있던 몽족 일부는 태국 난민 캠프를 걸쳐 미국의 난민자로 받아들여져 미국에 살고 있는 민족이 된다.
이들의 특성은 동화 자체에 거부감이 있으며, 자신들이 경작한 땅에서 필요만큼의 농지를 개발하여 양식을 대고 있고, 양귀비 재배에 탁월한 능력을 보유, 샤먼 격인 치넹의 존재를 믿는다.
외과수술 금기, 시신 부검 거부, 시신의 방부제 처리를 거부한다. 항생제는 허락하되 면역주사는 거부하는 민족의 특징을 지닌 사람들-
1975년 미국으로 정착한 몽족 가운데 아버지의 이름은 나오카오 리, 엄마는 푸아 양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리아는 1982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의료센터에서 출생한다.
생후 3개월 만에 몽족 말로 코다 페이라 불리는 간질 증세로 입원을 하게 되지만 첫 입원에서 몽족 말을 아는 통역자가 없었고 부모조차 영어를 몰랐기에 의사는 "동물병원 의사"가 되어 진찰을 하게 된다. 첫 발작의 증세를 단순한 기관지 폐렴이나 기관지염 초기 증상으로 알고 처방을 내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어 두 번째도 마찬가지로 오진.
1983년 통역을 할 수 있는 친척을 통해 몽족에 관심이 있던 댄 머피 의사가 진료,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후 소통에 대한 단절과 고유의 의지대로 의료진이 요구한 절차대로 하지 않은 리아 부모는 의사에 의해 군 보건과 와 주 아동보호국에 "아동학대, 아동 방치"로 신고를 당하다.
이때부터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리아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진행이 되자 다른 큰 병원으로 옮기게 되고 병원에서는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것이란 선고를 내린다.
이 책은 저자의 9년간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문화인류학 보고서로 의료의 문제뿐만이 아니 문화 간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편향없는 시선으로 그린다.
서양인의 의식으로 본 몽족이 보인 행태는 우선 자신들이 배운 의학 위에 그들이 행하고 있는 샤먼의 의식을 거쳐 치료가 된다는 논리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이 된다.
복종의 명령엔 몽족 특유의 복종 거부와 자신들의 비 자발적 이민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더욱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이 된다.
리아의 경우 첫 번째로 병원을 찾았을 때 제대로 병명을 알고 처방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자라지도 못하고 대 소변을 기저귀에 의존하는 소녀의 모습이 아닌 제 나이의 소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평등한 입장에서 상대의 말들을 들어봄으로써 결국 자신은 리아의 불행은 "윤리가 다른 이들"로 결론을 맺는다.
의사도 그들 나름대로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리아의 부모도 리아를 살리기 위해 투약을 거부한 방법으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누구도 원망을 할 수 없단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사례를 비춰볼 때 다민족으로 이뤄진 미국의 경우엔 각 민족을 대할 때의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치료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리아의 경우로 대변해 준다.
몽족이란 민족에 관심이 있었던 몇 의사들은 치료과정에 있어서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 치료에 필요한 통역, 주사라든가 치료약, 수술에 필요한 허락을 구하기까지 몽족의 최고 어른의 말이 다시 가장에게 전달이 되고 그것이 가장으로부터 허락받기까지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점을 볼 때 의학의 분야도 서서히 좀 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음도 말해준다.
결합치료, 즉 대중요법이 필요함을 말하는데, 원인보다는 증상에 치중하는 현대의학의 치료법이라고 한다.
바로 몽족처럼 이런 것이 필요할 경우 리아처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데 최우선시해야 할 방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더라도 치료에 대한 허락을 받기까지의 그들의 친척관계까지 연락하고 다시 연결되는 과정은 현대의학에서 보자면 인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란 것에 대한 대처 자세가 필요함도 느끼게 한다.
몇 해전 우리나라 이민자 가정에서 자녀가 죽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의 엄마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내가 죽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몰랐다" 하는 말을 듣고 경찰이 살인혐의로 입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통상 우리들 정서엔 그 엄마의 말이 실제 죽인 것이 아닌 자식이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고민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미국인들 입장에선 당연히 살인범으로 이해했다는 이 사건을 두고 말의 뉘앙스가 얼마나 큰 일로 번져갈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것으로 기억된다. (몽족의 위 부부도 의사들이 말한 의도를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양인들의 인식 속엔 리아가 위험해 처해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온갖 치료를 다해 봐야 한다는 실천과 리아의 부모는 우리가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언어 간의 소통 문제만이 아닌 문화 간의 충돌에서 오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주치의가 리아의 삶이 망가진 것은 패혈성 쇼크나 부모의 부이행이 아닌 타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것이 최선이고 차선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오랜 세월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사들이 사망선고나 다름없던 죽은 생명이었던 리아가 다시 살고 있다는 점에선 서양 의식으로 본 샤머니즘적인 것을 무시할 수 만도 없다는 데서 문화 간의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야 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민자들이 공통의 국민 정체성이란 것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본인의 문화를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럿이 하나 된다."는 말이 뜻하는 바에 따르려면 말이다.
***** 자기 문화가 나름의 취미나 정서나 편향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문화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 p431 (하버드 의과대학의 사회 의학부 학장이자 정신과 의사, 의료 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만이 한 말 중에서 - 그는 8개 항목의 질의를 만들어서 몽족이 할 수 있는 답을 그대로 이해했다. )
2010년도에 처음 읽은 책을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접했지만 여전히 다문화 민족과 그 구성원들 속에서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여전히 느끼게 한다.
그만큼 발전된 부분도 있겠지만 책 속의 내용이 여전히 유효하단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 속에 담긴 많은 부분들이 함축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느낀다.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