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관리는 남고, 제조는 나간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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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책처럼 복사가 안 돼. 매번 다 차려야지. 아점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저녁 차릴 시간이야."
슬아는 그제야 복희를 돌아본다.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위에 놓였던 문장이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이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새삼스레 슬아는 미안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미안함보다 민망함이 앞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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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익명으로라도 말을 아낀다. 누군가에게 실례가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작은 오해라 해도 말이다. 복희는 그런 것이 내키지 않는다. 댓글 따위 안 남겨도 상관없다.
많은 사람이 복희처럼 인터넷을 사용한다면 세계가 지금보다좋아질지도 모르겠다고 슬아는 생각한다.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보고 들은 뒤 집안사람들에게만 공유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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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스는 지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조너스를 매료시킨것은 바로 색깔들이었다.
"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는 없나요? 왜 색깔들이 사라졌나요?"
기억 전달자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해 보였다.
"우리들이 그쪽을 선택했어, ‘늘 같은 상태‘로 가는 길을 택했지. 내가 있기도 전에, 이 시대보다도 전에, 옛날 아주 오랜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지."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은 포기해야 했단다."
조너스는 아주 격렬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기억 전달자는 조너스가 단호한 반응을 보이자 조금 놀란듯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주 빨리 그런 결론에 도달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는데, 어쩌면 너는 나보다 훨씬 빨리 지혜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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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록볼록해 - 아이와 내가 함께 자라는 방식
이지수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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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사회생활이 있긴 하지만,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러므로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사랑은 그 순도가 한없이 높을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사랑했다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나한테 질리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나 계산, 밀당 없이 앉으나 서나 찰싹달라붙고, 부모가 눈에 안 보이면 큰 소리로 부르고, 떨어져 있기 싫다고 울고, 밥 먹다가 뜬금없이 팔을 꼭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장난으로 죽은 척을 하면 3초만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외친다. "엄마, 다시는 그런 장난 하지 마!"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을 내가 만들어낸 기적.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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