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평점 :
김유태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작년 이맘 때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직전에 김유태 기자가 그녀와 했던 단독 인터뷰, 그리고 김유태 기자가 노벨 문학상 발표 순간의 소회를 쓴 글이 화제가 되었었다. 그는 한강의 수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감정은 나 개인의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문학에 감염됐거나 감염돼본 자들은 이 기분을 알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모두가 믿어왔던 ‘문학‘이라는 가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 AI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토막을 들려주고 싶다.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는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김유태. 그는 매주 100~150권 남짓 출간되는 신간 도서를 선별하여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일을 한다. 어마어마한 책더미에 파묻혀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찾아내야 하는 중압감은 무엇보다 책을 사랑하는 나로서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책을 골라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이렇게 말한다.
- 세상과 불화할 가능성을 애초에 제로로 가정하고 집필된 책은 독자의 정신에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못한다.
카프카의 그 유명한 문장,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이 연상된다. 그렇다. 뻔하디 뻔한 안전한 책은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지 못한다. 다 아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어떤 효용이,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매일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의 대부분은 그런 책이다.
안전하지 않은 책, 독자의 정신에 생채기를 내고 충격을 주는 책. 그런 책들이 엄혹한 시대를 만나면 금서가 된다. 이른바 ‘나쁜 책‘이다. 마오쩌둥이 참새를 가리켜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손가락질하니 중국 전역의 참새가 멸종될 뻔했던 사건처럼, 권력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나쁜 책‘이라고 낙인 찍으면 그 책은 금서가 되는 것이다. 비단 권력자 만이 아니다. 정부의, 종교의,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 책에는 주홍 글씨가 새겨진다. 코로나 초기 우한의 실상을 알린 팡팡의 <우한일기>가 그랬고,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이 그랬으며, 근친상간과 소아성애가 들어 있는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이 그러했다.
김유태는 <나쁜 책>에서 이런 책 30권을 소개하면서 금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금서는 세상이 온통 뿌연 때에 뜻밖의 색조를 띠며 세상의 불온함을 고발하는 초월적 문장의 합이었다. 그 책들은 한 시대와 불화했다. 금서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불화의 방향은 소수의 권력자가 탈취한 이념이었다. 금서의 작가들은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와 독자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다. … 금서의 작가들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힘썼던 초극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안전하지 못한 책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다.
<나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문득 이 책에 소개된 30권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중엔 국내에 미출간되어 구할 수 없는 책도 있으니 가능한 구할 수 있는 책은 전부 사볼까 한다. 올해 다소 시들했던 나의 독서열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2026년은 금서를 읽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