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미국 단편소설의 코드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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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는 기괴한 모습이 주는 불편한 느낌이다. 저자는 공포스럽고 코믹함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단편소설과 그로테스크 소설의 창시자인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로부터 헤밍웨이(1899-1961), 포크너(1897-1962), 오코너(1925-1964)와 같은 유명한 작가를 비롯해서 윌리스(1962-2008)까지 미국 단편작가의 단편 소설 10편을 소개하고, 그로테스크한 관점에서 작품을 설명한다.

10편의 작품은 포의 <어셔가의 붕괴>, 길먼의 <누런 벽지>,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닮은 언덕들>,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오츠의 <어디 가니, 어디 있었니?>, 킨케이드의 <소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 윌리스의 <굿 올드 네온>이다.

애드거 앨런 포는 대표 작가이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고, 추리소설을 만들어냈으며 공상과학 소설 형성에 이바지했다. 그의 작품 중 <어셔가의 몰락>은 독일 고딕소설가인 호프만의 <세습지>을 참조해서 간추렸는데, 이 작품을 통해 포는 단편소설은 짧고, 단일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편 소설의 분량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독자의 집중력을 모으고, 단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결말을 먼저 정하고 논리 과정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포의 단편소설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이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닮은 언덕들>은 남녀의 대화에서 반복되는 '하다'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무엇일까 상상해보지만, 분석을 읽고서 목적어인 '임신중절'이 생략되어 있음을 안다. 어떠한 맥락에서 시작된 대화인지 두명의 주인공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소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로테스크하다.

포크너는 남부 그로테스크 소설의 토대를 만들었고, 작품 <에밀리에게 장미를>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이 소설은 귀족가문의 몰락과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다. 5개로 구성되어 있어서 순서대로 읽으면 에밀리의 집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의 주인공이 할머니, 아버지, 애인 호머 중 누구일까 애매한 채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해석에 의하면, 이야기의 순서를 바꿔보면 에밀리의 애인인 호머가 살해된 것이고, 에밀리가 그 시체와 40년이나 동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을에서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에밀리의 죄를 넘어가 준 것은 호머가 북쪽에서 내려온 양키였고, 에밀리는 적을 제거한 존경받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단편의 순서를 바꿔 읽는 방법이 낯설기는 하지만 흥미롭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미국 단편소설의 역사를 설명한다. 애드거 앨런 포로 부터 시작하여 20세기 모더니즘, 2차 대전 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을 거쳐, 플래시 픽션과 플래시 사이클로 이어진다. '모더니즘'은 단편소설 간의 느슨한 연결인 사이클 형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존 바스의 <놀이집에서 길을 잃다>를 예로들어 14편의 단편이 무한히 반복되는 실험적인 시도를 설명한다. '미니멀리즘'은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인 고든 리쉬가 카버의 작품에서 불필요한 것을 쳐내 엄청 짧아진 이야기를 설명한다. '플래시 픽션'은 천자 정도로 아주 짧아지고, '플레시 사이클'은 플레시 여러 개를 이은 것이다. 단편이 사이클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미니멀리즘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연결되기도 하면서 미국의 단편소설이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논문을 참고해서인지 '분석' 파트는 살짝 어려운 감이 있다. 제시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다른 관련 작품과 공통점을 끌어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는데 원문을 최대한 인용해서 설명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유난히 괄호와 세모 표시와 같은 부호가 많아 흐름이 끊기는 점이 아쉽다. 부연 설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차라리 괄호는 문장으로 풀어쓰고, 세모 표시는 아래에 주석으로 달아 두는 것이 좋았겠다. 그러면 글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고 읽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주석만 한 번에 몰아 읽기도 편하다.

소개된 10편의 단편소설은 고립, 정신이상, 생매장, 신경쇠약, 살인, 육체의 부패, 죽음, 전쟁, 자살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일으키는 소재를 담고 있어서 기이하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로테스크한 단편을 모아 저자의 추가적인 배경설명과 해설의 도움으로 작품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다. 또한 새로운 단편 읽는 방법을 시도한 점도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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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국경제 대전망
류덕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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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동상이몽, 한국은 동분서주(6)" 경제전문가 33인은 2025년 경제를 이 한 마디로 요약한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서 다른 꿈을 꾸고, 그 속에서 한국은 미중 두 강대국의 입장을 고려하고 별도의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느라 동분서주한다. 탈세계화로 각국이 보호주의와 자국 중심 산업정책을 취함으로써 글로벌화를 해온 우리에게는 위기일 수 있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

책은 5부로 되어있다. 1부 2025년 세계 주요국의 경제 대전망, 2부 글로벌 산업 환경의 변화, 3부 완만한 시장 금리 하락과 자산 시장의 향방, 4부 K-산업의 성장 전망과 해법, 5부 경제구조 개혁과 정책 과제. 1-3부는 세계 경제를, 4-5부는 한국경제를 집중분석한다.

