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채우는 감각들 - 세계시인선 필사책
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강은교 외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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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하고 싶던 루틴 중 하나가 필사였는데, 때마침 민음사 세계시인선 필사책 《밤을 채우는 감각들》 출간 소식을 듣게 됐다.

10대부터 20대까지는 시집을 더 많이 읽었는데 어느 때부터 멀어진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예전 신문에 연재됐던 시들을 스크랩하고 필사했던 것이 떠올랐다.

에밀리 디킨슨, 페르난두 페소아, 마르셀 프루스트, 조지 고든 바이런 4명의 시인들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내가 한 번쯤은 필사했던 기억에서 남아서 일 것이다.필사하면 ‘시 그리고 만년필‘이 생각난다.

처음 만년필을 선물받은 때가 국민학교 졸업식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필기감에 놀랐고, 이런 날카로움이 어른 들의 세상일까 하는 의문으로 사춘기 시절 일기를 쓰다가 20살 때 친한 친구가 생일선물로 사준 만년필을 결혼할 때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 

오히려 어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어서는 만년필보다는 연필이 더 좋아졌다. 지금 내 필통에도 펜보다 연필이 더 많다. 만년필에 공들일 시간도 언젠가부터는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우기 힘든 잉크 자국보다 흑연의 가벼움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난 지우개 달린 연필로 필사하는 것이 더 좋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님 덕분에 매주 본방사수하고 있는 알쓸인잡에서 감각을 깨우기 위한 것으로 독서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밤을 채우는 감각들》이라는 제목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에는 사랑의 감각을 채우기 위해 시(詩)를 읽었던 내가 지금은 나 자신을 채우는 여러 가지 감각들을 찾기 위해 시(詩)를 읽고 있다. 김영하 작가님이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기억보다는 내면의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하신 것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올랐고, 나이가 들수록 병에 대해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수록 시집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다른 문학작품보다 응축적으로 많은 감정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고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리고 연필로 꾹꾹 눌러 쓰면서 다시 한번 감정에 주목하고 되새겨본다.

예전에는 디킨슨의 시를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바이런이 시들을 읽고 많은 감정들이 채워지는 것을 보니 이 책은 참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새해 선물로 또는 입학 선물로 부담 없이 주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를 빌어보는 것.
나이와 성별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따라 채우고 싶은 감각들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마음속 밤에  달빛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문호 4분의 시인들을 통해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새해 첫 책으로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추천드린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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