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스탄불, 이스탄불
부르한 쇤메즈 지음, 고현석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5월
평점 :
동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달라 보일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나라가 바로 터키다.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제는 그들만의 독특한 장점을 십분 발휘해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월드컵에서의 3.4강전을 물론이고 6.25 참전의 형제 나라로 불릴 만큼 친숙한 이미지를 가진 나라이기도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터키 문학을 접할 때면 당연히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오르한 파묵이다.
꾸준히 이 작가의 번역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 번역가 님의 이름이 친숙할 정도로 터키 문학에서 차지하는 오르한 파묵의 절대적인 문학의 세계는 기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저도 비교하게 되는 확고한 고정팬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접한 터키의 새로운 신예라고도 할 수 있는, 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만나 본 부르한 쇤메즈란 작가는 터키의 문학의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제목인 이스탄불이 주는 책의 화려한 표지도 그렇지만 내용 또한 동양적인 냄새와 서양적인 냄새가 은연중 혼합의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배경은 이스탄불의 어느 지하감옥, 차가운 시멘트 벽으로 구획된 좁은 공간이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감방 안에는 나이, 직업, 성향이 전혀 다른 네 남자가 갇혀있다.
아마도 혁명운동으로 연루되어 끌려왔을 이들은 모두 네 명이다.
학생 데미르타이와 이발사 카모, 의사 아저씨, 노인 퀴헤일란은 언제 다시 끌려가 고문을 받을지,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각자 겪었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을 열흘 동안 돌아가며 들려준다.
이야기의 흐름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야화, 그리고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연상시킨다.
강제 격리로 모인 네 사람들의 사정은 특별하지도 않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갇힌 자신들의 처지는 그리 녹록지만은, 오히려 죽음이란 것에 한발 다가선 자들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이야기의 변주를 통해 위안을 삼는 모습들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시대적인 요구에 반한 그들의 행동의 결과물인 감옥에서의 생활은 이스탄불이란 화려하고도 고색창연한 겉모습 뒤에 감춰진 쓸쓸하고 외로우며, 고문이란 두려움에 쌓인 인간들의 나약함까지 두루두루 네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고문은 몸을 고통의 노예로 만들지. 두려움은 영혼에 똑같은 일을 해. 그리고 사람들은 몸을 구하기 위해 영혼을 팔지. - p 34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 녹아들었다고도 생각되는 구절들의 표현은 차세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는 소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이스탄불에 대한 끝없는 찬미를 하던 노인 퀴헤일란처럼 세월의 흔적을 남기도고 여전히 자신의 모습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도시, 그 이스탄불에 대한 연가처럼 들리기도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