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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우리의 근,현대 미술은 식민과 냉전에 의해 깊이 왜곡되었고 많은 상처를 받았다(8)."
일제강점기부터 현대미술 태동기(1910~1958년)까지 활동한 우리나라 근대미술 화가 40인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다. 전시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의 인생과 작품을 소개한다. 순수 회화 작품 뿐 아니라, 신문만평, 책표지, 조각, 사진을 포함한다. 소개된 40인 중 유명한 작가로 김기창, 나혜석, 박수근, 천경자, 이중섭이 있다.
책의 첫 장은 이도영의 <배우창곡도>로 시작한다. 1910년 4월 10일자 <대한민보>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시사만화다.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글이 가로쓰기로 말풍선 안에 들어있다. 뻐꾹을 복국(復國)이라 표기하며 나라를 되찾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창을 하는 권삼득과 고수, 그리고 창밖 구경꾼이 보인다. 저자는 친절하게 선의 터치,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를 설명한다. 대한협회의 국한문 일간지인 <대한민보>는 민중 계몽 취지로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시대순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유행했던 사조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20년대 카프(KAPF)는 문학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미술계에서도 그러하다. 예술을 공산주의 사상의 선전수단으로 이용하였는데, 추적양의 <시대공론> 표지 그림(1931)은 공산주의 포스터를 연상하게 한다. 모네의 영향을 받은 오지호의 <남향집>(1939)은 초가집을 그렸는데 인상주의 풍을 느낄 수 있다. 박수근의 <맷돌질하는 여인>(1954)을 비롯한 작품들은 식민지의 가난하고 남루한 시골 풍경과 사람을 투박하게 그리고 있는데, 독창적인 화풍에 푸근함이 느껴진다. 김환기의 <백자와 꽃>(1949)은 평면인 듯하지만 입체적인 느낌의 한국적 추상화로 한참을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동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조각가 김복진과 김경승의 조각이 비교된다. 활동가였던 김복진의 <소년>(1940)은 식민시대에도 불굴의 표정과 포즈가 인상적인데, 김경승의 <소년입상>(1943)은 뒷짐지고 살짝 고개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좀더 부드럽고 유연하다. 사상의 힘이 들어간 김복진의 작품과는 대조적이다. 김경승은 김복진 사후 두각을 내며 친일활동을 하고,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 동상제작을 도맡아하고, 교수직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서양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고, 작품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친일을 하며 부유하게 살며 활동한 작가도 있지만 서민의 궁핍하고 어려운 살림을 반영한 작가도 있다. 사회주의 사상과 민족주의가 작품에 반영되어 굽히지 않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름다움 속에 숨겨두기도 한다. 한국전쟁 후 서울의 명동거리를 사진으로 만나며 굴곡의 역사가 마무리된다.
국가 존망과 혼란의 시기에 활동했던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어떻게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였는지, 그 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순수미술작품 보다 대중을 상대로한 책 표지나 신문 만평에서 시대의 분위기가 더욱 물씬 풍겨나온다. 저자의 그림에 대한 해석은 물론, 시대배경과 화가의 일생과 부침에 관한 설명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예술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