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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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앞서 소개한 <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산 김연수의 신작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위 문장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어찌보면 낯간지러운 연인의 밀어(蜜語) 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사랑에 대한 말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주인공 카밀라는 올해 25세로 갓난아기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양어머니가 죽고 우연한 기회에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 데뷔합니다. 자신이 아기 때 미혼모인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 진남(통영을 모델로 한 가상의 항구도시)에서 어머니를 찾는 도중, 카밀라의 엄마 정지은이 17살 여고생의 신분으로 자기를 낳고 이듬해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진남의 매생이국` 마냥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진남 사람들과 부딪히며 진실을 찾던 카밀라는 자신이 친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합니다. 간신히 구조된 카밀라는 방글라데시로 갔다가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진남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엄마의 오빠가 아니라 지금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엄마의 고등학교 독어교사 최성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카밀라는 최성식을 찾아가지만, 최성식은 이는 다른 교육감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이며 자신이 정지은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카밀라가 자신의 딸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숨겨진 이야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지은의 아버지는 진남의 조선소에서 파업 도중 크레인에서 투신자살한 노동자이며, 정지은이 카밀라를 낳고 자살하게 된 것은 정지은의 아버지와 함께 파업에 참여하다 화재로 사망한 정지은의 친구 김미옥이 질투와 분노로 최성식과 정지은의 스캔들을 교내에 퍼트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카밀라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뜻밖의 결론을 내립니다.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을 위해 결론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배배꼬인 통속소설에 다름아니지만, 인칭과 시점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하나의 이야기 뒤에 다른 이야기들을 계속 중첩시켜 독자를 놀라게 하는 김연수 특유의 문법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게다가 전작 <원더 보이>부터 그 전 작품들과는 분위기기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작품들을 읽는 것이 글을 읽는다기 보다 차라리 젤리처럼 질량 가득한 무엇인가를 스푼으로 듬뿍 떠먹는 듯한 묵직한 경험이라면, <원더 보이> 부터는 끝모를 슬픔과 애잔함이 봄날의 밤비처럼 처연히 흩날리는 들판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나의 사실이 드러나면 또 하나의 베일이 드리워지고, 사람들 사이의 소문에 둘러싸인 진실이 조금씩 제 얼굴을 드러내는 과정을 그려내는 김연수의 솜씨 앞에서 진부한 스토리는 광채를 내뿜고 독자는 무력해집니다. 김연수가 말하고자 하는 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이 있으며 그 간극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나는 너를 완전히 알고 이해한다`라고 착각하는 친구들에 의해 재단되고 단정지어져 끝내 자살하게 된 정지은에게 자기가 낳은 아기 카밀라는 심연을 건널 수 있는 날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 영혼이 된 정지은은 카밀라에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연수의 또 다른 매력은 잘 정련된 아름다운 문장들입니다. 제가 책에다 밑줄친 몇 꼭지를 옮겨 보겠습니다.


˝빈 잔은 채워지기를, 노래는 불려지기를, 편지는 전해지기를 갈망한다.˝


˝암시나 비유의 그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일하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언어다.˝


˝저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을 뿐이죠.˝


˝휴대폰이나 대형 마트나 DMB 따위를 없앤다면 뭐가 남을 것 같아? 책 같은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야. 원래 그 자리는 고독의 자리였어. 혼자 존재하는 자리.˝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빈 잔은 채워지기를, 노래는 불려지기를, 편지는 전해지기를 갈망한다.

암시나 비유의 그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일하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언어다.

저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을 뿐이죠.

휴대폰이나 대형 마트나 DMB 따위를 없앤다면 뭐가 남을 것 같아? 책 같은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야. 원래 그 자리는 고독의 자리였어. 혼자 존재하는 자리.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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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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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김연수는 한국의 소설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입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같은 그의 작품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개인들의 삶이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도록 짓뭉개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열정과 욕망이 충돌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절묘하게 이어붙이고 오려내어 중국 만화경 마냥 어느 것이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그의 글재주는 동세대 젊은 한국 작가들 중 으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김연수는 소설 외에도 산문집을 가끔 냈습니다.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가 그것인데요. 소설들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두 산문집도 꽤 읽을만 합니다. 담담하고도 풍요로운 글을 따라가다 보면 느끼게 되는 아릿하고 가슴 먹먹한 감정들. 소설보다 가벼우면서도 위트넘치는 문장들이 읽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거든요.

