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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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망의 코앞에서 세계를 구한 건 뤄지의 담대함이었다. 핵억지력이 핵보유국 간의 전쟁을 막아내듯, 전 우주에 지구와 삼체 행성의 존재를 알려 공멸하겠다는 뤄지의 협박이 먹혀든 것이다. 아슬아슬한 평화는 61년 간 지속되었고 인류의 운명은 여전히 뤄지에게 달려 있었지만, 그땐 누구도 몰랐다. 공멸 버튼을 누를지 아닐지 모를 뤄지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이 멸망을 유예하고 있었음을.

3부의 주인공 청신은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너무 늙어버린 뤄지의 뒤를 이어 공멸 버튼을 손에 쥔 ‘검잡이‘가 된 그녀의 결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뤄지는 전 인류와 삼체 문명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인류애의 화신인 청신은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그걸 간파한 삼체 문명은 청신이 검잡이가 되자마자 재빨리 지구를 재침공한다. 압도적인 과학기술의 격차 앞에서 인류는 바람에 눕는 갈대보다 무력했다. 자, 지구 문명은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실 3부 중간부터 인류의 적은 더 이상 삼체가 아니다. 우주라는 암흑의 숲, 그 어디에 눈을 부릅뜨고 있을지 모를 수많은 사냥꾼들이 모두 적이었다. 삼체 문명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들의 무력 앞에서 인류는 그저 한 마리 벌레에 불과했다. 크툴루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그들의 손짓 한 번에 인류, 아니 태양계 전체가 위기에 처한다.

결국 우주를 구하는 것은 사랑이었다. 짝사랑하는 이에게 저 멀리 빛나는 별을 선물하는 사랑, 지구를 구할 단서를 동화로 만들어 들려주는 사랑, 170억년이라는 억겁의 시간을 안배하는 사랑.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이 곧 우주를 위한 사랑이었다. 살면서 800페이지 짜리 책을 이토록 순식간에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SF 소설을 뛰어넘는 한 편의 초절(超絶)한 교향곡을 만들어 낸 거장 류츠신의 놀라운 상상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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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 :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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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400년. 4광년 떨어진 삼체 문명에서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출발한 함대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그 400년 동안 인류는 삼체 함대에 맞서 싸워 이기고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절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를 간파한 삼체 문명은 우월한 기술력으로 양자 크기의 슈퍼 컴퓨터인 지자(智子)를 만들어 지구에 파견한다. 이 지자는 입자가속기의 관측 결과를 교란하는 등 남은 400년 동안 인류의 과학 기술 발전을 저지하고 지구 전체를 감시·감청하여 이 정보를 양자 얽힘을 이용해 삼체 문명에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인류는 삼체 문명 앞에 발가벗겨진 채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인류는 이에 맞서기 위해 4명의 면벽자를 지정한다. 면벽자란, 불교에서 면벽 수련하듯 홀로 자기 만의 세계에서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지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머릿 속으로만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전술과 기만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미국의 국방장관, 남미의 대통령, 영국의 뇌과학자가 각각 면벽자로 선정된다. 나머지 한 자리는, 1부에서 삼체 문명을 불러들인 장본인인 예원제의 딸의 대학 동기인 뤄지에게 돌아간다. 지극히 평범한, 별 성과도 없는 천문학자인 뤄지가 선발된 이유는 간단했다. 전인류 중 유일하게 삼체 문명이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인물이 바로 뤄지이기 때문이었다. 예원제는 삼체 문명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채고 뤄지와의 짧은 만남에서 삼체에 대항할 수 있는 몇 가지 화두를 남긴다. 이제 뤄지와 나머지 면벽자들은 삼체 함대를 물리칠 각자의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과연 인류는 절망의 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류츠신은 1부에서 잔뜩 풀어놓은 매력적인 설정을 확장하여 2부를 이어 나간다. 독자들은 면벽자들이 세운 대담한 계획에 전율하게 된다. 인류는 절멸의 공포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생존과 인류애, 어느 것이 먼저인가? 살아남은 지구 함대 앞에 놓인 트롤리의 딜레마를 처리하는 류츠신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으나 ‘어둠의 숲‘ 이론에 대한 은유로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 여전히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불어난 분량만큼 군더더기가 많이 붙은 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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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부 : 삼체문제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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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후회가 들었다. 왜 책부터 읽지 않고 넷플릭스 드라마부터 봤을까?

SF소설의 시조인 H.G. 웰스의 <우주전쟁>부터 외계인의 지구 침공은 SF의 주된 주제였다. 침공 만이 아니라 외계인과 조우하고 외계 문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다룬 소설도 무수히 많았다. 어슐러 르 귄의 그 유명한 <어둠의 왼손>도 다른 별의 지적 문명과 어떻게 공존하여야 하는지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는 SF 장르 소설은 아니지만,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자신의 언어로 삼는 고도의 외계 문명을 내세워 냉전 시대의 미·소, 더 나아가 호전적인 인류 문명을 은근히 비판한다.

