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로 서기 - 어떤 순간에도 나를 책임지는 '1인분의 삶'을 위하여
임홍택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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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인생에 경력직이 있다면, 그건 무너지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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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 저자가 대학 강단에서 3년간 가르친 과목 이야기다. 경영학과에는 원래 없던 과목, '자기혁신경영'. 청소년 시절의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모아 강의로 풀어냈고, 반응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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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하나다. 인생의 경력직이란 좌절을 겪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좌절이 커지지 않게 막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 풍파에 안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단단함을 갖춘 사람.

1로 서기는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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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회피가 아니라, 지지 않는 싸움이다.



인상 깊은 구절

수상자가 아니라고 해서 인생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생의 성패는 달리는 속도보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도 계속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느냐에 가름이 나는 것이 아닐까?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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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승원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능력이 없으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하고, 열정도 없으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하고, 겸손하지도 못하면 최소한 눈치는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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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스승이 아니라 사고 확장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도제식 강화법이 스승의 기보를 반복하는 방식이었다면, 그는 AI의 판단 근거를 해부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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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넘는 시간 동안 2,000여 명의 삶을 평생 추적 관찰해 온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월딩어가 궁극적으로 밝혀낸 행복한 삶의 비밀은 지능이나 계급, 돈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에 있었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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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나눠서, 손해는 한 번에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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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문제는 잠을 제때 자고 일어나면 해결돼 p337

총평

1로 서기, 그리고 나는 몇 번이나 넘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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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미운 사람을 어떻게 거리를 둬야 하는지, 번 돈을 어떻게 지키는지, 저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 살아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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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의 《1로 서기》를 읽으며 자꾸 옛날 생각이 났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부끄러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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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한 친구가 사정이 급하다며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거절하면 우정이 깨질까 봐 결국 빌려줬다. 갚겠다던 날짜는 몇 번이나 미뤄졌고, 어느 순간부터 연락 자체가 끊겼다. 차용증 한 장 안 써둔 게 뼈아팠다. 책에서 말하는 "계약서 제대로 보는 법", "경찰서나 병원과의 인연을 최소화하는 것이 내 삶을 지키는 법"이라는 문장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 뒤로 나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돈이 오가면 반드시 글로 남긴다. 인간관계와 돈은 별개라는걸, 돈을 잃고 나서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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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가 귀띔해 준 종목에 목돈을 넣었다. 추월차선을 타보고 싶었다. 정속 차선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답답해 보였던 시절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반 토막이 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남의 급행열차를 부러워하다 내 정속 차선마저 놓칠 뻔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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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 저자는 말한다. 인생의 핵심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지지 않는 싸움에 있다고. 20년 넘게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도 결국 같았다. 화려하게 이기는 사람보다 조용히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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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목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돈이 되는 것. 이 네 가지가 겹치는 지점을 찾으라는데, 현장에서 20년을 버틴 지금도 그 교집합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있다. 눈앞의 일을 내 것처럼 해낼 때, 그 안에서 의미가 생긴다는 것. 거절할 수 있을 때는 악착같이 거절하고, 맡게 됐다면 주인의식으로 붙잡는 것. 그 균형을 못 잡아서 몇 번이나 번아웃 직전까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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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끔했던 문장은 이거였다. 인생의 복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아니라 빌런을 적게 만나는 데 있다는 것. 되돌아보니 내 20~30대의 실패들은 전부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가 아니라 나쁜 사람을 걸러내지 못해서 생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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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오래 버틴 사람보다 바르게 진화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말도 낯설지 않다. 자본이 자본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머리로는 안다. 여전히 몸이 안 따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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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 서기》 책이 준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다. 착하게 사는 것과 만만하게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 거절하지 못해서, 정 때문에, 우정 때문에 치른 대가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 주는 걸 책 한 권이 대신 가르쳐 준 셈이다. 이번 생이 1회차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다음번엔, 적어도 돈 문제만큼은 정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책이 던지는 질문

우리가 삶에서 깨달은 진실은,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지만, 그 노력이 세상에 닿기 위해서는 운이 필요하다는 것 p31

버티며 운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입을 다물고 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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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 유독 오래 머물렀다.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력이 세상에 닿으려면, 운이라는 다리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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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민의 "그까이것 대충 하면 되지 뭐"가 떠올랐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태도. 그건 운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주어진 걸 그냥 견디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극복하는 자였다. 운을 기다린다는 건 결국 상황을 매일 조금씩 갈아엎는 일이었다.