2025년 한국경제 전망의 3가지 주제어는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 '소비회복 및 내수 부진탈출', '미국의 정치경제의 변화와 중국의 회복'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은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밝을 전망이지만, 국내 소비회복 및 내수 부진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어려워보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미국 대선 결과와 중국경제의 회복에 따라 영향을 받겠다.

미국과 중국을 살펴보자. 미국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중국에 고율관세를 매기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어 러-우전쟁을 종결시키고, 유럽의 방위비를 증가시키고, 한국과 일본에게 미군 주둔 부담금을 올릴 것이다. 해리스는 바이든의 포용적 정책을 이어 우방국에 우호적이고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중국의 2025년 경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성장동력을 첨단제조업에 걸고 있지만 미국의 견제로 쉽지 않고, 부동산 시장침체가 경제 전만의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는데 흥미롭다. 인도는 6%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며 미국의 대중견제 파트너국가로 새로운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지만, 인프라가 열악하고 인프라를 조성할 토지매입에 저항이 있고, 중국을 대신하기 보다 자국의 산업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경제규모 최대국가로, 풍부한 천연자원, 넓은 영토, 세계 4위 인구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친중, 친미도 아닌 중립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가 약하고, 낮은 국민소득에 부패지수도 높아 신뢰의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게 초음속 전투기 개발비 체납 사실과 현대 전기차 진출을 위해 현지공장 건설 등의 노력을 쏟았으나 법을 바꾸어 중국 전기차 기업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한 경우를 통해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미국 증시에 관심이 있다면 김학균님의 국장과 미국장에 관한 글을 눈여겨 볼 일이다. 2025년에 미 증시에서는 현금화의 기회를, 한국 증시에서는 시장진입의 기회를 살필 국면이라고 조언한다. 2025년 미국 증시는 장기 강세장이 종결될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장기 횡보세에 들어가기 전 기록적인 강세장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강세의 원인으로 막대한 유동성, 혁신기업, 주주환원정책을 들고 있다.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가 높아지고, 혁신기업은 고평가인 상태이고, 지나친 주주환원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국장에서 소액주주 친화적인 투자문화가 만들어지면 한국증시의 상승 잠재력이 커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2025년 한국의 산업에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반면, 방산업과 바이오헬스, K푸드 산업의 전망은 밝다. 특히 방산산업이 내수형에서 수출형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며 호실적을 예상한다. 알리, 테무, 쉬인과 같은 중국 플랫폼의 공격적인 진출은 큰 이슈이다. 국내 플랫폼 업체의 분발이 필요하고, 특히 국제결제의 취약함을 발전시켜야할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본문을 읽기 전에 미리 요약을 해준다. 프롤로그에서는 책 전체의 내용을, 5개의 부마다에는 인트로를 배치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다. 여러 전문가의 글을 모은 것이다보니 통일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한다.

2024년의 경제를 정리하고 2025년을 예측하는 이 책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제상황을 실감나게 이해하고, 미래 전망 산업에 대한 분석도 투자자라면 참고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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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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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피터스(1913-1995)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로 움베르토 에코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작가다. 중세를 바탕으로 한 캐드펠(Cadfael) 수사 시리즈로 유명하다. 화학실 조교와 약 조제사, 제2차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하는 등 그녀의 경험과 지식이 소설에 남아있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역시 1차대전에 간호사로 근무하며 다양한 약제들을 접했던 경험이 소설에 녹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이 어떠할지 기대된다.

1139년 11월 잉글랜드는 약탈자들이 마을을 급습하고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생활은 처참하다. 귀족 가문의 남매인 18세의 누나 에르미나와 13세의 남동생 이브는 가정교사 수녀와 함께 슈루즈베리의 수도원을 향해 가던 중 사라진다. 60세에 가까운 캐드펠 수사는 이 아이들을 찾던 중 얼음 속에 피살당한 채 누워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여인의 정체와 살인자를 추적한다. 반전과 따뜻한 결말은 미소가 절로 나게 한다.

