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앞서 소개한 <교양 노트>에 이은 요네하라 마리의 또 다른 에세이집입니다. 제목 그대로 속옷으로 보는 소소한 문화사인데요. 저자는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며 속옷 탐구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삼았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거창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 체코에서 겪은 속옷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가 즐겨 착용하던 훈도시에 대한 이야기, 성서 속의 아담과 이브는 정말 무화과나무 잎 하나만 걸쳤을까 하는 의문 등에서 시작해 스커트가 먼저인가, 바지가 먼저인가 하는 복식(服飾)의 문제까지 넘어가게 됩니다.


그 중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서는 팬티를 단 한 장도 생산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자 부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여성들은 팬티를 스스로 만들어 입었다고 하네요. 그럼 남성은? 러시아의 전통 복장 중 루바시카라는 옷이 있는데요. 와이셔츠와 비슷하지만 아래가 허벅지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는 웃도리라고 하네요. 남자들은 이 루바시카와 바지만 입고 팬티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그럼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일본 영토였던 사할린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소련이 기습적으로 점령해버립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요. 여하튼 사할린이 소련에 점령된 후 많은 일본인들이 전쟁 포로 또는 정치범으로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그 일본인들이 가장 고통받은 게 무엇이었을까요? 배고픔? 추위? 혹독한 노동? 아닙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단 한 장의 휴지도 없어서 헝겊, 솜, 심지어 시멘트 포대를 뜯어서 썼다고 합니다. 그럼 러시아인들은 어땠느냐. 그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바로는 러시아인들은 휴지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변을 보고 닦지 않고 그냥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입는 루바시카는 늘 끝이 누랬다고 합니다(우웩). 러시아인들은 일본인들과 식생활이 달라 변이 딱딱해서 닦을 필요가 없었다는게 그들의 변(辨)입니다(다시 한 번 우웩).


이 책의 전반부는 대체로 재미있습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문학작품과 증언을 자세히 수집하고, 속옷의 언어적 기원까지 추적해가는 저자의 노력도 대단하구요.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훈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흥미가 떨어집니다. 이는 요네하라 마리가 일본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요. 또한 `필생의 프로젝트` 치고는 글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다음 서평도 요네하라 마리의 책으로 쓸 생각입니다. 사실 지난 번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요네하라 마리 책을 번들로 싸게 팔길래 몇 권을 한꺼번에 샀거든요. 올해가 가기 전에 서평 하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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