​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말로 사고를 친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하면 이렇게 적어놓고 일을 시작한다. 말은 재앙의 근원이고, 입은 행운이 빠져나가는 출구라고. 적어놓고도 매번 실패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입이 지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답은 하나다. 말은 줄이고, 듣는 시간을 늘리는 것.

​

《손자병법》에도 있었다.

지지 않을 자리에서 이길 때를 기다린다는 말. 1로 서기, 그 자체가 이미 지지 않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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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도 인정도,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얻을 건 아니다. 삶은 원래 고단하고, 그 고단함 속에서 나를 아끼는 법을 배우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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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 하기의 기술 - 꼭 해야 할 일만 하는 과학적 업무 습관
나카무라 가즈야 지음, 김수빈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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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빨리, 많이, 완벽하게" 하려던 습관을 내려놓는 게, 일에서도 리더십에서도 결국 같은 답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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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줄여야 여유가 생기고, 불안을 퍼뜨리지 않아야 팀이 자란다.



인상 깊은 구절

반복 확인만으로는 예방할 수 없는 의사소통 오류도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반복 확인과 함께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 방법은 바로 '확인 질문'이다. p208

총평

일을 잘한다는 착각, 나도 속았다.​

빨리하면 유능한 거라 믿었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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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 하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카무라 가즈야는 일 처리 속도를 높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일 자체를 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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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늘 반대로 살아왔다. 사회복지사 20년 차. 빈 시간이 보이면 못 참고 뭔가로 채웠다. 어느 날은 화장실 갈 타이밍마저 아까워하면서 9시간을 꼬박 앉아 이 일 저 일 처리하다 퇴근했다.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뭘 한 거지? 성과는 딱히 없었다. 그냥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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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걸 정확히 짚는다. 아무 성과도 못 내는 사람이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한다. 반박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내 얘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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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바쁠까

한국은 근로시간이 해마다 줄고 있다. OECD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길지도 않다. 그런데도 다들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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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너무 많아서다. 투자(주식, 금테크, 환율), 자기계발, 육아, 운동, 독서, 부업, SNS, 유튜브. 선택지가 넘쳐나니 그중 뭘 고를지 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친다. 결정피로다. 빈틈만 보이면 뭐라도 밀어 넣는 습관, 그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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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을 높인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멈췄다.

​

돈이냐 시간이냐

저자는 묻는다. 돈과 시간, 뭘 택할 거냐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부자는 시간을 고른다고 한다.

나는 월급쟁이다. 시간을 녹여 돈을 버는 구조 안에 산다. 이 문장을 읽고 뜨끔했던 이유는, 정작 내가 시간보다 성과와 처리 속도를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빨리 끝내는 게 능력이라 믿었는데, 저자는 그게 함정이라고 말한다. 빨리 끝내봤자 남는 시간에 또 다른 일이 채워질 뿐이다. 나만 몰랐던 거다.

​

공을 넘기지 못하는 병

이 책에서 가장 뜨끔했던 대목은 따로 있다. 공을 받으면 남에게 넘겨라. 스스로 공을 늘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

나는 이게 제일 안 된다. 회의에서 누가 새 업무 얘기를 꺼내면 손이 먼저 나간다. "제가 할게요." 습관처럼 나온다. 왜 그럴까 곱씹어 봤다. 신뢰의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더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어쩌면 맡기고 뒤처리하는 게 더 피곤할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

근데 그거, 결국 내가 일을 만들어낸 거였다. 넘길 수 있는 일을 넘겨야 직원도 크고, 나도 숨 쉴 틈이 생긴다. 창의적인 일은 그 틈에서 나온다.