캐드펠 시리즈를 처음 읽는다면, 이야기 초반의 배경설명을 눈여겨 읽고 책 뒤에 있는 주석을 미리 읽어서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면 좋다. 당시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이 정권을 잡고 경쟁자인 모드 황후를 서쪽으로 몰아낸 상황이다. 어수선한 정국에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남매의 외숙은 황후쪽 귀족이라 스티븐 왕의 지역으로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섣불리 들어가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소설 전반에 중세의 느낌이 물씬난다. 수도원에서 기침약을 만든다든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아이이지만 귀족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 태도라든가, 잉글랜드의 왕권 다툼으로 피난민과 약탈자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면 현대물과는 다른 속도감과 느낌이 있다.

사건은 사람이나 말이 뛰는 속도 정도로 진행된다. 특히 캐드펠이 젊은 시절 십자군 원정을 다녀왔고 이제는 수도원에서 약제를 다루는 60을 바라보는 수사이므로, 행동력을 대신할 휴 베링어 행정장관 보좌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캐드펠이 어떤 추리를 했는지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다가 갑자기 '어, 이상한데?'는 느낌이 들 때쯤 캐드펠이 던지는 한 마디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캐드펠 수사는 혼자서 일을 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독특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한 켠에 흐른다. 돈을 노리는 사랑과 자신을 목숨을 바쳐 지켜주는 사랑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말보다 행동할 때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이 소설에서 그대로 표현된다. 또한 젊은 카톨릭 사제가 여인에게 품는 사랑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셰익스피어 연극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가 상당히 클래식하다. 기억을 잃은 엘리어스 수사가 수녀의 소식을 듣자 기억이 돌아오는 듯 한탄한다. "아아, 이 집의 돌이여, 내 위로 무너져 나를 덮어다오! 이럴 수는 없어!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제발 나를 묻어다오!(154)"라고 외치는데 연극배우의 대사같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캐드펠 수사의 추리와 매력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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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New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이강혁 지음 / 가람기획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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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대항해시대에 세계를 주름잡았던 나라이다. 이슬람의 지배에 저항하는 긴 시기를 거쳐 마침내 그들을 몰아냈지만 건축이며 생활에 이슬람의 문화가 많이 스며들어 있어서 카톨릭과 이슬람의 혼합을 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역사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책은 7장으로 되어있다. 1장 선사시대에서 서고트족의 침입까지, 2장 이슬람교도의 지배, 3장 합스부르크 왕조, 4장 부르봉 왕조, 5장 20세기 초의 스페인, 6장 프랑코와 스페인, 7장 현대의 스페인이다.

4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 남동쪽으로 이주한 이주민들로 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역사는 로마제국과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다. 8세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당시 서유럽보다 발달된 문화와 기술을 가진 이슬람의 영향으로 산업이 발달한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진행한다. 1492년 마침내 국토회복운동이 종료되고 절대주의 시대로 들어선다. 카를로스 1세로 시작된 합스부르크가는 제국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6세기에 영국 해군에 패하면서 몰락한다. 왕정시대는 1931년 공화국을 세우며 무너진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치상황은 정부군과 반란군의 스페인 내전으로 발전한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지식인을 탄압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관광산업을 국가주력산업으로 삼았고, 영화와 축구에 집중하는 우민화정책을 펼치며 민주화와는 멀어졌다. 프랑코 사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며 현재에 이른다.

