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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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풀하우스>를 보고 어떤 게 연상되시나요? 포커의 패? 송혜교와 비가 주연한 드라마?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서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강력한 포커의 패라는 의미로 풀하우스를 차용했다고 밝히지만, 책을 읽다보면 풀하우스가 지구의 생명 시스템 전체를 일컫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쌍벽을 이루는, 진화생물학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입니다. 도킨스와 더불어 진화론에 대한 대중서를 많이 저술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도킨스는 `초다윈주의(Hyper-darwinism)` 학자로 분류되는데, 생물의 모든 진화는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 선택에 의해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진화의 핵심이 유전자라고 말합니다. 극단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죠.

반면 굴드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합니다. 단속평형설이란 생물 종의 진화는 오랜 기간 안정된 상태로 큰 변화가 없다가 특정한 변화의 시기에 폭발적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입니다.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는 이론이죠. 이것 때문에 굴드와 도킨스는 엄청나게 논쟁을 했었습니다. 굴드가 2002년 폐암으로 급작스레 사망하는 바람에 논쟁이 더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지만요.

이 두 사람의 이론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했는데, 사실 이 <풀하우스>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건 2년 쯤 전 도킨스의 또 다른 책 <눈먼 시계공>을 읽다가 도킨스가 챕터 하나를 할애하여 굴드를 신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굴드를 전혀 모를 때라 도킨스가 대체 왜 이렇게 굴드를 잘근잘근 씹어대는지 궁금했거든요. 좀 찾아보니 굴드는 급진적 성향을 가진 과학자라 진화학계에서 꽤나 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폐암을 앓기 십 수년 전, 복부중피종이라는 희귀한 암에 걸렸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했을 때도 `저거 쇼 하는 거 아냐?`라고 고깝게 보는 학자들이 있었을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굴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 소위 빅 네임(Big Name)이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굴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한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굴드는 진화가 곧 진보라는 명제를 거부합니다. 도킨스는 진화가 몇 백, 몇 천만년 동안 단순한 개체에서 복잡한 개체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인간의 눈은 엄청나게 정밀한 기관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복잡성, 스위스 시계보다 더한 정밀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중세 신학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기관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 여겼습니다.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관이 생겼겠냐는 거죠. 하지만 도킨스는 천문학적인 시간에 걸쳐 수 십만 세대를 지나면 자연 선택의 압력 때문에 환경에 맞게 점진적으로 진화하여 복잡한 기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건 곧 진화가 진보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거죠.

하지만 굴드는 `진화가 곧 진보를 뜻한다면 박테리아 같은 생물은 왜 아직도 존재하는가?`라고 되묻습니다. 박테리아는 이 지구상 어떤 생물보다도 먼저 태어났고, 지금도 다른 어떤 생물보다 많습니다. 생물량이라고, 생물 집단 개체수가 아닌, 전체 무게의 합으로 생물 집단을 파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무가 지구상에서 가장 생물량이 큰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박테리아의 생물량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박테리아인 것이죠.

