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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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노 불문학자의 글모음 답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칼럼조차도 대단히 문학적이다. 어휘 하나하나가 저자의 치열한 고민 속에서 바루어졌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어딘가에 기고했었을 1, 3부의 단문 모음도 좋으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결론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허나 2부야 말로 이 책의 정수가 아닐까 한다. 사진가의 사진 한 장을 걸어 놓고 온갖 상상을 펼쳐 내어 진한 시적 감흥을 끌어내는 저자의 `사진 평론` 이야말로 예술 평론이 나아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학교 교육의 코드를 알아차리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나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와 대답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토론식 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드는 토론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고, 각본에는 질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한두 해를 방황 속에 허송하다가 `복학생 아저씨`가 되고 나서야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군대 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표준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의 특수한 정서와 얽혀 있는 생각을 보다 큰 틀의 잣대로 검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폐쇄사회가 당하는 가장 큰 곤경, 그것은 모든 사태가 항상 어느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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