이 <지지 않는다는 말>은 올해 새로 나온 김연수의 산문집입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제목의 뜻은 애써 이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말합니다. 작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는 갑오농민전쟁부터 근 100여년을 전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곧 패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 세대인 우리들까지도 매사 전쟁을 치르듯 경쟁하고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희망으로 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삶을 살다 보면 절망적인 고난이 닥치기 마련인데, 절망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라 견디고 버텨내야 희망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견딘다는 것은 기를 쓰고 남을 이기려고 노력하라는 게 아닙니다. 작가는 마라톤을 그 예로 듭니다. 마라톤을 하다보면 35km 지점에서 한계가 오는데, 그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면 심한 좌절을 겪게 되지만 고통을 묵묵히 견디고 결승점에 들어오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환희를 맛보게 된다는 겁니다. 마라톤의 목표는 자신의 한계를 견디고 완주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결승점에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요.

인생은 달리기를 하듯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버티어 이겨내는 것. 한 인간으로서 매 순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을 만큼 견디며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인생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고 희망과 맞닿은 삶을 만들어낸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 억지로 시켜서 달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사실 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실망했습니다. 일단 그간 김연수가 보여줬던 일련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묵직함이랄까, 그런 게 꽤 부족했구요.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했다고 하기엔 책 분량에서 작가의 시시콜콜한 달리기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큽니다. 대략 3/4 정도? 나중엔 비슷비슷한 이야기에 지루해지더라구요. 그 외의 글들도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았구요. 전작 소설 <원더 보이>도 김연수의 이름값에 비해 약간 못 미치는 범작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김연수의 글쓰기가 이제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도 듭니다.

하지만 김연수는 요즘 보기 드물게 엄청나게 노력하는 작가이기에 다시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전에 몰랐던 점을 깨달았는데요. 김연수와 하루키가 작품의 성향은 많이 다르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꽤나 비슷한 작가라는 것입니다. 둘 다 달리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며, 아주 성실한 작가이고, 영미권 작품 번역을 즐겨하며, 둘 다 여행을 좋아하고, 음악(특히 팝송) 애호가라는 점입니다.

여담으로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을 아내랑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표소 앞에서 김연수 작가와 마주친 겁니다! 딸 열무하고 사진전을 보러 왔더라구요. 사인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사인 받을만한 종이가 없어서 결국 못 받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네요. 김연수 씨 책이 있었으면 냉큼 받았을텐데 아직도 후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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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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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베스트셀러를 잘 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는데 굳이 나까지 사서 볼 필요가 있나` 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 듯 합니다. 한국에서 알랭 드 보통이 유명해진지 꽤 오래 되었지만,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 <불안>을 읽기 전 까지는 알랭 드 보통이 소설가인줄 알고 있을 정도 였어요.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지위˝의 불안을 다루는 책입니다. 지위 불안의 정의, 원인, 해결의 세 꼭지로 이루어져 있지요. 지난 100여년 간, 인류를 둘러싼 부, 과학 기술, 식량, 신체적 안전, 기대 수명, 경제적 기회 등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위 불안, 즉 자신의 재산, 직업, 성취 등에 대해 심각한 불안을 느끼게 된 것이죠.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산업 혁명 이후 근대 자본주의가 부르주아지 계급을 낳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핏 우리가 생각하기에 철저한 신분제 사회 하에서는 농노가 귀족에 비해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불안과 불만을 가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애초에 농노는 신분을 극복하는게 불가능한 환경 하에서 자기와 동등한 처지의 농노들을 보며 위안을 받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4차원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듯, 농노가 신분 해방을 상상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거지요.

게다가 중세를 지배하던 기독교는 부자와 금전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은 유명하지요. 돈은 타락과 동일시 되었고, 부자는 영혼이 썩은 자로 묘사되었지요. 가난은 고귀한 것이고, 순수한 영혼의 필수요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부르주아지들이 신분제에 반기를 들면서 능력있는 사람이 걸맞는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됩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 사람이 쌓은 부(富)가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거죠. 게다가 표면적으로나마 기회 균등 사회가 되면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류의 신화가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각인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가난한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가난한 것은 단지 불운해서가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죠. `부자 아빠`는 좋은 아빠고 `가난한 아빠`는 나쁜 아빠라는 천박한 이분법이 먹히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개인의 노력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도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시대, 치솟는 물가에 허덕여 한 달을 살아가기 바쁜 시대에 제게는 부자가 된다는 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내 자신의 능력 보다 내 부모의 자산이 중요한 이 시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인의 지위 불안이 시작됩니다. 잘 나가다가도 한 발만 미끄러지면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고, 무능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것. 이는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한 불안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정리해고당한 가장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자살율이 왜 그렇게 높은지를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지요.

알랭 드 보통은 지위 불안의 원인까지는 정말 탁월한 식견을 갖고 분석해내지만, 그에 비해 후반부의 해결책은 평범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철학, 예술, 정치, 종교, 보헤미안적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효능을 누리면 불안을 치유하거나 억누를 수 있다`는 겁니다. 대단히 기발한 해결책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맥이 좀 풀리더라구요.

