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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미술가를 아는 것이 미술을 아는 지름길이다"(프롤로그 제목)
사조를 외우고 그에 속하는 화가들의 이름과 화풍을 외우고, 누구에게 영향 받아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외우는 것이 미술사 공부였다. 이 책은 화가 25명의 삶에 주목하여 그림을 이해하는 미술 에세이다. 카라바조, 에곤 실레, 폴 세잔, 폴 고갱,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화가가 낯설어서 새로 알게되는 화가가 많아져 즐거워진다.
가장 인상적인 화가는 제임스 앙소르(1860-1949)이다. 그는 벨기에 화가로 그림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 불안과 공포, 해체된 정서는 그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 의학을 공부할 정도로 인텔리인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빈한한 집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외가 식구가 잡동사니를 파는 기념품 가게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면과 해골을 모티브로 어두운 그림을 그리는 그의 그림은 인간의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아연실색한 가면들>(1883), <몸을 데우려는 해골들>(1889)은 아름답다기 보다 으스스하다. 앙소르는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미술의 시작으로 보지만, 은둔자처럼 활동하지 않아 독자적이고 개성이 넘친다. <음모>(1890)는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쓴 사람들을 화려한 색채로 그려내고 있는데 괴이하다. 평론가에 의해 비판받던 그의 작품은 20세기 들어서며 호의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 숨겨진 상징들은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 얀 스텐(1626-1679, 네덜란드 공화국 레이던)은 렘브란트와 동시대에 살았지만 그와 다르게 가정과 일상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기 탄생 축하>(1664)를 보면 단순한 손짓이지만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아내의 출산으로 아이를 안은 남편 뒤에 한 남성이 아이 머리 위에 두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이는 그 아이가 젊은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이고 친아버지만 이 사실을 모른다는 표시이다. 그림 곳곳에 다양한 상징들을 넣었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어야 보인다. 미술 에세이를 읽는 재미이다. 얀 스테는 세태를 꼬집는 속담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림 안에 번잡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명암대비를 잘 구사하는 카라바조(1571-1610)는 성격자체가 극단적이었다. 그가 살던 로마는 성공과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이 경쟁하는 도시로, 예술가들 역시 경쟁해야했는데,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여럿의 전과가 있는데, 테니스장에서 살인을 하고 결국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삶처럼 그림은 전통을 무시하고 개성적이다. 르네상스의 우아하고 고전적인 모델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강렬함을 추구하였다. <성모마리아의 죽음>(1604-1605)에서 성모마리아는 우아하고 성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죽어서 몸이 부은 인간 시체의 모습으로 그려 논란이 되었다. 빈민과 서민들을 즐겨 그렸는데, 그의 작품을 천박하고 품위가 없다고 하는 부류와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쳐 애호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현대로 오면서 점차 무엇을 그린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현대미술의 뿌리가 된 화가는 폴 세잔(1839-1906)인데, 그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색채의 면이나 조각이고 뇌가 이를 조합하여 대상을 완성하므로 화가는 실제 보는 것을 그려야한다고 주장한다.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평생을 보냈던 그는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로 표현하고, 구성도 전통에서 벗어나 인위적이다. <레로브에서 본 생트빅투아르산>1904-1906)은 거친 붓터치로 미완성의 느낌이고, <푸른 화병>1887은 정물화의 전통적인 구도를 깨고 인위적이다. 세잔의 영향으로 현대미술의 입체파, 미래파, 구축주의, 오르피즘, 추상미술 등이생겨났다. 평생 실제 보는 것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화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화가들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윤택하지도 않고, 복잡한 여자 관계를 가지고도 있고, 심지어 범죄를 짓고 도망다니기조차 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명작이 된다. 시대와 자신의 삶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화가의 삶과 그림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을 사진으로 감상할수 있어서 좋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화가의 인생과 작품을 주로 설명하지만, 그림의 기술적 요소와 사조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하고 있어서 화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고민했을 것과 수고와 감정을 설명하고 있어서 완성된 작품도 좋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게 해서 좋은 책읽기 경험이 된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