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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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컨셉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세계 곳곳의 가족들이 일주일 동안 먹는 식재료나 음식을 죄다 꺼내어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것.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을 보면 된다는 말처럼, 이 가족들이 먹는 음식은 그 나라의 현실을 반영한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 영양과다로 비만에 시달리는 나라, 패스트푸드의 습격으로 전통 음식의 설 자리가 사라져 가는 나라... 그 나라의 식문화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와 이슈, 시민들의 생활상 또한 예리하게 잡아낸 책이다.

사진작가 남편과 작가 아내의 공동 취재로 만든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의 놀라운 힘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만 가지 단어보다 사진에 찍힌 인물의 눈빛과 그 순간의 풍경이 훨씬 더 독자의 마음에 깊은 각인을 새긴다. 필름과 디지털이 반반 섞인 사진들을 풀컬러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건강한 채식주의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지고선이라고 주장하는 게 나같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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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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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공사장에서 일한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보잘것 없는 사내. 어느 날 그에게 갑작스레 어머니의 죽음이 찾아온다. 어머니를 수습하고 어머니에게 맡겨 두었던 아들과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차가운 고통에 시달린다. 사내는 마침내 고통의 해묵은 원인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간 애써 피해 왔던 복수를, 정의를 실현하러 그는 아들과 함께 낡아빠진 봉고를 타고 길을 떠난다.

레너트 코페트가 지은 전설적인 야구의 聖書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대로 ‘이것은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홈플레이트를 떠나 낯선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의 소시민적 로드무비이자, 동생을 잃은 남자의 트라우마와 모진 복수, 그리고 화해와 귀환에 대한 이야기다. 토끼를 닮은 부자는 늙은 거북이처럼 여기저기 고장난 승합차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들은 흙탕물 섞인 급류 마냥 거센 운율의 문장을 타고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변주한다.

이 소설에서 김경욱은 조금 독특한 작법을 동원한다. 그는 앞 단락에서 등장한 단어를 곧바로 끄집어내 집요하게 쫓는다. 마치 복수를 위해 추적에 나선 사내처럼. 그리고 그 단어를 이용해 오래된 스웨터에서 올을 뽑아내듯 이야기를 술술 만들어낸다. 실마리가 되는 단어들의 절묘한 배치와 정교한 연결로 인해 이야기는 쉴 틈도, 끊기는 법도 없다.

1980년의 광주에서 시작된 사내의 이야기는 잠실야구장에서 끝을 맺지만, 야구가 늘 그렇듯 ‘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칼을 품은 사내와 나침반을 간직한 아들은 청산가리를 버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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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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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0월 혁명을 다룬 르포르타주의 고전 중의 고전. 이 책을 통해 2월 혁명 이후 등장한 수없이 많은 좌파 세력들 사이에서 어떻게 볼셰비키가 혁명을 성공시켰는지를 보고 있자면 역시 인생 뿐만 아니라 역사도 타이밍인듯 하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바로 그 때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장봉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경화된 임시정부와 부르주아지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극도로 억압받던 노동자, 농민 세력에 의해 혁명은 촉발되었겠지만 그 시기는 한참 뒤였을 터. 역사의 흐름은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확신하지만, 이렇게 탁월한 개인이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이렇게 엄청난 혁명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혁명의 규모에 비해 사상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후의 적백 내전, 스탈린의 숙청, 독소전에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점에서 10월 혁명은 순수한 열정과 혁명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낸 지극히 드문 사건이 아닐까 싶다. 저자 존 리드가 좀더 오래 살아서 러시아 적백 내전도 기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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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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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간의 김영하 단편집 가운데서도 특별히 길이가 짧다. 두 세 페이지 가량의 엽편소설도 네 편이나 실려 있다. 비록 그 길이는 짧지만 장편에서 볼 수 있는 김영하 특유의 매력적인 상황/구도 설정은 여전하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를 납치하다시피 동해안으로 끌고 온 대학원생, 백화점 좀도둑을 잡으러 다니는 비위 경찰,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여대생 등등. 그런데 정작 김영하는 이렇게 흥미로운 플롯을 짜 놓고는 갑자기 이야기를 툭 끝내 버린다. 어찌 보면 레이먼드 카버 스럽기도 한데, 카버 보다는 긴장이 좀 느슨한 편이지만 뒷이야기가 참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한 번 상상해 보라는 뜻일까. 중편이었으면 더욱 멋졌을 하나하나의 소재들이 아깝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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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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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다소 가볍게 번역한 감이 있으나(원제는 ˝Were you born on the wrong continent?˝다) 내용은 꽤 읽어볼만 하다. 금융업 위주의 자본주의를 운영하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미국과 제조업을 탄탄하게 발전시켜 온 독일의 노동환경을 비교하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독일의 제도들이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독일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나 직장평의회 위원으로 뽑혀 노사간 협의에 참여할 수 있어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기회도 넓어지고,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가 차지하는 노사공동결정제도는 CEO 등 임원들의 독단과 전횡을 방지하고 진정한 Bottom-up 의사결정을 이뤄낼 수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하에서는 회사는 항상 실행력과 스피드를 강조하지만 Top-down으로 일방적인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직원들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그래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반면 독일식 모델에서는 경영상의 문제를 노사가 합의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은 오래 걸리지만, 일단 결정되면 모두가 동의하였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서로 간에 굳건한 신뢰가 쌓인다. 이 신뢰는 회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순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촘촘한 상호작용은 엄청난 양의 집단 지식의 축적을 가능케 한다.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미국은 2008년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로 타격을 입었지만, 공장 이전 및 폐업을 극히 어렵게 제한한 독일은 제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기술 인력을 육성하여 이 시기를 순조롭게 헤쳐나갔다. 물론 여기엔 유로화 통합으로 인한 엄청난 반사이익이 있었지만.

이 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모두 믿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복지국가에 대한 무차별적인 환상은 역효과를 부른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이기는 마찬가지이고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고 있는 지금, 독일의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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