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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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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살짝 들춰보았을 때는 시집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짤막짤막한 메모와 일기, 그리고 미처 불리워지지 못한 노래들을 모아놓은 육필 원고집이었다. 생전에 메모광이었던 김광석의 기록들 중에서 공개해도 괜찮은 것들을 유족들이 추려내서 엮은 것이란다. 그를 아끼고 기리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연필 자국 하나까지도 아름다움이고 추억일 테지만, 지극히 사적이고 두서 없는 내면의 기록이 졸지에 까발려진 그의 심정을 생각하자니, 보면 안 될 것이라도 훔쳐보는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노래 한 곡 한 곡을 공표할 때는 갈고 닦아서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내어놓았을 게 분명한데. 고인은 말이 없지만, 요즘 시대란 사람이 죽으면 하드디스크를 같이 묻어주는 보험이라는 것도 생겨난 세상 아닌가. 

 

그래도 열심히 읽기로 했다. 기왕 출간된 책을 받았으니 미안한 마음 절반에 호기심 절반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아직도 절명의 원인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그의 생전은 어떠했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에세이라기엔 짧게 조각난 단편 속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누군가의 남편이며 친구이고 아버지인 남자. 때로는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때로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생활에 지치는 한 남자. 정제되지 않은 갈망과 아픔이 산재해 있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유려한 미사여구보다 더 마음 깊숙히 와닿는 법이다. 

 


본래 글이란 쓰는 사람이 ㅡ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ㅡ 접하고 경험한 세계를 기반으로 축조하는 만큼 자전적인 색채가 짙다지만. 솔직하고 날카롭게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누군가를,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그의 모습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게 사람 냄새 나고 좋아서.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의 책과는 물론 느낌이 또 다르다. 삶의 여정에 지친 내게 노래로 위안을 주었던 그도 사실은 나와, 우리들과 같은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반갑다.


이 책의 출판이 과연 그에게도 기쁜 일일지는 아직 의구심이 들지만, 나는 읽고 난 지금은 그냥 고맙다. 노래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김광석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줘서. 사실 아직 그의 감성이나, 노래에 담긴 삶의 무게를 모두 이해하는 건 벅차지만, 그런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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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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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을 다녀와서 이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저자인 최인호는 가톨릭 신자인 데다, 이 책도 종교적인 색채가 짙기 때문이다. 역사의 땅이자 종교의 땅, 특히 신약의 주 무대라는 터키. 여행 내내 지역별로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구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나 노아의 방주의 터로 짐작되는 곳도 터키에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저자의 작품은 접해본 바가 그다지 없지만, 저자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보았다. 학교 동문이신데다 최연소 신춘문예 수상자, 여러 흥행 영화의 원작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을 여럿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만하거나 느슨해지지 않고, 글 쓰는 일에 자신을 오롯이 바치며 끊임없이 영적인 수양을 해낸 저자의 삶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가 글을 쓰는 데는 열정을 넘어 사명감이나 어떤 소명 의식이라도 있는 것 같아 나까지 경건하게 침잠하는 느낌이 들었다. 


종교적 체험이나 믿음에 있어서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종교를 넘어선 교훈적인 메시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인 것 같지만 실은 교만인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남을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남을 단죄할 수 없듯이 내가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발견입니다."(210쪽) 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밀양』에서 자기 아들의 유괴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했다가, 이미 주님께 용서받았다며 평안한 얼굴을 한 유괴범을 보고 쓰러지는 신애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아들 잃은 어미의 심정은 나로서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만은, 왜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용서했냐며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나를 포함한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이를 추구한다. 한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그야말로 원수를, 적을, 나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일까. 아냐, 그런 사람은 원수가 될 수 없어. 안 보면 그만이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야. 그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자기 자식, 자기 부모들이지. 이들을 열심히 사랑하라는 말이지." (276쪽)라고 받아들이는 저자의 일관적이며 올곧은 태도는 나로 하여금 반성과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오랫동안 고된 투병 생활을 겪으면 육신과 마찬가지로 정신도 연약해지는 법이다. 염세적이고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게 될 수도 있을 텐데도 그러기는 커녕, 글을 놓지 않고 투고를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어린아이처럼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저자. 순수하리만치 믿음 가득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듬어 주던" (320쪽) 그를 이제는 책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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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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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라는 책의 제목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표지 밑바닥에 쓰인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라는 문구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과 가치관도 변해갈 텐 데, 과연 험난하고 굴곡 많을 삶의 여정을 거친 뒤에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세 가지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얼마 전에 다녀온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나는 이와 비슷한 문제에 답을 내어놓을 것을 종용당했었다. 내 대답은 '나', '관계', 그리고 '꿈'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멋있고 좋은 것이 있어도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첫 번 째 단어는 주저없이 선택했다. 두 번째인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사람 뿐 아니라 동물이나 환경과 같은 온갖 것들,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사랑이나 행복까지 모두 포괄하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가 바라고 이루어 갈 것들을 총칭하는 '꿈'까지. 참 욕심도 많지. 물론 이 책을 읽고 난 뒤여서 책에 수록된 단어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이만하면 잘 골랐다 싶다.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의 단어를 골랐다. 자유, 가족, 휴식, 다름, 오늘. 그렇게나 수많은 말들이 세상을 부유하다가 책 속의 활자로 가라앉았다. 목차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 중요한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세 가지에 꼽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사람마다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단어들은 그렇게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너무 흔해서 오히려 소중함을 놓치고 살았던 그런 단어들"(7쪽)이었다. 