그래도 여전히 일독을 권할 만한 책입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언뜻언뜻 느끼던 까닭모를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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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제국 -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이산의 책 13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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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을 읽고 처음 든 느낌은 ˝낚였다!˝ 였습니다. 제목이 <칸의 제국> 이니 당연히 몽골의 역사에 대한 책이려니 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부제 `서양인의 마음 속에 비친 중국`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쭉 보여주는 책입니다. 전 마음에 드는 저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싸그리 사다가 천천히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너선 D. 스펜스는 예일대 석좌교수로 중국역사의 대가입니다. 그의 <신의 아들 : 홍수전과 태평천국>이라는 책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양반 책을 대부분 샀는데, 이 <칸의 제국>은 그 때 딸려들어온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이미지를 정형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부터 시작하여, 여러 탐험가들, 제독들, 예수회 선교사들, 몽테스키외, 마크 트웨인, 마르크스, 에즈라 파운드, 앙드레 말로, 유진 오닐, 브레히트, 제인 오스틴, 펄 벅, 에드가 스노, 닉슨, 헨리 키신저, 카프카, 보르헤스 등 총 48명의 글을 통해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13세기부터 아편전쟁 전까지는 우아와 섬세, 동양적 관능, 야만적 폭력, 애수의 왕국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늙은 호랑이 임이 밝혀진 이후엔 아편, 게으름, 무지함 등이 주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모택동의 대장정이 성공할 즈음부터는 혁명, 거인, 힘 등의 이미지로 치환됩니다.

이처럼 서양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정확하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서양인들의 마음의 렌즈로 굴절되어 집합된 심상(心像)의 총합이니까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서양인들에게 아시아의 대명사는 중국이지만, 여전히 그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서양의 중국에 대한 이해는 멀어 보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문명들도 그들이 생각하는 중국만큼이나 왜곡된 이미지를 우리가 갖고 있는게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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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유인원 - 영장류를 통해 바라본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의 초상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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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유사 이래 철학과 종교의 주된 논제였던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자는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두 종의 유인원, 침팬지와 보노보를 통해 인간 본성탐구를 시도합니다.

여기서 잠깐! 유인원과 원숭이를 구분하실 줄 아시는 분?
유인원은 꼬리가 없고 원숭이는 꼬리가 있습니다. 유인원은 전 세계에 딱 4종 밖에 없습니다.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침팬지는 익히 들어보셨겠지만 보노보는 낯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보노보는 한 때 `피그미침팬지`라는 침팬지의 아종으로 잘못 알려진, 현재 지구상에 2만 마리 밖에 남아있지 않은 멸종위기종입니다.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히 침팬지와 다른 종입니다. 이 보노보가 흥미로운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침팬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폭력적이고 권력투쟁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바나나만 먹고 살 것 같은 얼굴이지만, 원숭이를 잡아다 산 채로 찢어먹는 동물이죠(침팬지가 우습게 생겼지만 성인 5명 분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타잔에선 치타가 타잔의 부하 내지는 애완동물 쯤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타잔이 치타의 부하일지도?). 침팬지 무리들은 다른 침팬지 무리와 세력권 다툼이 생기면 격렬하게 싸웁니다. 실제로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10년간 학살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침팬지 무리 내부에서도 격렬한 권력 다툼이 발생합니다. 우두머리 한 마리가 암컷들과 교미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노보는 분쟁을 폭력이 아니라 섹스로 해결합니다. 두 무리가 커다란 먹이를 두고 다툼이 발생하면 두 무리의 우두머리가 나와서 교미를 합니다. 그리고 먹이를 사이좋게 나눠 갖죠. 어느 종에서도 보기 힘든 특이한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이러한 침팬지의 생태는 얼마 전까지 인간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인간은 침팬지처럼 폭력적인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쟁과 차별, 전쟁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거죠. 경쟁이 당연한 것이니, 약자에 대한 배려라든가 복지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상을 뒷받침하는 생물학적 증거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보노보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통념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잘못 해석해서 나온 이론이 사회적 다위니즘입니다. 나치 유태인 학살의 기반이 된 이 이론은 진화론에서 적자생존만 따와서 사회구성원으로 적합하지 못한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는 말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론입니다. 하지만 다윈의 적자생존은 환경변화에 적합하게 진화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환경변화에 적합하지 않은 종을 말살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 진화론의 트렌드는 협력 진화입니다. 즉, 생물 개체 간의 협력을 통해 진화에 적합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침팬지와 보노보이구요.

저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구체적 연구 사례를 통해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발전해 왔음을 근본적으로 부정합니다. 인류는 애초에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밖에 없게 진화된 것이지, 홉스나 로크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간의 계약에 의해 공동체를 만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간의 경쟁에 기반하여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위험한 줄타기. 천 길 벼랑 끝을 걷는 것 처럼 항상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고치기 위해서도 협력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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