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리듯 오로르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로스앤젤레스 공항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탑승구앞에서였다. 나는 책 홍보를 위해 서울에 가는 길이었고, 그녀는 프로코피예프의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는 길이었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우수에 찬 미소, 맑은 눈동자, 슬로 모션처럼 머리를 천천히 돌리며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제스처까지.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음색의 변화하나 하나, 그녀의 지성미, 유머 감각, 외모에 대한 겸손함까지. 그리고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그녀의 남모르는 결점들, 존재의 고통, 단단한 보호막 아래 감춰진 상처들까지. 처음 만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사랑의 최절정을 경험하며 오만한 행복에 젖어들었다. 시간이 멎고, 산소가넘쳐나고, 현기증으로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물론 나는 행복에는 어느 정도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던진 숱한 경고의 메시지들을 강단에 서서 문학을 가르친 내가 모를 리 없지 않은가.  - P253

"근본적으로 책이란 게 뭘까? 종이 위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글자를배열해놓은 것에 불과해, 글을 쓰고 나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그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내 책상 서랍에는 아직 출간되지않은 미완성 원고들이 몇 개나 들어 있어. 난 그 원고들이 살아 있는 거라 생각 안 해. 아직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으니까. 책은 읽는 사람이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거야.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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