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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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기 한 소년이 있다. 80년 5월의 광주에. 자기 집에 세들어 살던 동급생 친구가 시위 현장에서 실종되자 친구를 찾아나섰다가 상무관에서 시체들을 수습하는 일을 맡은 열 다섯 소년. 엄마와 작은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등학생이라 우기며 그 날 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소년. <소년이 온다>는 이 소년, 동호와 동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장 씩 할애하여 들려준다. 학살과 고문, 모욕과 감시로 점철된 시대를 견뎌내고 저항하며 상처입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요즘 <채식주의자>가 한강의 대표작처럼 거론되고 있으나, 이 책 <소년이 온다>야말로 그녀가 다시는 쓸 수 없을 걸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80년의 광주를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어떤 숭고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행동했던 동호 같은 사람들을.
아니 되새기고 싶지 않다 해도 금남로에서 11공수여단의 시가행진을 계획한 악마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잔인함에 몸서리치며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민주주의는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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