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김영숙 지음 / 빅피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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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라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조반니 벨리니, 보티첼리, 라파엘로, 카라바조,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많았기에 기대했던 화가나 작품들보다 더 감동받았다. 시대가 선택한 '거장'의 작품을 보면서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담은 서양미술 명작을 통해 미술의 관심이 신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모습을 조명한 전시였다. 르네상스 작품에 관심은 많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보러 가기 전에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을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그림에는 시대적 반영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그림을 보면, 역사, 문화, 철학, 신화, 종교 등 여러모로 교양 지식을 저절로 쌓을 수 있다. 예술서적을 원래 좋아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는 130점의 그림들과 화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너무나 흥미로워서 아껴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대다수는 알고 있는 지식이었어도, 어렵지 않게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분이 처음 접하셔도 너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많이 다뤘지만 현대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예술 관련 서적에서 가장 중요한 인쇄 색감에 신경 쓴 느낌이어서 더욱 맘에 든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 전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세세히 알려주면서도 알쓸신잡 같은 지식도 함께 포인트로 집어준다. 무엇보다 각 챕터마다 이탈리아의 미술관을 소개해서, 직접 가고 싶은 맘에 더욱 커진다. 미켈란젤로와 율리우스 2세와의 갈등, 브라만테의 질투심. 벽화를 완성한 뒤 외설 논란에 휩싸여서 제자가 대신 가려주는 수정을 했다는 등의 사건과 인물, 시대를 중심으로 한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다방면의 지식으로 꽉 차있다. 라파엘에게는 베끼지 말라며,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작품 상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다.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여인 포르나리나를 작품 속에 어떻게 표현하고 넣었는지, 그녀로 추정되는 그림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도 위를 쳐다보면서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런 그림을 <소토 인 수>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카라바조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의 그림을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건 흥미롭다. 남자 입장인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 속의 유딧은 어리고 연약하고 겁먹은 듯한 느낌이며, 죽임당하는 남성의 모습이 더 부각된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로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재판까지 가서 모욕을 당해야 했던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함께 협력해서, 남성을 결연한 모습으로 응징하고 있다. 피와 놀란 남성의 얼굴, 젊고 어린 모습만 부각된 카라바조와의 그림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으려고 한 그녀의 그림이 그 시대에 얼마나 큰 반향이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수산나와 장로들>을 그린 같은 이야기 다른 그림들을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수산나를 모욕하려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인데도, 한쪽은 피하고 반항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다른 한쪽은 남자를 유혹하고 있는 형상이다. 


아마도 그림 그려주고도 교수형으로 죽지 않을까, 엄청나게 노심초사했을 한스 홀바인. 후세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헨리 8세 초상화 중에 그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멋지다. 독일 화가로 영국에 정착해서 왕의 전속 화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땠을까? 그것도 6번 결혼한 왕의 화가로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클레비스의 앤의 초상화를 너무 아름답게 그려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에피소드, 그래도 나중에 재의뢰해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려줬다. 


미술관 가면, 그림을 보지 않고 글자 읽고 오디오 해설 듣고, 사진 찍느라 다들 바쁘다. 미술 전시를 보러 온 목적과 감상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겠지만, 미술관에서 제발 공부하지 말자. 전시 보러 올 시간 동안만 그림에 대해서 공부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대신 도슨트 해설을 보기 전이나 후에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자. 그림과 마주하면서 화가의 영혼과 대화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할 시간은 이때뿐이다. 교양 지식은 평소에 조금씩 <처음 만나는 7일 미술수업>같은 예술서적을 읽거나 도록을 통해서 쌓는 건 어떨까? 급하게 전시 보는 2~3시간 동안 쌓는 지식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보기 전이나 후에 꼭 읽어보시기를 다시 한번 추천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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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오늘도 마음을 노래하는 뮤지션 고영배의 다정한 하루하루
고영배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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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축제 기간이 돌아왔다. 어느 행사에서든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버스킹 가수들이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인천 야행을 갔을 때, 여기저기 욕심내서 구경하기보다 휴식하는 기분에 빠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버스킹 공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기에, 노래 공연을 모여서 듣는다는 게 꿈만 같았다. 유튜브 채널도 직접 개설했다던, 그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곡을 부르기 위해 달달한 사랑 노래를 불렀었다. 노래를 불러서 싸웠던 여자 친구도 돌아왔다는 말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담은 노래는 그 순간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작업할 때, 음악을 잘 듣지 않기에 딱히 유행하는 노래도 모른다. 그래서 점점 감성적인 부분이 퇴화되었던 것일까? 분명히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 책을 접하기 전까지 <소란>이라는 그룹을 알지는 못했다. SNS나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나 <펜타 포드 록 페스티벌>을 많이 가는 걸 봤었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티스트에 대해서 깊은 관심도 팬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래방에 자주 갈 때까지는 노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기게 된 건 의외로 코로나 기간에 공연을 접하지 못하게 되면서였다. 함께 온라인으로 알게 된 MZ 세대들과 소통했을 때, 음악에 진심이었던 그들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공유는 감수성이 제로를 향해 가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함께 하는 매 순간이 특별한 기념일, 