하지만 이 <삼체>의 특별한 점은 외계인이 일방적으로 지구에 쳐들어온 게 아니라,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폭력성과 비이성에 절망한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외계 문명에 인류를 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체>의 외계인은 누군가에겐 침략자로, 또 누군가에겐 구원자로 비춰진다. 그리하여 인류는 삼체 문명 만이 아니라 같은 인류와도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또 한 가지. 류츠신은 <삼체>에서 물리학적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삼체 문명의 과학 기술이 지구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광속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은 유지된다. 그래서 삼체 함대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4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고 그 사이에 인류가 삼체 함대에 맞서 싸울 수 있을 수준으로 과학을 폭발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가 만들어진다. 이를 예상한 삼체 문명에서는 양자역학과 초끈이론을 응용한 지자(智子)를 삼체 함대에 앞서 지구에 보내 인류의 기초과학 발전을 저지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성립한다.

드라마 보다 책을 먼저 읽지 않은 걸 후회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삼체>의 매혹적인 설정과 개념을 드라마를 통해 먼저 알아버렸으니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된다. 그리고 추리소설적 요소가 다분한 책이라 서서히 드러나는 삼체 문명의 의도와 반전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사실 이 책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장이 건조하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대사가 무척 평면적이어서 읽기에 조금 지루하다. 하기야 대가 중의 대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도 그런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우니 하드SF 작가의 한계라고 봐야겠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설정을 탁월하게 시각화해낸 드라마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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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찾아서 2 이산의 책 7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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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엔 전권에 이어 일제의 만주 침략부터 천안문 사태까지의 역사의 물줄기가 담겨 있다. 제2차국공합작, 난징대학살, 일제의 패망, 인민공화국의 탄생, 한국전 참전, 백화운동,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중·미 수교, 문호 개방, 천안문 사태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망라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부터 문화대혁명까지는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에 무척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스펜스 교수가 <현대 중국을 찾아서>를 집필할 당시엔 중국 현대사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아 <인민 3부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인민 3부작>에서 극히 부정적으로 기술된 대약진 운동과 문혁을 스펜스 교수는 다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다. 프랑크 디쾨터가 중국 공산당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학계 비판을 감안하면, 이 책이 훨씬 먼저 쓰여졌지만 학문적으로 좀 더 정치된 역사서라 하겠다. <인민 3부작>은 읽으면서도 ‘이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나서, 마치 폴 존슨이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소위 좌파 지식인들의 사생활을 까발린 행태와 비슷한 불쾌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초판이 미국에서 출판된 것은 1990년이었다.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게 1989년이었으니 역사학자로는 이례적으로 극히 최근의 사건까지 역사서에 담은 것이었다. 아직 객관적인 학계의 평가가 정립되지 않았을 때이지만, 스펜스 교수 스스로 중국사의 권위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릴 수 없었던 듯 하다. 천안문 사태를 짧지만 비판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사건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이 사건을 명 말의 농민 반란, 백련교도의 난, 의화단의 난 등과 등치시킴으로써 중국 현대사에서 민중들에게 가해진 압력이 어떤 방향으로 폭발해왔는지를 일깨운다. 사실 그의 모든 저서의 중심엔 역동하는 민중이 있었다.

중국 현대사를 개괄하기에 이 책만큼 적당한 게 없을 듯 하다.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전부 다루고 있으며 뚜렷한 주제의식에 따라 기술되었다.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밸런스가 절묘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오래 되었지만 품위를 갖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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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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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권위자인 조너선 D. 스펜스 교수의 초기작이다. 근 15년 쯤 전 그의 저작들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 구입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가 이후에 집필한 작품들 대부분이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 - 명말청초부터 천안문까지 - 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이 <현대 중국을 찾아서>는 스펜서 교수의 학문 여정에 대한 개괄서라 하겠다. 개괄서라서 그런지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천안문> 같은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 재미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요즘 진보진영의 중국 관계 전문 스피커로 유명해진 김희교 교수가 젊은 시절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선 1998년에 초판이 인쇄되었다 - 번역을 맡은 책인데, 막힘없이 술술 읽히도록 번역이 꽤 잘 되어 있다.

제목은 ‘현대 중국을 찾아서‘이지만 정작 책의 시작은 20세기 초가 아니라 명나라 말기부터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 이유를 밝히는데, ‘그렇게 해야만 현재 중국의 문제들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또 중국인들이 어떤 자원(지적·경제적·정서적)을 이용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근대 중국의 사건들을 되짚어 볼때 명말청초의 사건들이 소환되곤 한다. 저자의 이러한 시선은 현대 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노선이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중국의 과거 역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리라. 저자는 중국인들이 ‘현재에 대한 환멸과 과거에 대한 향수가 미래에 대한 열정적 희망과 결합되어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불확실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한‘ 사례로 1644년 청나라 수립, 1911년 신해혁명,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들며, 이 사건들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대 중국이 - 이 책은 천안문 사태 즈음에 쓰여졌다 - 앞으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위치할 수 있을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1권은 명말부터 모택동의 대장정까지를 다룬다. 옛날 책이라 중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눈에 띄지 않지만, 세계사 시간에 스쳐가듯 배웠던 이홍장, 증국번, 임칙서 등의 인물들의 활약상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서구의 열강들이 어떻게 중국을 침탈하려 했고, 청 왕조와 민중들은 어떻게 이를 극복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에너지의 응축과 분출은 역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지구 반대편 중국에서의 열강들 간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밝히는 대목은 국가와 지역을 기준으로 역사를 나누어 파악하는 것이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를 일깨워준다.

2권은 일본의 본격적인 만주 침략부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현대 중국의 완성이라 할만한 장면들이 숱하게 등장할 것이다. 저자가 이를 어떻게 풀어내고 해석할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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