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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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의 소설들처럼, 황량하고 거친 평야에 부는 스산한 바람 같은 작품. 영국 고전을 읽는 듯한 유려한 문장은 마음에 드나,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음울함을 견디기엔 스토리가 지나치게 늘어진다. 끝까지 읽고 나면 `겨우 이 이야기를 하려고 500페이지 넘게 썼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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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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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유명한 소설. 영화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가 무엇인지,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소설은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외양이나 지능은 구별할 수 없지만, 결국 다른 안드로이드나 동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기계일 뿐임을 확실히 한다. 오히려 주인공 릭 데커드나 이지도어가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이입하는 모습이 작품 내내 묘사된다. 이런 점에서 SF의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기계`와는 거리가 있는 소설이다. 단지 끝까지 읽어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고걔를 갸웃거리게 한다는 점이 아쉬울 뿐,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어딜 가든 너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인생의 기본 조건이다. 자기 정체성에 위배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의 기본 조건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그 피조물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 피조물이 벗어날 수 없는 패배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저주이며, 모든 생명체를 빨아먹고 사는 저주이다. 우주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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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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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삶은 다시 돌이킬 수 없기에, 반복될 수 없기에, 한없이 무거운 것인가? 한없이 가벼운 것인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 라고 하지만 똑같은 역사가 반복된 적은 없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회성의 역사. 그래서 역사의 가치는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인간 존재는 어떠한가? 여기 네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인간의 삶과 존재는 바람에 흩날리는 비누방울처럼 한없이 가볍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마음이 아주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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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사람들 히스토리아 문디 9
아일린 파워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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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세의 사료(토지 대장, 연대기, 여행기, 서한, 유언, 교훈서, 기념비, 심지어는 건물까지)를 샅샅이 뒤져 중세의 실존 인물 여섯 명을 재구성한다. 농부 보도, 마르코 폴로,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메나지에의 아내, 상인 토머스 벳슨, 직물업자 토머스 페이콕. 각기 다른 나라(주로 잉글랜드이지만), 다른 계층,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일생을 재구성한 `개인의 사회사`를 읽고 있노라면 인류 의식의 발전이 얼마나 더딘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이 1924년에 씌여졌다는 사실(요즘 나온 책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을 알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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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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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시민의 책을 처음 본 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급문고에 갖다 둔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으면서였다. 그 전까지 그저 재미로 책을 읽었었던 나는, 유시민이 실증주의 역사가 랑케를 추종하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역사의 진보를 깨달아 `인생에 암운이 드리웠다`고 술회한 것처럼,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비판적 사고에 눈을 떴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알아왔던 게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내가 모르는, 진실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이 청년기에 읽었던 고전들을 장년이 된 지금 다시 읽고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새로이 느낀 바를 써내려간 책이다. 유시민이 젊었을 적 읽었던 고전과 지금 다시 읽은 고전의 느낌이 다르듯, 어릴 적 읽었던 청년 유시민과 갖은 풍파를 겪고 초연해진 유시민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가슴 속의 불이 슬픔에 꺼져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유시민이 소개한 고전 중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어릴 때도 참 재미있게 몇번이나 읽었던 책이라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사마천의 <사기>나 푸쉬킨의 <대위의 딸>도 읽어보고 싶고. 읽을 책은 많은데 시간이 모자라구나.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덕∙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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