번뜩이는 위트와 따뜻한 위로


믿음의 가치, 소란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곁을 채울 수 있는 음악


하는 쪽, 듣는 쪽 서로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음악


mpmg music 홈페이지, 소란 소개


© mpmg music

 

© mpmg music




 노래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 3부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이 <소란>의 수록곡의 가사라는 걸 알지 못했다. 미공개 팬송의 제목이기도 한 1부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가자'에서는 고영배가 음악을 시작하고 된 순간부터 진로에 대한 방황, 인디밴드를 결성하는 방법과 밴드 소란이 탄생하게 된 배경, 콘서트의 뒷이야기들까지 그의 음악 인생과 소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인가 1부를 읽었을 때,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룬 내용은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음악을 진로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담으로 다가올 파트였다.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소박하고 따뜻한 언어들이 가득한 2, 3부를 좀 더 공감하면서 읽었었다. 사실 국내에서 미래가 불확실한 예체능계, 그것도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꿈을 이룬다는 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절실하다. 아니, 그전에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의 원천에는 바로 가족이 있었다.  소란의 곡 <행복>의 가사이자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2부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에는 유년의 기억, 가족에 대한 애틋함, 과거와 현재에 관한 상념 등 인간 고영배의 진솔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지막으로 소란을 페스티벌의 황제로 만들어준 곡 <가을목이>의 가사인 3부 '고마워 예쁘게 웃으며 얘기해 줘서'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와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부터 딸바보 아빠가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적어내린  3장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한다.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같이 가는 것,

늘 여행하듯 살아가는 것, 

밥 먹었는지 챙겨주는 것, 

아마도 우리 이렇게 같이 있는 것.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게 행복이지만, 

가끔 행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대단한 우리가 된다.


-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와 책들이 지닌 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메시지로 청년들이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다정한 말이 가진 힘을 믿는다. 위기에 가까워지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기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실 : 인연의 시작>에서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주인공들이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테러와 재난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서 동창과 조우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무하잖아


내가 뭐 대단한 걸 

원했다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 실: 인연의 시작 


© (주)디스테이션, (주)엔케이컨텐츠

헤이세이 세대에겐 평범하게 만나 사랑을 하고 정착하는 거 자체도 너무 힘겨워졌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라 생각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지난 3년여간, 이리저리 요동치던 마음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가 떠올려본다.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소소한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 나를 느낀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자주는 못 만나고, 아직도 연락 못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잠깐 만나 맛있는 걸 먹고 대화하는 시간이 이제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정의가 되었다.


힘들었던 때에는 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가 날 버티게 해줬다. 책 속에서 <소란>의 노래 속 가사처럼 연애의 세밀한 감정선을 가장 잘 담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껴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172P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소란>의 노래들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듣다가 이 노래도 <소란>의 노래였구나 감탄한 곡들이 있었다.  <Ricotta Cheese Salad>, <살 빼지 마요> 들으면서, 한참 살이 올랐던 때 많이 위안 받았던 노래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걸 그랬다. 담백하게 와닿는 가사는 연애나 사랑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내 일기장에 한때 적어내렸던 기록들 같았다. 아, 한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지. 죽어있는 연애 세포 혹은 사랑을 되살리는데 너무나 적당한 노래들이다. 위로와 격려가 가득 담긴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에세이집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애처가이자 딸바보인 고영배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메시지를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닮은 점도 많았고 다른 점도 많았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데, 20년 가까이 함께 해오면서 나는 우리가 섞여간다고 느낀다.


다른 색깔의 두 액체를 한곳에 넣은 것처럼, 각자가 사라지지 않고 상대의 색깔에 영향받아 함께 다른 색깔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결국 닮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서로 닮도록 섞이는 것, 그게 부부인 듯하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고 이에 영향받아 나 자신이 변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한다는 뜻이다. 


