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내내 후회가 들었다. 왜 책부터 읽지 않고 넷플릭스 드라마부터 봤을까?SF소설의 시조인 H.G. 웰스의 <우주전쟁>부터 외계인의 지구 침공은 SF의 주된 주제였다. 침공 만이 아니라 외계인과 조우하고 외계 문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다룬 소설도 무수히 많았다. 어슐러 르 귄의 그 유명한 <어둠의 왼손>도 다른 별의 지적 문명과 어떻게 공존하여야 하는지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는 SF 장르 소설은 아니지만,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자신의 언어로 삼는 고도의 외계 문명을 내세워 냉전 시대의 미·소, 더 나아가 호전적인 인류 문명을 은근히 비판한다.하지만 이 <삼체>의 특별한 점은 외계인이 일방적으로 지구에 쳐들어온 게 아니라,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폭력성과 비이성에 절망한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외계 문명에 인류를 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체>의 외계인은 누군가에겐 침략자로, 또 누군가에겐 구원자로 비춰진다. 그리하여 인류는 삼체 문명 만이 아니라 같은 인류와도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또 한 가지. 류츠신은 <삼체>에서 물리학적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삼체 문명의 과학 기술이 지구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광속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은 유지된다. 그래서 삼체 함대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4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고 그 사이에 인류가 삼체 함대에 맞서 싸울 수 있을 수준으로 과학을 폭발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가 만들어진다. 이를 예상한 삼체 문명에서는 양자역학과 초끈이론을 응용한 지자(智子)를 삼체 함대에 앞서 지구에 보내 인류의 기초과학 발전을 저지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성립한다.드라마 보다 책을 먼저 읽지 않은 걸 후회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삼체>의 매혹적인 설정과 개념을 드라마를 통해 먼저 알아버렸으니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된다. 그리고 추리소설적 요소가 다분한 책이라 서서히 드러나는 삼체 문명의 의도와 반전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사실 이 책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장이 건조하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대사가 무척 평면적이어서 읽기에 조금 지루하다. 하기야 대가 중의 대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도 그런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우니 하드SF 작가의 한계라고 봐야겠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설정을 탁월하게 시각화해낸 드라마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