굴드가 진보를 거부하는 것은 진화의 최종 정점에 인류가 서 있다는 오만함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인류가 등장하기 위해 생명이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인류의 등장은 단지 기막힌 우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을 쥬라기로 되돌려 다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 인류가 생겨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진화를 진보가 아닌 다양성의 증가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단순한 생명체에서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물 다양성이 증가됨에 따라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굴드가 이토록 진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진화가 곧 진보라고 진화론이 잘못 해석되고 사회과학과 그릇되게 결합하여 과거 나치가 행했던 인종말살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윤리의식이 결여된 기술개발이 이루어지는 걸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굴드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적 기법과 생물학적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현대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이 기법을 통해 설명하여 신뢰도를 높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보면 진화에는 진보가 전혀 없다는 그의 주장에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이 진화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종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는 것은 변화의 압력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진보해 나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한 최대한 쉽게 써 보려 했는데, 오히려 어려운 서평이 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이 책이 대중 과학서로 쓰여지긴 했지만, 진화론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설명해 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진화론은 간단한 몇 가지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론이지만,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이론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각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진화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굴드나 도킨스의 저작 한 권 쯤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진화론이 그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크게 잘못 알고 계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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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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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이번 에세이의 주제는 속담입니다.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 보았을 속담집은 속담과 그 뜻을 나열하고 거기서 얻는 교훈을 살펴보는 형태로 되어 있었죠. 이 책은 조금 다릅니다. 스물 아홉 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요. 챕터의 양식이 일정합니다. 일단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왔을 법한 꽁트(근데 이게 좀 강도가 셉니다. 음담패설까지는 아닌데 부부 사이의 외도 같은 은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를 한 꼭지 보여주고, 그에 걸맞는 요네하라 마리가 수집해온 세계 각국의 속담을 펼쳐놓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 일본이나 유럽의 속담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중동 각국의 속담, 심지어는 동남아 소수민족의 속담까지 엄청난 분량의 속담들을 보여줍니다. 물론 한국의 속담도 나오죠. 하지만 단지 보여주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속담의 기원을 추적하여 그리스 고전이나 셰익스피어 작품까지 파고 들어가는 걸 보면 경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는 진가는 이 다음에 나타납니다. 한 편의 콩트를 보여주고, 이에 관련된 속담을 늘어놓은 후, 갑자기 시사 평론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아니, 시사평론이라기보다는 `부시와 고이즈미 신나게 까기`라고나 할까요. 에세이를 잡지에 연재하던 당시, 부시가 대테러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내놓으라며 쳐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고이즈미는 미국에 딱 달라붙어 굽신거리며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굴욕적 외교를 벌이고 있었죠. 요네하라 마리는 스물 아홉 개 챕터 대부분에서 이 둘을 맹렬히 비판합니다. 부시는 미 대통령 자격 미달인 저능아, 고이즈미는 부시의 애완견이자 매국노라고 읽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할 지경으로 독설을 내뿜습니다. 대단한 기백을 가진 여장부죠.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부시가 그 원숭이 같은 얼굴이 붉어지도록 열을 올리며 후세인을 힐난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볼 때마다 `뒤가 구린 자일수록 의심이 많다`라는 이탈리아 속담을 떠올린다. 그 다음 순간 과연 부시의 뇌수에서 ‘뒤가 구리다’와 같은 고등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긴 하지만.˝

˝그런 일본을 ‘개’나 ‘바둑이’라고 멸시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건 실례다. 개에게 말이다. 개는 무력하고 제구실 못 하는 주인에게조차 평생 충성하지만 일본이 몸과 마음을 바쳐 받들어 모시는 건 어디까지나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 이왕 기댈 양이면 힘센 자에게 기대야 할 것 아닌가. 도와달라고 구걸할 때도 이왕이면 힘센 자한테서 더 크고 안전한 도움을 받는 게 영리한 거다. 원래 `이왕 기댈 바엔 큰 나무 밑이 안전하다`는 건 그런 처세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충견만으로는 안 된다. `개가 될 양이면 부잣집 개가 되어라` 하는 거다.˝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는 일본 공산당의 핵심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요네하라 마리가 어린 시절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한 것도 일본 공산당에서 아버지를 프라하로 파견 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네하라 마리도 일본 사회의 경직된 정치·경제·문화에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비판 속에도 적절한 유머와 조크를 섞어 독자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는 그녀의 글재주는 경탄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연속으로 요네하라 마리의 책 세 권을 읽고 서평을 썼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속담 인류학>이 그 중 제일 괜찮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다시금 생각을 곱씹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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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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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교양 노트>에 이은 요네하라 마리의 또 다른 에세이집입니다. 제목 그대로 속옷으로 보는 소소한 문화사인데요. 저자는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며 속옷 탐구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삼았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거창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 체코에서 겪은 속옷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가 즐겨 착용하던 훈도시에 대한 이야기, 성서 속의 아담과 이브는 정말 무화과나무 잎 하나만 걸쳤을까 하는 의문 등에서 시작해 스커트가 먼저인가, 바지가 먼저인가 하는 복식(服飾)의 문제까지 넘어가게 됩니다.