아내를 닮아가고 싶은 장점이 아직 정말 많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200~201P



사랑이 가득 실린 소란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는다면 완벽한 가을이 될 거 같다. 

아무래도 가을 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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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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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 자라서 그런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원래 나 자신과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사회적으로 바라는 여자에 대한 고정 관념과 기대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억지로 짜 맞추면서 살다 보니 좌절감이 느껴졌다. 막연히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몇 살쯤이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왜 나만 뒤처지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괴로웠다. 평균 연봉, 결혼 시기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정부에게 외면받고, 사회 내 어딘가에도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정책이나 혜택이 내 또래만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아직 뭔가 더 하고 싶은데,  낄 자리가 없었다. 


 내가 어딘가 비정상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정상인가>를 읽게 되었다. 고작 200년밖에 되지 않은 '정상성' 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현대적 집착이 된 기원에 대해서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저자인 사라 채니 또한 젊은 시기 튀는 행동으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정상이고 싶어 했고, 그 상황에 의문을 품게 된다. 7장으로 구성된 책은 정상성은 어떻게 생겨나고 적용되어 왔는지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본 뒤 몸, 마음, 성생활, 감정, 아이들, 사회로 세분화해서 정상이라는 개념을 분석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챕터는 아무래도 2장 <내 몸은 정상인가>이다. 어느 시기이건 아름다움에 대한 비정상적 욕구에 시달렸던 여성의 삶과 역사를 패션과 유행을 통해 접하고 있어서인가. 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몸무게 최하점을 겪을 때조차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이상적인 몸무게와 몸의 평균 사이즈의 틀에 시달리면서, 다이어트와 운동에 매진하기도 했었다. 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치료를 하던 중 찐 살이 잘 빠지지 않으면서, 잘 모르던 타인들의 말과 태도가 상당히 무례해지는 게 느껴졌다. 가깝다고 느꼈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반응을 보면서 더 힘들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까지, 숫자로 기록되는 암묵적인 평균 사이즈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나 코로나 이전부터 살찐다는 것은 자기관리의 실패로 보기까지 하지 않는가. 



책을 읽어보면 정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정상으로 분류되는 무언가로 사회적 기준이 맞춰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특히 인간의 역사 중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대전 중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던 인종 차별적인 상황들. 특정 인종과 외모가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그 논리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정해놓은 사이즈로 만든 조각상 노르마. 실제 사이즈만 비슷한 사람을 나란히 세워놨을 때 다가오는 괴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왜곡된 이성상의 기준을 선사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그 틀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다. 옷을 고를 때 프리 사이즈는 실제로는 마른 체형의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일 뿐이다. 


마지막 장인 <사회는 정상인가>는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큰 질문을 던지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정상과 평균이라는 기준에 맞춰서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된 기형적인 부작용이 아닐까? 그 기준이 너무 높고 엄격한 것은 아닌지, 이제 우리 모두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과연 정상인가에 끊임없이 의문점을 느끼고 질문해 봐야 한다. <나는 정상인가>는 그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는 책이라기 보다,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견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팬데믹 이후에 생겼던 커다란 부작용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문점이 생기시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겠다.



책 속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문구가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일상이란 별거 아니야. 너한테 익숙한 게 곧 일상이거든. 

이 상황이 지금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게 곧 일상이 될 거야.


마거릿 애트우드 - 시녀들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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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불안하다면 -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 지음, 양소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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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불확실함 투성이이다.

3살 때 생애 처음 가출을 한 뒤로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는 걸 경험했었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불안이나 걱정이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새 학기가 돌아올 때마다 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었었고, 새로운 환경으로 바뀔 때마다 늘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엔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지난 뒤 생각해 보니 고민한 시간만큼 잘 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그 경험은 늘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IMF를 지나 팬데믹 상황이 거의 종식되기까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언제 다시 경제적 위기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 코로나는 완전히 종식되는 것인지, 마스크는 계속 벗고 다녀도 될 것인가. TV에서 생중계되는 여과되지 않은 상황들을 보면서 생겼던 트라우마, 언제 다시 격리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서서히 위축되어 갔었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점차 무기력해졌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길고양이 돌보기와 비대면 온라인 라이브 방송과 음성 기반 채팅, 영화를 같이 보는 와치 파티였다. 나 혼자만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갔고,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불안함을 간직한 채 오프라인 활동을 서서히 확장했던 작년은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동네에서 개최하는 여성 영화제의 시민기획단, 홍보활동과 동네를 더 잘 알기 위해 신청했던 시민기자단, 펜화 클래스에 처음으로 도전해서 작품을 전시하기까지 어느 활동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 비대면 상황에서 피할 수 있었던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다시 시작되었고, 아무리 좋은 에너지를 지닌 분들과의 만남이 많았어도 내항인 인 나는 피곤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니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었던 작년 후반쯤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고민이 크게 다가왔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무언가 하기 시작하기로 맘먹기 전까지 책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생각을 정리했었고, 우선순위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떠올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활동하면서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감성 글쓰기 수업을 듣기로 했고, 무엇을 하건 부모님과의 시간을 가장 우선으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불안을 벗어나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면, 내 안의 불안과 고민은 대다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고, 인생의 방향성을 선택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은 대다수 불안이나 고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불안한 마음에 잠식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무렵 읽었으면 좋았을 법한 책인 <불안이 불안하다면>에서는 불안에 대한 선입견을 뒤집어준다. 불안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인류는 불안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 준다.


