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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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 보았을 땐 스페인의 유명한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한 도보 여행기이리라 짐작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 책을 몇 쪽 읽으면서 `내가 완전히 착각했구나`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한 여행기가 맞긴 하지만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쭉 따라가는 친절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따라가긴 하지만, 자주 샛길로 벗어납니다. 아니, 거의 스페인 전역을 여행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차라리 곁다리로 붙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지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된다는 네덜란드 출신 작가는 수십 년에 걸쳐 스페인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스페인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평범한 여행기처럼 `오늘은 여기를 갔고, 뭘 먹었고, 어떤 경치를 구경했다`는 식의 언술은 거의 없습니다. 문장마다 스페인의 역사, 문학, 건축, 예술에 대한 지식이 넘쳐나죠.


하지만 이 책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여행기치고는 지나치게 어려워요(적어도 저한테는). 레콩키스타, 바로크 미술, 수르바란, 로마네스크 건축, 이사벨라 여왕, 스페인 내전, 엘 시드, 이슬람과 유태인, 수없이 등장하는 성당과 수도원, 종교 전쟁, 수많은 왕들... 어디선가 한 번씩 스쳐가며 들었던 이야기들이 심도있게, 그리고 불친절하게 펼쳐지는데 그 깊이가 엄청나 자칫 발을 헛디디면 어푸어푸 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쓸쓸하고 난해한 문체도 이 책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처음엔 네덜란드어 원본이 아니라 영어판을 중역한 책이라 읽기 어렵나 했는데, 원래 어려운 책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신혼 여행 때 보았던 스페인의 풍경이 생각납니다. 그라나다에서 말라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황량한 스페인의 들판. 흡사 서부영화의 황야를 방불케하는, 마른 덤불이 굴러다니고 군데군데 조그만 관목이 자라는, 강렬한 자외선이 내리쬐는 땅. `스페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정열, 화려, 패셔너블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책.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흙먼지를 서걱서걱 씹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자동차로 홀로 여행하는 고독한 노작가의 이야기. 그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이 책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굉장히 피곤합니다. 절로 두통이 생기구요. 문장 하나하나 이해하며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챕터도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스페인의 방대한 역사,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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