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무언가에 관심을 둔다는 것, 특히 취미생활로서 즐기는 여러 가지 활동들은 일상의 작은 변화로써 즐겁게 받아들일만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운동, 사진 찍기, 만들기... 일상에 치우쳐서 하고 싶었어도 시간에 쫓기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더욱 그렇지만 저자처럼 뒤늦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과정이 부럽기만 하다.
그동안 국내의 유명 책이나 커피 로고, 가수 앨범 재킷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수집가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그의 취미는 서핑이다.
전작품에서도 서핑 예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통해 그가 입문하게 된 서핑에 대한 세계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글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작품은 여기에 더 나아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 즐기는 서핑의 세계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가 타는 서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핑보드가 아닌 부기 보드다.
일명 오리발을 장착하고 타는 보드, 일반 서핑보드처럼 파도를 이용해 타는 것은 같지만 규모나 신체를 이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다르다고 한다.
그가 보드에 빠지게 된 경위는 전 작품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서퍼로서의 파도와의 일체감들은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장롱면허에서 오로지 보드를 타기 위해 운전을 하게 된 이유들은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자 한 가지 일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필수의 선택을 한 저자의 애정이 묻어난 글이 인상적이다.
여기엔 읽으면서 하루키의 작품이 생각나는 부분들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 또한 하루키의 작품을 언급한다.

그만큼 파도타기에 대한 그의 무궁한 사랑을 느끼는 부분이라 그가 말한 파도타기를 어릴 적 미끄럼틀 타기에 비유한 부분이 공감된다.
그저 오르내리고 타고 내려가는 미끄럼틀 타기에 대한 즐거움, 파도타기 또한 파도가 있는 좋은 곳을 선점하기 위해 장소 물색에서부터 홀로 타는 서핑이 아닌 함께라는 의식 하에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들은 저자의 그림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일에 파묻혀 살아온 시간들 속에 어느 날 뒤돌아봤을 때의 공허함, 어쩌면 모두가 느끼는 바를 저자는 자신만의 서핑 타기란 취미를 통해 인생의 한 부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파도가 어느 순간 출렁이며 소리 없이 내게 다가올 때의 공포감과 더불어 이를 이용해 넘기는 스릴을 만끽하는 순간, 이처럼 우리네 인생도 파도타기처럼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들을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위험과 위험 사이에서 삶을 즐기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p 33
외국에서 서핑하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저자처럼 국내에서 서핑을 타는 얘기는 생소한 부분이었던 만큼 저자의 글을 통해 계절에 따라 장착하는 슈트의 모습도 신기하고, 글 속에 담겨 있는 짧지만 굵직한 느낌의 문장들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살면서 이기고 지는 승패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게 가치 있는 것이다. 그게 당구든 파도타기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p 145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홀로 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 서핑보드, 부기 보드와 나의 몸이 한 몸이 되어 물아일체의 세계로 들어가 파도를 넘는다는 것, 운동에 영 소질이 없는 나조차도 저자의 글을 통한 시시각각 다가오는 간접체험은 일단 도전해봐! 란 응원의 말처럼 들린다.

파도란 자연이 주는 선물, 그 속에 과거의 나와 현재, 미래의 나란 이름으로 불리는 작가 분신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익살스럽고 귀엽다는 느낌마저 드는 그림과 함께 에세이로써 전달해주는 유혹적인 글들, 한동안 멀리 했던 CD를 틀고 비치보이스의 surfin U.S.A, Kokomo를 들어본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