© EBS 위대한 수업



최근 EBS 위대한 수업에서는 정신건강 특집으로 <우울장애>,<불안장애>,<성격장애>, <트라우마>를 다뤘었다. 팬데믹은 지나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상흔은 깊이 남아있기에 이런 프로그램이 반가웠다.

이중 보르빈 반델로의 <불안장애>의 첫 강의였던 "불안은 언제부터 병이 되는가?"가 딱 이 책과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영상을 보면서, 불안을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40년간 불안장애를 연구해 온 반델로 교수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불안' 덕분이라고 말한다.

불안에 민감했기 때문에 야생동물과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고 자손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인간을 안전으로 인도하던 불안은

오늘날 왜 병이 되었을까?

일반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은 어떻게 다른가?

© EBS 위대한 수업

최근 다시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아무것도 작성할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급했다.

처음부터 차분하게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결론에 해당되는 3부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중 10장이자 마지막 장인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기>부터 바로 읽었다. 성질이 급한 분들은 3장부터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1, 2부는 3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반부일 뿐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궁극적인 것을 배우는 일이다.

<불안의 개념>, 쇠렌 키르케고르

세 가지 원칙

1. 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보다.

불안에 귀를 기울여라.

2. 불안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

3. 만약 불안이 유용하다면

그 불안으로 목적성 있는 무언가를 하라.

삶을 살아가면서 어렵게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 지식이 함축되어 있는 책이었다.

인생이 원래 불안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일찍 알았으면, 좀 더 과감하게 많은 걸 시도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불안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젊은 세대에게 주제넘게 조언은 못해줘도, 내가 어떤 경험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는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불안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 사용 설명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책이어서 신선했다. 돌아보면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초조해하면서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다독이게 되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나 혼자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가장 응원해 줬던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처음 책을 집었을 때, 불안함이 어떻게 자유로움과 연결이 되나 의문을 많이 품었었다.

책을 읽으면서, 힘겹게 깨달았던 진리를 담아놓았음에 감탄했던 책이었다.

불안을 구제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구제한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불확실성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이런 설명은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스타워즈에서 아나킨은 사랑하는 파드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불확실성을 거부하는 선택을 한다. 다스 시디어스는 아나킨의 불안을 감지하고 다크 포스는 불안과 분노로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젊고 유능했던 제다이 아나킨은 다스 베이더로 흑화 하면서, 악의 편으로 돌아섰다.

걱정 마시라, 우리의 뇌는 다스베이더로 흑화 되는 걸 막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알 수 없는 위협에 대한 대비로 우리는 생존해왔기에, 불확실성은 인류 생존의 열쇠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 Disney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해서, 서평이나 영화리뷰 등이 밀리기만 했었던 이유도 완벽주의자와 완성주의자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도달했던 결론도 역시 같았다.

완벽하게 무언가 하려고 아무것도 못하기보단, 일단 완성부터 한 뒤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결론을 이번에 들었던 글쓰기 기간 동안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 엉망진창인 글을 조금씩이라도 작성하는 게 더 낫다는 진리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도, 한동안 손 놓아버린 책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감에 늦어도 어쨌건 작성해 본다.

이 글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리리지만, 결국 못 쓸 거라는 생각에 잠식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쓰려고 시도했던 나 자신을 셀프 칭찬해 본다. 불안과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서 이제는 익숙하지만, 잘 사용하진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노력해 봐야겠다. 고민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도록.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장 불안한 세대들에게 추천해 본다.







저자인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쯤 보시길 바란다.


© wikipedia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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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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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혼돈으로 흘러가는 세계정치와 국내정치적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짚어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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