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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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공사장에서 일한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보잘것 없는 사내. 어느 날 그에게 갑작스레 어머니의 죽음이 찾아온다. 어머니를 수습하고 어머니에게 맡겨 두었던 아들과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차가운 고통에 시달린다. 사내는 마침내 고통의 해묵은 원인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간 애써 피해 왔던 복수를, 정의를 실현하러 그는 아들과 함께 낡아빠진 봉고를 타고 길을 떠난다.

레너트 코페트가 지은 전설적인 야구의 聖書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대로 ‘이것은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홈플레이트를 떠나 낯선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의 소시민적 로드무비이자, 동생을 잃은 남자의 트라우마와 모진 복수, 그리고 화해와 귀환에 대한 이야기다. 토끼를 닮은 부자는 늙은 거북이처럼 여기저기 고장난 승합차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들은 흙탕물 섞인 급류 마냥 거센 운율의 문장을 타고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변주한다.

이 소설에서 김경욱은 조금 독특한 작법을 동원한다. 그는 앞 단락에서 등장한 단어를 곧바로 끄집어내 집요하게 쫓는다. 마치 복수를 위해 추적에 나선 사내처럼. 그리고 그 단어를 이용해 오래된 스웨터에서 올을 뽑아내듯 이야기를 술술 만들어낸다. 실마리가 되는 단어들의 절묘한 배치와 정교한 연결로 인해 이야기는 쉴 틈도, 끊기는 법도 없다.

1980년의 광주에서 시작된 사내의 이야기는 잠실야구장에서 끝을 맺지만, 야구가 늘 그렇듯 ‘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칼을 품은 사내와 나침반을 간직한 아들은 청산가리를 버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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