 



정철이라는 저자는 이 단어들을 부러 딱딱하고 어렵게 수식하지 않고 간결함과 진솔함으로 요리해냈다. 그렇기에 무게감은 덜할 수 있지만, 저자 특유의 재치와 말솜씨로 맛깔나게 버무려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살피고 되새겨 보게끔 한다.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 침묵을 배웠습니다."(61쪽) 혹은 "실패했다. / 앞의 두 글자를 보지 마십시오. 뒤의 두 글자를 보십시오. / 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입니다."(313쪽)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다 아는 내용 같아서 얼핏 쉽게 쓴 글 같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 다들 당연히 여겨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자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저자의 말따마나 "그냥 괜찮"(358쪽)은, 어느 때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할 일이 없을 때 가볍게 꺼내어 읽어도 좋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유쾌하게 집어들어도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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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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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즉 남성적 기질이 강하고 자기 이해가 필요한 남자들이나, 혹은 그런 남자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여성을 위한 책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마초적 성향이 강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남자들이나 그들의 변명, 자기 합리화를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들을 이해하는 척 하며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는 여자들 또한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좀더 자라서 한국 사회의 조직 문화를 많이 접한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렇기에, 저자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정말 읽고싶지 않은 책이었다. 

 

 

여자가 달콤한 허니문을 꿈꿀 때 남자는 이제부터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정의 미래를 어깨에 올려놓고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평생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생존경쟁 현장에서 숨 돌림 틈 없이 뛸 각오를 해야 한다. 결혼하면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의 안정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남자로서 누렸던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가족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심지어 남자들은 '가족'이 된 아내에게 더이상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27쪽)

책장을 조금 넘기다 보면 이런 기가 차는 내용도 나온다. 마치 남성만이 불합리적으로 고통받는다는 듯한 이런 사고방식이 한국에서는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여성으로서의 내 삶에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생과 미래를 혼자 책임지나? 혼자만 자유를 포기하고 생존을 경쟁하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여성은 온갖 자유를 누리면서 여유롭게 살면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없어도 되는 속편한 존재들이겠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참 대단하고 잘나셨다. 



그는 아내의 시간을 자신보다 아내의 상사가 더 많이 사용하는 것에 화가 났다. 남자 직언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내의 엠티 사진을 볼 대면 슬그머니 고개 돌렸다. 아내가 승진하면서 지방으로 발령 나자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중략) 아내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한다면 그것은 집안의 기둥이 자신이 아니라 아내라는 증거 같았다. (59쪽)

이 말대로라면 남자들은 도대체 역지사지라는 말은 모르는 걸까? 본인이 직장 여성 동료들과 일하는 것은 비즈니스고, 본인의 이직으로 인해 거적을 옮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짧은 기간에 급속히 변화한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더욱 복잡해 보인다. 일본 여성이 요구하는 편안하고 잘 소통되는 남자, 유럽 여자들이 원하는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남자, 미국 여자들이 원하는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남자를 모두 원하는 것 같다. 어떤 여자는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고, 어떤 여자는 명품 가방을 원한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의 입장은 더욱 서글퍼 보인다. (180쪽)

마치 한국 여성만이 바라는 게 많다는 듯한 밑도 끝도 없는 자국 여성 혐오증은 여자들의 관용과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특정 온라인 집단과 겹쳐 보여서 더 기분이 나쁘다. 한국 여성을 김치년 따위로 부르면서 성적 객체로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그들 집단에서도 종종 한국과 다른 국가(주로 일본이나 서양이 되겠다)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떠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여성을 몇 번이나 만나보고 얘기하는 건지, 동영상 속에서만 만나본 사람을 표본삼아 떠벌리는 같잖은 족속들에 대해서는 별로 길게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거리에 여성 운전자들이 늘어날 때 남자들은 여자들의 운전 미숙을 비난하고 비웃었다. 실제로는 남자들이 더 많은 교통사고를 내고 그 피해도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은 채. 남자들은 그냥 여자들과 같은 도로 위를 달리는 일이 싫었던 것이다. 