그 중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서는 팬티를 단 한 장도 생산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자 부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여성들은 팬티를 스스로 만들어 입었다고 하네요. 그럼 남성은? 러시아의 전통 복장 중 루바시카라는 옷이 있는데요. 와이셔츠와 비슷하지만 아래가 허벅지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는 웃도리라고 하네요. 남자들은 이 루바시카와 바지만 입고 팬티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그럼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일본 영토였던 사할린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소련이 기습적으로 점령해버립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요. 여하튼 사할린이 소련에 점령된 후 많은 일본인들이 전쟁 포로 또는 정치범으로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그 일본인들이 가장 고통받은 게 무엇이었을까요? 배고픔? 추위? 혹독한 노동? 아닙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단 한 장의 휴지도 없어서 헝겊, 솜, 심지어 시멘트 포대를 뜯어서 썼다고 합니다. 그럼 러시아인들은 어땠느냐. 그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바로는 러시아인들은 휴지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변을 보고 닦지 않고 그냥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입는 루바시카는 늘 끝이 누랬다고 합니다(우웩). 러시아인들은 일본인들과 식생활이 달라 변이 딱딱해서 닦을 필요가 없었다는게 그들의 변(辨)입니다(다시 한 번 우웩).


이 책의 전반부는 대체로 재미있습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문학작품과 증언을 자세히 수집하고, 속옷의 언어적 기원까지 추적해가는 저자의 노력도 대단하구요.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훈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흥미가 떨어집니다. 이는 요네하라 마리가 일본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요. 또한 `필생의 프로젝트` 치고는 글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다음 서평도 요네하라 마리의 책으로 쓸 생각입니다. 사실 지난 번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요네하라 마리 책을 번들로 싸게 팔길래 몇 권을 한꺼번에 샀거든요. 올해가 가기 전에 서평 하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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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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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의 동시통역가이자 저명한 에세이스트입니다. 9살부터 14살까지 부모를 따라 체코에 거류하면서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닌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가 1950년 생이니 냉전이 한창인 시대에 공산주의 문화를 체험한 것이죠. 그녀는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지만, 그 에세이 전부에 이 5년 간의 경험이 꼭 들어갑니다. 요네하라 마리의 정신세계의 뼈대를 이루는 체험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 책 <교양 노트>는 저자가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입니다. 짤막한 칼럼이다보니 긴 호흡으로 사유를 정리할 만한 글들은 아니지만, 요네하라 마리 특유의 간결하고 재치넘치는 문장이 읽는 맛을 살려 줍니다. 대화 중에 반드시 조크를 끼워넣는다는 러시아인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네하라 마리가 타고난 재담꾼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글은 꽤 재미있습니다. 간혹 일본인 특유의 싱거운 이야기가 보이기도 하지만요.


그녀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걸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이 있습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데 북풍은 바람을 실컷 불었지만 실패했고, 태양은 뜨거운 햇볕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죠. 이 이야기의 교훈은 `외부의 강요보다 스스로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정도가 되겠는데요.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북풍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여행자는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자각했다. 하지만 태양의 경우, 여행자는 태양의 의지를 마치 자기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해 외투와 모자를 벗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바탕으로 한 듯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끊임없이 사고, 자신의 의견인 양 방송 진행자나 신문의 논조를 반복한다. (…) 정신의 자유를 위해서는 허울뿐인 자유보다는 자각하고 있는 속박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 89~90쪽, 「북풍형, 태양형」에서


이를테면 이런 거죠. 80년대에는 적이 명확했기에 싸워야할 대상도 명확했습니다. 그렇기에 대중의 의식도 명확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언론 조작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과다 때문에 마치 그러한 정보들이 자신의 생각인양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사실은 내 생각이 아닌 걸 갖고 `나는 자유롭게 사고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가 제시하는 프레임에 갖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확대 재생산하면서 말이죠.


