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 누나가 죽은 뒤 레이철 누나는 분명하고도 영구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당시 내게는 노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 죄가 없는 누군가가 이유도 없이 죽었다는 사실은 레이철 누나에게는 신은 모두에게 계획을 마련했다는 증거였던 것 같지만 나한테는 신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누가 봐도 종교의 위선으로 보이는 것들을 빌미로 누나에게 시비를 걸어댔다. 개신교 하느님은 어째서 성장 배경 때문에 사람을 지옥에 보내느냐, 자기에게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질병과 전쟁을 퍼뜨리느냐 등등이었는데, 그건 주로 누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어서, 또 누나와어머니가 저녁 식탁에 앉아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는 모습이질투가 나서였지만, 어쩌면 그 시절 나는 많은 청소년들이그렇듯 신을 부정하기 직전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었고,
그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