여자가 경쟁자가 된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여자를 상사로 모시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여자 상사와 함께 일하게 된 남자들은 온갖 고약한 방법을 동원해 여자 상사의 업무 수행에 걸림돌을 놓기도 한다. (60쪽)

 남자들이 폭력과 범죄의 구분에 대해 얼마나 헛갈려할지는 짐작 된다. 예전에는 늘상 했던 농담들이 까딱 잘못하면 성희롱이 되고,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성추행이 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집에 들어가서만큼은 왕처럼 대접받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왕처럼 군림하다는 말 속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시종처럼 대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모두 폭력이라고 하니,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152쪽)

'그냥 같은 도로를 달리기가 싫다', '왕처럼 군림', '아내와 아이들을 시종처럼 대한다'라는 말이 조선 시대도 아닌 2013년에 와서까지 공공연하게 떠벌려지면서, 심지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런 생각에 공감하며 유지해가는 족속이 존재한다니. 물론 모든 남성에게 이런 분석이 통용되리라는 일반화는 하지 않겠다. 기실 나는 내 가까이에서 이런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내 앞에서, 아니 여성이라는 잠재적 성적 파트너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점잖은 체 하는 남성이 분명 내 곁에도 존재할 거라는 절망스러운 추측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그렇게까지 했다가는 정말로 독신주의자라도 되어버릴 것 같으니까. 

 

 

책을 정독하다 보면 저자가 남성의 사고방식을 옹호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인용해 온 구절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가치관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올바르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전반적으로 단호한 어조라기보다는 어머니가 아이를 어르듯 시종일관 지나치게 유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화내고 다그친다고 해서 수십 년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백 년을 이어온 인습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테다. 저자 또한 남자들의 태도를 그리 곱게 보지는 않는 듯한데도 차분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연륜과 경험의 산물로 보인다. 분명 존경스러운 일인데도, 속이 시원하지 않고 답답하다. 

 

나처럼 현대 사회의 남녀 평등에 냉소적인 사람이나, 요즘 여성들이 드세서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받는다는 푸념에 신물이 난 사람, 혹은 결혼을 준비중인데 남성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싫은 여성이라면 이 책을 읽고 기분이 몹시 나빠질테니 그들에게는 강력하게 이 책을 비추한다. 

 

솔직히 내가 이 책에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해서 어떤 사람에게 추천해줘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리뷰를 보고도 어떤 책인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책 전반에 걸친 서술에서는 남자라는 존재가 여기에 적은 것만큼 막무가내는 아니니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정확히는 저자나 이 책 자체가 아닌, 이 책에서 서술된 현재 한국 사회 실태라는 걸 말하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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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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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을 '좋은 대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올바른 물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본문 211쪽)

문득 펼친 페이지에 이렇게나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칠 뻔했다. 그렇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프레임에 맞추어 세상을 보고 시침질을 하며 제 생각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 의식에는 동조할지언정 모든 의견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좋아 보인다고 답습하지 말고 스스로 성찰하는 힘을 기를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은 여기에 기초로서 역할할 뿐이다. 나는 그저 장황한 생각으로 그쳤던 것들을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해 주다니. 자신도 모르게 이 책에 기대감을 품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에, 부끄럽고 유치하게도, 실망했다.  대단하고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느낀, 뭐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를 알아나가면서 느끼게 된 것은 부러움, 그리고 질투. 설렁설렁 일하고, 타인을 경멸하고, 자만하는, 그런 이야기는 과거라고 해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참으로 솔직하고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글을 쓸 때 '진솔함'과 '쓰고 싶은 것'을 강조하는 그답다. 언행일치를 이렇게 올곧게 해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친구나 유명 작가, 교수를 비웃었다는 이야기를 재치 있게 꺼내면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독자는 오히려 행간에서 그가 이런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며 나아지고 있음을 깨달으며 함께 웃을 수 있다. 


내가 또 한 가지 감탄한 것은 그의 글의 흡입력이다. 여기저기에 실려 있던 글을 모아오다 보니 주제며 말투며 제각각인 것들이 많은데도,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운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핵심만 말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얘기에 다리를 뻗어 아우르는 스타일의 글을 쓰는데 신선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이런 글체는 산만하다며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더 자주 접했던 것 같은데 막상 번역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점도 흥미로웠다. 사실 주변에 번역을 만만하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데 내 개인적으로도 번역은 글을 직접 쓰는 것만큼이나, 때때로 그 이상으로 어려우며 책임감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번역 일에 대한 그의 자부심에 공감하며 멋있다고 여긴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장미의 이름, 둘 다 조금 읽다가 접어놓은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책은 각각이 하나의 방대한 세계를 품고 있고, 그게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되기도 한다는걸 이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책에서도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 몸소 체험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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