스페인 내전(1936-1939)은 잘 알려진 대로 스페인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민주세력과 파시즘 세력의 국제전이었다. 공화국 정부를 지원하는 50여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은 '국제여단'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파시즘 프랑코는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았다. 공화국 정부군을 지원하는 국제여단에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이 의용군으로 참여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카탈루냐 찬가>를 저술했다. 프랑코의 지원요청으로 독일 공군이 게르니카를 불바다로 만든 비극을 피카소는 <게르니카>으로 그려냈다. 국제여단은 제대로된 훈련도 받지 못한 젊은이들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지원받은 최신 무기를 장착한 정규군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막대한 사상자를 남겼고, 살아 돌아간 사람들도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의외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이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발견한 사람이 고고학자들이 아닌 스페인 북부 영주의 어린 딸이다. 동굴 천장에 그려진 들소를 발견했는데, 이 동굴벽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술로 평가받는다. 또한 1492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로 잘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를 몰아낸 레콘키스타가 완료된 해이기도 하다. 레콘키스타가 8세기부터 15세기 말까지 800년간 지속된 오래된 저항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베리아 반도가 펠리페2세에 의해 88년간(1580-1668) 통일국가로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함대를 소유한 해양강국을 자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불운한 삶을 살다가 1616년에 죽었는데, 같은 해에 셰익스피어도 세상을 떠났다. 두 대가가 같은 시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흩어져 있는 상식이 연결되도록 저술하여서 좀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이 책은 고등학교 참고서처럼 충실한 책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시간 순으로 배치하였고, 100개의 주제는 두 장 정도의 설명으로 간결하다. 그 두 장에 지리적 이해를 돕기위해 지도를 넣고, 중요한 인물이나 그림, 건축과 같은 꼭 필요한 시각 자료를 포함한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저자의 노고를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역사가 궁금한 일반인이라면 이 책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한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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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 - 3000년을 이어온 설득의 완벽한 도구들
제이 하인리히 지음, 조용빈 옮김 / 토네이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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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Rhetoric)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발전하기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인들은 수사학을 리더십의 필수요소로 생각했고 너무나 중요해서 고등교육의 핵심과목으로 삼을 정도였다(7)." 수사학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저자 제이 하인리히는 대화와 설득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이 책은 아마존 스피치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정되었다.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수사학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 연설가, 정치가, 작가들의 설득법과 지혜를 들어 설명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은 설득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를 이용해 상대를 설득하라고 한다. 로고스는 논리를, 에토스는 인격을, 파토스는 감정을 의미한다. 상대가 믿는 것을 이해하고,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상대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에서 설득은 출발한다. 로고스는 일대일 대화에 유리하고, 파토스는 집단을 상대로 할 때 유용하다.

설득은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 이익에 맞게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과속으로 걸렸을 때 경찰을 상대로 어떻게 행동할까? 겨우 얼마나 어겼다고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거냐고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목표는 속도위반딱지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경찰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좀더 세심하게 살폈어야하는데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속도계를 잘 체크할 수 있을까요?' 라고 전문가인 경찰의 조언을 구하면 설명과 더불어 훈방조치로 끝날 수 있다. 일대일의 상황이므로 감정을 조절하고 논리적으로 상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설득력이 높은 경우이다.

또 다른 경우는 실수했을 때이다. 사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함께 제시하라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애플맵을 출시했으나 제대로 목적지까지 안내하지 못하자 팀 쿡은 사과했다. 그저 죄송하다고. CEO라면, 사과와 더불어 더 높은 기준을 선보이고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했다고 평가한다. 조만간 최고의 네비게이션을 여러분의 아이폰에게 배달시켜 줄 것이고, 엔지니어들이 결함을 발견해서 수정하면 기존 것보다 완벽한 지도가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애플맵의 결함을 풍자하는 밈 대신 기다려주었을 것이다. 좀더 사용자를 생각하고 신뢰를 주고 감정을 건드려주었어야했다.

저자는 말의 미묘한 느낌을 잘 설명한다. 능동형이 공격적이라면 수동형은 방어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자를 묻지 않는다. 내가 잘못했을 때 능동형으로 말하면 진정성이 있고, 다른 사람의 실수는 수동형으로 말하면 부드럽다. 접속사 사용 시, 대화를 바꿀 때 '하지만'은 공격적인 느낌이고, '그런데'는 방어적인 느낌이다. 설득을 하려면 상대의 비난에 먼저 공감하고 '그런데'로 시작해서 내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바꾸면 상대가 본심을 터놓을 수 있다.

쉽고 잘 이해되는 책이라 저자의 에세이 쓰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첫째, 처음부터 주제를 제시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면 몇 줄 읽다가 말것이다. 둘째, 반전을 설계하라. 다른 글과 차별을 두려면 재미있어야하고 반전은 바이럴의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셋째, 자연스레 깨닫게 하라. 요점을 중언부언하지도 강조하지도 마라.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 경험, 사례, 내 이야기를 풍부하게 곁들여라. 넷째, 결점을 보여줘라. 독자의 공감과 희망과 위로를 주는 장치이다. 저자의 글이 바로 이렇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으면서 설득의 상황에서 독자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서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돌이켜보게 될 것이고, 저자의 조언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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