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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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80년 5월의 광주에. 자기 집에 세들어 살던 동급생 친구가 시위 현장에서 실종되자 친구를 찾아나섰다가 상무관에서 시체들을 수습하는 일을 맡은 열 다섯 소년. 엄마와 작은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등학생이라 우기며 그 날 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소년. <소년이 온다>는 이 소년, 동호와 동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장 씩 할애하여 들려준다. 학살과 고문, 모욕과 감시로 점철된 시대를 견뎌내고 저항하며 상처입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요즘 <채식주의자>가 한강의 대표작처럼 거론되고 있으나, 이 책 <소년이 온다>야말로 그녀가 다시는 쓸 수 없을 걸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80년의 광주를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어떤 숭고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행동했던 동호 같은 사람들을.
아니 되새기고 싶지 않다 해도 금남로에서 11공수여단의 시가행진을 계획한 악마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잔인함에 몸서리치며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민주주의는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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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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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독서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원리와 아이에게 어떻게 독서를 익히게 해야 하는지, 디지털 시대에 독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정도일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책 분량의 대다수를 할애하며 꼼꼼히 설명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전공자가 번역하였으나 문장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난해해서 `번역 참 구리게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니 원래 책이 어려운 거였다. `문식성`, `화용론` 같은 학술 용어들이 난무하고, 설명을 위한 삽화의 대부분이 뇌 그림이어서 내용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을 위한 과학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워서 평범한 학부모들에게 추천하긴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건진 게 있다면, 독서라는 행위로 인해 우리 뇌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면서 사고가 확장되고 분석, 기획, 통찰하는 능력이 키워진다는 것과, 아이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독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생 제대로 독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아기에 저녁 밥상에서 부모와 나누는 대화가 아이의 언어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보면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유아기 문해 능력의 발달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 대학의 캐서린 스노우(Catherine Snow)와 동료 학자들은 독서 교재 외에 후일 독서 능력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그리 유별날 것도 없는 저녁식사 때 나누는 `밥상머리 대화`의 양을 꼽는다. 그저 아이에게 말을 걸고, 책을 읽어 주고 아이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유아기 언어 발달에 중요한 전부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불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가정에서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기본적인 요소에 할애되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뇌의 설계는 독서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독서의 설계는 뇌를 다양하게, 결정적으로 그리고 계속 진화해 나가도록 변화시켰다. 이러한 상호 역학은 인류 역사상 문자의 탄생과 아이의 독서 학습을 통해 빛을 발한다. 인간은 독서를 배움으로써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의 한계에서 해방되었다. 인류의 조상이 어느 날 갑자기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결과,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문식성을 통해 바퀴를 매번 다시 발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한 발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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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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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린은 대도시 군 병원에서 일하는 군의관이다. 그에겐 고향의 부모가 정해준 아내 수위가 있다. 전형적인 농촌 아낙인 수위는 고향 시골에서 딸을 키우며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 린은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만나에게 끌리게 되고, 아무 애정없는 결혼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휴가를 받아 집에 갈 때마다 아내와 이혼하려고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를 거듭하고 그의 이혼 시도는 17년 동안 계속된다.
얼핏 들으면 흔한 불륜 이야기 같지만, 이 중 악인은 아무도 없다. 심약한 린과 가련한 만나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순종적인 수위에게도 동정심을 갖게 된다. 섬세하고 풍부한 심리 묘사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탁월한 절제를 보여주는 문장은 마치 펄 벅의 소설을 연상케 한다. 여기엔 소설가 김연수의 매끄러운 번역도 한 몫 한다.
<기다림>의 저자 하 진은 중국 태생으로 미국 유학 중에 천안문 사태를 맞아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다. 마흔 셋의 나이에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이 <기다림>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대단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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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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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위화를 꼽을 수 있다. 위화는 10개의 단어(인민/영수/독서/글쓰기/루쉰/차이/혁명/풀뿌리/산채/홀유)를 키워드로 하여 공산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부유하는 현대 중국의 사회와 경제, 도덕의 급격한 변화와 이로 인해 파생된 모순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조롱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경험한 수많은 실화들이 등장하는데, 사실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부조리하다. 그리고 그 이면엔 항상 문화대혁명이 있다. 고교 시절, 위화와 친하게 지내던 국어 선생이 제발 자기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써붙여달라고 위화에게 조른다거나, 초등학생 때 친구와 어떤 논쟁을 하든 `루쉰 선생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주장하면 반드시 이기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현대 중국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냉혹한 코미디 같다는 기분이 든다. 대약진운동 때 모택동이 참새를 가리키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한 마디를 했다고 전 인민이 들고 일어나 중국의 참새를 모두 잡아 죽이는 바람에 해충으로 인한 대기근이 발생하여 3천만명이 굶어 죽은 것처럼 말이다. 하루키 소설의 시원이 60년대 전공투이듯, 위화의 글은 언제나 문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화의 인생 뿐만 아니라, 당금의 중국, 중국인의 모든 사상과 생태에 절대적 영항을 미친 사건이니까.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문화대혁명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반 민중들의 삶이 문혁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아주 쉽게 보여준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장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나 중국 각지의 양곡 창고는 텅텅 비었다. 그 뒤로 이 낭만주의 부조리극은 무기력하게 막을 내리고 현실주의의 잔혹한 비극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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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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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노 불문학자의 글모음 답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칼럼조차도 대단히 문학적이다. 어휘 하나하나가 저자의 치열한 고민 속에서 바루어졌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어딘가에 기고했었을 1, 3부의 단문 모음도 좋으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결론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허나 2부야 말로 이 책의 정수가 아닐까 한다. 사진가의 사진 한 장을 걸어 놓고 온갖 상상을 펼쳐 내어 진한 시적 감흥을 끌어내는 저자의 `사진 평론` 이야말로 예술 평론이 나아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학교 교육의 코드를 알아차리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나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와 대답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토론식 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드는 토론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고, 각본에는 질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한두 해를 방황 속에 허송하다가 `복학생 아저씨`가 되고 나서야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군대 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표준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의 특수한 정서와 얽혀 있는 생각을 보다 큰 틀의 잣대로 검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폐쇄사회가 당하는 가장 큰 곤경, 그것은 모든 사태가 항상 어느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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