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영했던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드라마를 보면, 유준상이 정∙재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로펌의 대표로 나옵니다. 아마 김앤장을 모델로 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다들 김앤장이 대형 로펌 1위라는 사실만 알고 있지, 이들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갖고 있는 권력이 얼마나 엄청난지(조금 과장하면 삼성과 맞먹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얼마나 파렴치한 집단인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이 과연 법치국가와 민주주의 국가인지에 대한 좋은 해답이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이자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입니다. 과학에 문외한인 저자가 과학사를 쉽게 저술하고 싶은 욕망에 3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과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쓴 책이구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거의 모든” 과학에 대한 역사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적절한 깊이와 뛰어난 글솜씨로 우주의 140억년 역사를 책 한권으로 탁월하게 기술해낸 저자의 능력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과학을 접할 일이 전혀 없는 우리 같은 직장인도 아주 재미있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현재 한국순수문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이 책의 저자 김연수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좋게 말하면 수더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티 날리는 외모와 달리, 김연수는 지극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감수성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문장 뿐 아니라 소설의 플롯 또한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낼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요즘 보기 드문 소설가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런 작가의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이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도록 짓뭉개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1991년, 학생운동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시작해서 광주민주화항쟁, 유신정권을 거쳐 태평양전쟁과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인과 가족의 질곡어린 역사를 작가는 교묘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마냥 엮어냅니다. 이걸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결국 남는 건 시대에 짓눌린 자에게 느끼게 되는 묘한 슬픔입니다. 김연수의 작품이 새로 나오면 꼬박꼬박 읽는 편이지만, 저에게 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만큼 울림이 큰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 한국사회의 갖은 문제에 초연하던 그가 2012년 귀국한 이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과 함께 내놓은 책이다. 하지만 이 <보다>는 그가 선언한 바와 달리 우리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는다. 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핏 요네하라 마리의 글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신랄함은 많이 떨어진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을 뿐."
산문집 삼부작의 전작 <보다>에 비해 훨씬 낫다. `말보다는 글의 세계를 더 신뢰하며, 그 안에서 내 생각이 더 적확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김영하는 말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느끼기엔 김영하는 글보다 말을 훨씬 조리있고 재미있게 하는 작가다. 그 간의 강연과 대담,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김영하가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백하는 대목이 퍽이나 인상깊다. 오죽하면 완성한 소설을 오롯이 자기만의 것으로 하기 위해 J.D. 샐린저처럼 출판하지 않고 자기 서재 금고 속에 넣어 간직하고 싶다고 할까.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을 몇 권 읽어봤지만 큰 감흥은 없었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서재는 일을 하지 않는 공간이예요. 서재에 들어가면 책으로 둘러싸이게 되는데, 책이라는 것은 지금 것이 아니잖아요? 책은 제아무리 빠른 것이라도 적어도 몇 달 전에 쓰인 것이거든요. 더 오래된 것은 몇백 년, 몇천 년 전에 쓰인 것이고요. 그래서 서재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목소리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