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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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페이지가 안 되는 작품을 나흘에 걸쳐서 읽었다.

 

보통 이런 페이지라면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어도 될 분량 이건만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무거운 체증이 가라앉은 듯 연신 가슴을 내리누르며 읽게 된 작품이다.

 

2020년도 최연소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이란 소개와 함께 만난 이 작품은 한 소녀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 나는 열 살이었고 더 이상 코트를 벗지 않았다-p.8

 

야스는 첫 번째 오빠인 맛히스가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호수 강 건너편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는 더 크게 자라면 데려가 주겠다고 말하고 곧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야속하기도 했던 야스는 자기가 직접 이름을 지어준 토끼를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먹겠다고 하자 토끼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대신 오빠를 데려가 줄 수 없겠느냐고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셨는지 오빠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코트를 전혀 벗지 않는 야스, 계절에 상관없이 그 코트는 야스에게 있어선 하나의 분신이자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주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떠나질 않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슬픔을 겪는 상실감은 비단 이들 가족을 통해서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각자가 지닌 무게의 슬픔의 몫을 얼마큼 지고 헤쳐나가는지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것도 다르다는 사실을 야스란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일연의 상처들을 통해 드러낸 내용들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족 전체가 부모의 입장과 남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슬픔의 강도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부모들은 자신의 슬픔에 잠겨 나머지 자식들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죽은 자가 남긴 흔적조차 없애질 못하고 그저 입 안에서만 맴돌고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 말 없는 행동으로 되새길 뿐이다.

 

아버지는 개혁교회의 신자로서 성경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아들의 죽음을 첫 번째 재앙으로  연관시켜 나아가고,  꽃무늬가 있는 원피스 대신 선인장 무늬가 있는 원피스만 입는 엄마, 식사를 하지 못해 말라가는 엄마의 모습들은 나머지 아이들, 특히 야스가 다른 가정에서처럼 느껴보길 원한 사랑의 감정과 손길마저 느껴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이후 구제역이 퍼지면서 가축의 폐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아픔 속에 성장하면서 이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이 그저 야스의 눈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음을 느낀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폭력성과 성장 속도에 따른 성에 대한 욕구, 야스가 맛히스 오빠가 느꼈을 그날의 차가운 얼음 속에서 추위와 고통을 얼마큼 느꼈을지에 대한 상상은 갈수록 선명하게 다가오는 지워질 수 없는 슬픔으로 자리 잡는다.

 

 

-슬픔은 자라지 않아. 슬픔이 차지하는 공간만 넓어져. -p 279

 

 

읽으면서 내내 한 가족을 잃는다는 슬픔과 극복이 필요한 부분에서 이들 가족들은 진정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조차도 없었다는 점이 내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 내 안의 폭력만이 소음을 일으킨다. 소음은 점점 커져간다. 마치 슬픔처럼. 벨러의 말마따나 오로지 슬픔만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 폭력은 공간을 그냥 차지한다. 나는 죽은 나방을 손에서 떼어내 눈밭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장화 신은 발로 그 위에 눈을 밀어 덮는다. 싸늘한 무덤이다.-P. 326

 

 

실제 저자 자신도 형제를 잃은 아픔을 지녔다는데, 작품 속의 감정 표현이 인간이 지닌 상실의 감정을 제대로 그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느낄 모든 슬픔의 표출이 드러난 작품으로  행복보다는 아픔을 지니려 했고 점점 침잠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 삼 남매가 겪었을 폭력이 가미된 행동들은 물론 마지막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한동안 먹먹함이 가시질 않은 작품이었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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