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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미국 단편소설의 코드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0월
평점 :
그로테스크는 기괴한 모습이 주는 불편한 느낌이다. 저자는 공포스럽고 코믹함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단편소설과 그로테스크 소설의 창시자인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로부터 헤밍웨이(1899-1961), 포크너(1897-1962), 오코너(1925-1964)와 같은 유명한 작가를 비롯해서 윌리스(1962-2008)까지 미국 단편작가의 단편 소설 10편을 소개하고, 그로테스크한 관점에서 작품을 설명한다.
10편의 작품은 포의 <어셔가의 붕괴>, 길먼의 <누런 벽지>,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닮은 언덕들>,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오츠의 <어디 가니, 어디 있었니?>, 킨케이드의 <소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 윌리스의 <굿 올드 네온>이다.
애드거 앨런 포는 대표 작가이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고, 추리소설을 만들어냈으며 공상과학 소설 형성에 이바지했다. 그의 작품 중 <어셔가의 몰락>은 독일 고딕소설가인 호프만의 <세습지>을 참조해서 간추렸는데, 이 작품을 통해 포는 단편소설은 짧고, 단일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편 소설의 분량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독자의 집중력을 모으고, 단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결말을 먼저 정하고 논리 과정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포의 단편소설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이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닮은 언덕들>은 남녀의 대화에서 반복되는 '하다'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무엇일까 상상해보지만, 분석을 읽고서 목적어인 '임신중절'이 생략되어 있음을 안다. 어떠한 맥락에서 시작된 대화인지 두명의 주인공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소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로테스크하다.
포크너는 남부 그로테스크 소설의 토대를 만들었고, 작품 <에밀리에게 장미를>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이 소설은 귀족가문의 몰락과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다. 5개로 구성되어 있어서 순서대로 읽으면 에밀리의 집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의 주인공이 할머니, 아버지, 애인 호머 중 누구일까 애매한 채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해석에 의하면, 이야기의 순서를 바꿔보면 에밀리의 애인인 호머가 살해된 것이고, 에밀리가 그 시체와 40년이나 동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을에서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에밀리의 죄를 넘어가 준 것은 호머가 북쪽에서 내려온 양키였고, 에밀리는 적을 제거한 존경받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단편의 순서를 바꿔 읽는 방법이 낯설기는 하지만 흥미롭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미국 단편소설의 역사를 설명한다. 애드거 앨런 포로 부터 시작하여 20세기 모더니즘, 2차 대전 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을 거쳐, 플래시 픽션과 플래시 사이클로 이어진다. '모더니즘'은 단편소설 간의 느슨한 연결인 사이클 형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존 바스의 <놀이집에서 길을 잃다>를 예로들어 14편의 단편이 무한히 반복되는 실험적인 시도를 설명한다. '미니멀리즘'은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인 고든 리쉬가 카버의 작품에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 엄청 짧아진 이야기를 설명한다. '플래시 픽션'은 천자 정도로 아주 짧아지고, '플레시 사이클'은 플레시 여러 개를 이은 것이다. 단편이 사이클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미니멀리즘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연결되기도 하면서 미국의 단편소설이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논문을 참고해서인지 '분석' 파트는 살짝 어려운 감이 있다. 제시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다른 관련 작품과 공통점을 끌어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는데 원문을 최대한 인용해서 설명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유난히 괄호와 세모 표시와 같은 부호가 많아 흐름이 끊기는 점이 아쉽다. 부연 설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차라리 괄호는 문장으로 풀어쓰고, 세모 표시는 아래에 주석으로 달아 두는 것이 좋았겠다. 그러면 글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고 읽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주석만 한 번에 몰아 읽기도 편하다.
소개된 10편의 단편소설은 고립, 정신이상, 생매장, 신경쇠약, 살인, 육체의 부패, 죽음, 전쟁, 자살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일으키는 소재를 담고 있어서 기이하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로테스크한 단편을 모아 저자의 추가적인 배경설명과 해설의 도움으로 작품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다. 또한 새로운 단편 읽는 방법을 시도한 점도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