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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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정리해고, 이후 다른 회사에 다닌 것도 1년 만에 경영 악화로 폐업, 나는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취업준비생이 아닌 백수란 이름으로 다음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나이, 성별, 전문직이 아니어도 좋다는 약국 전산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간, 그곳에서 약사는 “유령이 또 왔네.”라는 말로 나를 판단한다.

 

유령?

읽으면서도 요즘 신종 유행어인가 했지만 이 작품 속에 유령이란 불린 자들은 소위 말하는 세상에 떳떳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보통 사람들 속에서도 희미한 인식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게을렀던 건 아니다. 남들만큼은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부족했던 걸까. 더 노력한다고 달라지기는 할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더 하찮아 보였다. p 12

 

 

처방전을 받고 입력하고 조제를 도우며 점차 약국 일에 익숙해지는 나는 조 부장에게 일을 배우고 다양한 약국 손님들을 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지만 여전히 0이란 존재다.

 

 

0이란 숫자는 다른 숫자들에게 도움도 주지만 자신의 존재를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각 연산 법칙에 따라 없어져도 무방할 것 같지만 그 필요성은 여전하다는 사실, 살다 보면 나의 존재감이 희미해질지라도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나는 1에 다가서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도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의 '나'는 약국에서 일하고 마주치는 손님들을 대하면서, 때론 옛 친구와의 일을 회상하며 또 다른 0의 존재로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비록 자신의 존재가 1보다는 부족한 0의 자리에 속하지만 0이 함께 모여서  커다란 0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그 또한 나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무시하지 못할 존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같은 0의 존재들끼리 통하는 작은 소망의 자리가 큰 뜻을 이뤄나간다면 1보다 더 큰 존재감이 되리란 생각이 들지 않겠나 하는 격려의 말이 절로 떠오른 작품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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