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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을 위한 미술관 - 불완전한 삶을 품어주는 그림들
정희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지식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려 했다면, 이제는 작품 앞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6)
저자는 미술심리상담사이자 도슨트다. 헤세의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고는 삶을 그림에 투영해 바라보게 되었다. 심리상담사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도슨트로서 그림을 들여다 보며 화가의 마음과 닿는다.
책은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시작으로 고야, 뭉크, 피카소, 프리다 칼로, 고흐, 드가, 모네,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존 컨스터블과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본다. 125점의 명화를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읽는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자화상>에 드러나있다. 그의 20대, 30대, 50대, 60대의 자화상에는 늙어감은 물론 경제상황까지도 드러난다. 젊고 순박한 20대 청년의 모습에서 34세의 자화상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인생의 절정기다. 재산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던 53세의 렘브란트는 허름한 옷과 늘어진 피부로 우리를 바라본다. 63세의 자화상에는 머리도 희고 살도 좀 빠진 노인의 얼굴이다. 여전히 빈곤한 생활이겠지만 표정에서는 삶을 달관한 평온함이 묻어나온다. 세월의 흐름과 인생의 높낮이를 일기 쓰듯 자화상을 그린 것 같아 그와 좀가까워진 느낌이다.
한 모델이 그리는 화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 흥미롭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 로트레크, 드가의 모델이었다가 추후 화가가 된 인물이다.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의 춤>이나 <머리 땋는 소녀>에서는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로트레크의 <숙취>에서는 피곤한 옆모습이 건조하다. 드가의 <욕조 속의 여인>은 허리를 숙인 여인의 나체가 일상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보인다. 발라동 자신이 그린 <자화상>은 드가처럼 일상 속의 모습으로 좀더 자신의 모습 그대로이지 않을까한다. 육감적이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다. 한 모델을 두고 화가들의 스타일과 철학에 따라 매우 다른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 화가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나의 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과 달리 나를 보는 사람들에 의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를 대하는 타인의 태도와 생각에 분개할 필요도 즐거워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아내를 모델로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보나르의 아내는 불안감이 높고 강박으로 외부활동을 힘들어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목욕으로 보낸다. 보나르는 그런 아내를 위해 현대식 목욕통을 마련해준 스윗한 남편이다. 아내를 모델로 400점이나 그렸고,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창문을 많이 그린 것도 특징이다. 모딜리아니 역시 아내 잔 에비테른을 모델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긴 얼굴과 긴 목에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가면에서 영감을 받고,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그리고자 했다. 죽기 몇 해 전에야 눈동자를 그려넣었는데,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290)"고 했는데 드디어 알게 된 것인가보다. 눈동자가 그려져 있는 <잔 에비테른>의 모습은 미스터리한 기존의 작품과 달리 왠지 평범해보인다.
서문에서 저자가 미술을 마음으로 보게 된 계기가 헤세의 그림을 보고 난 이후라고 언급해서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바로 찾아보니 청량한 수채화가 대부분이다. <비탈 위의 집>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 계단> <계곡>과 같이 풍경을 밝고 명랑하고 투명하게 그렸다. 신경쇠약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권유로 40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헤세의 철학적이고 심오한 소설과는 다르게 그림은 해맑다. 헤세의 다른 면을 알게되어 반갑다.
그림과 그것을 보는 저자의 생각이 물흐르듯 쏟아져 나온다. 화가의 인생과 그림에 투사된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그림을 보며 어떤 사조에 속한 어떤 풍의 작품이라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이 아닌 내가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차분히 설명하고 있어 좀더 적극적으로 그림을 오래 들여다 보게 된다.
미술관에 가서 눈길을 끄는 그림이 있다면 그 앞에 오래 서서 화가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나에게 어떤 울림이 전해오는지, 내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