요네하라 마리는 이처럼 틀 안에 갖힌 상식과 편견을 깨트리길 즐겨합니다.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일단 재미있는 글을 읽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이런 글도 있습니다. 소련의 지도자 브레즈네프가 사망했을 때, 일본의 한 러시아정치 학자가 TV에 나와 자기 나름의 `반들반들 덥수룩 이론`을 소개합니다. 소련의 지도자는 대대로 대머리 다음에 덥수룩한 머리가 등장했다는 거죠. 대머리 레닌 다음에 덥수룩한 스탈린, 그 다음 대머리 흐루시쵸프, 덥수룩한 브레즈네프라는 식이죠. 같이 TV에 나왔던 학자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반응이었지만, 결국 그 다음 지도자는 대머리 고르바초프가 됩니다. 소련이 무너진 후의 TV 대담에서 그 학자가 다시 등장해 ˝이번엔 덥수룩한 머리 차례니 옐친이 될겁니다˝라고 예언하고 또 맞추죠. 그 다음은 대머리 차례인데 푸틴의 머리가 점점 벗겨지는게 참 신통방통 하네요.


예전에 읽었던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도 꽤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음식 소개가 아니라 음식과 문화에 얽힌 배경과 지식을 잘 버무려 맛깔나게 펼쳐주거든요. 북페어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몇 권 샀는데, 당분간 그 책들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아쉬운 건 요네하라 마리가 2006년 난소암으로 별세하여 더 이상 그녀의 신작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고종석이 스스로 `요네하라 마리의 충성스러운 독자이자 숭배자`라고 고백한 그녀의 책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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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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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땐 스페인의 유명한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한 도보 여행기이리라 짐작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 책을 몇 쪽 읽으면서 `내가 완전히 착각했구나`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한 여행기가 맞긴 하지만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쭉 따라가는 친절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따라가긴 하지만, 자주 샛길로 벗어납니다. 아니, 거의 스페인 전역을 여행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차라리 곁다리로 붙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지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된다는 네덜란드 출신 작가는 수십 년에 걸쳐 스페인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스페인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평범한 여행기처럼 `오늘은 여기를 갔고, 뭘 먹었고, 어떤 경치를 구경했다`는 식의 언술은 거의 없습니다. 문장마다 스페인의 역사, 문학, 건축, 예술에 대한 지식이 넘쳐나죠.


하지만 이 책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여행기치고는 지나치게 어려워요(적어도 저한테는). 레콩키스타, 바로크 미술, 수르바란, 로마네스크 건축, 이사벨라 여왕, 스페인 내전, 엘 시드, 이슬람과 유태인, 수없이 등장하는 성당과 수도원, 종교 전쟁, 수많은 왕들... 어디선가 한 번씩 스쳐가며 들었던 이야기들이 심도있게, 그리고 불친절하게 펼쳐지는데 그 깊이가 엄청나 자칫 발을 헛디디면 어푸어푸 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쓸쓸하고 난해한 문체도 이 책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처음엔 네덜란드어 원본이 아니라 영어판을 중역한 책이라 읽기 어렵나 했는데, 원래 어려운 책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신혼 여행 때 보았던 스페인의 풍경이 생각납니다. 그라나다에서 말라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황량한 스페인의 들판. 흡사 서부영화의 황야를 방불케하는, 마른 덤불이 굴러다니고 군데군데 조그만 관목이 자라는, 강렬한 자외선이 내리쬐는 땅. `스페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정열, 화려, 패셔너블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책.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흙먼지를 서걱서걱 씹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자동차로 홀로 여행하는 고독한 노작가의 이야기. 그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이 책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굉장히 피곤합니다. 절로 두통이 생기구요. 문장 하나하나 이해하며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챕터도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스페인의 방대한 역사,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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