​

하지 않는 일 리스트

저자가 인간관계까지 정리 대상으로 삼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인간관계로 고민하지 않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고민이 풀렸다고 한다. '하지 않는 것'을 정해두면 잡생각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책을 덮고 나만의 리스트를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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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고민하기

일정 빽빽하게 채우기

멀티태스킹

질 나쁜 기름 먹기

밤 8시 이후 먹기

​

적어놓고 보니 별거 아닌데, 이걸 글로 써서 눈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은 머릿속에만 두면 정리가 안 된다. 말로 뱉거나 글로 써야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

아이비 리 방법, 그리고 바퀴를 다시 만들지 않기

저자는 매일 할 일을 세 가지로 압축하는 '픽 쓰리', 여섯 가지로 잡는 '아이비 리 방법'을 소개한다. 작업 전환 횟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

이 대목에서 우리 사무실 얘기가 떠올랐다. 서류 간소화하겠다고 만든 양식이 오히려 더 챙길 게 많아진 경험, 다들 있지 않나. 큰 바퀴 하나 만들어놓고선 비슷비슷한 작은 바퀴를 계속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여기서 AI 얘기를 꺼낸다. 반복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사람은 사고를 확장하는 데 써야 한다고.

결국 남는 건 숨 내쉬고, 깊이 들이쉬고, 다시 내쉰다. 3분에서 5분, 그거면 머릿속이 비워진다고 한다. 저자가 마음챙김을 소개하는 방식은 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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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처리가 빠르다고 개인 시간이 늘어난 적은 없었다. 나도 그랬다. 결국 답은 하나다. 불필요한 생각, 번잡한 절차, 과한 연락, 안 해도 될 실수. 이 네 가지만 줄여도 할 일은 반토막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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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일하는 사람 다음엔 더 많은 일이 기다린다. 이건 이미 겪어봐서 안다. 그러니 답은 속도가 아니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넘길지 가려내는, 그 선택의 무게였다.

책이 던지는 질문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리더인가?

좋은 리더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불안을 퍼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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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답을 냈다.

성공하는 팀의 1등 조건은 실력도 인맥도 아니었다.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리더 자리에 있으면서 이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글로 보면 쉬운데, 현장은 안 그렇다

구글이 꼽은 요소는 심리적 안전감, 상호 신뢰, 명확한 구조. 좋은 리더의 조건도 줄줄이 나온다. 편하게 말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

우리 사업장도 실패해도 괜찮다, 배우면 된다 말한다. 근데 사고가 터지면 누가 놓쳤는지부터 찾는다. 나부터 그랬다. 세탁 공정에서 실수가 반복되면 입에서 먼저 "왜 또"가 나갔다. 배울 기회라 말해놓고 표정은 이미 짜증이었다.

​

코치가 되려다 꼰대가 됐다

지시형 대신 코치형 리더가 되라는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고 필사까지 하며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뜨끔했다. 경험 많다고 이것저것 알려줬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또 잘난 척"이었다. 몇 번 겪고 나니 나도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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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틀렸던 거다. 나는 늘 조언부터 던졌다. 요약하고, 공감하고, 그다음에 물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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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불안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시간은 돈이라는 계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나 혼자 갖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내 말투와 표정에 묻어 옆 사람한테 그대로 옮아갔다. 리더가 스트레스받으면 팀원도 똑같이 긴장한다. 이 순환을 이제야 봤다.

​

리더는 하늘에서 안 떨어진다

리더는 처음부터 다 잘하나?. 아니다. 리더는 만들고 키워지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리더를 경력 쌓이면 자연히 되는 자격증처럼 생각했다. 틀렸다.

​

권위가 아니라 책임

리더는 권위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는 자리다. 밥벌이로만 보면 생계 수단이지만, 배움과 성장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팀이 감당 못 할 방향이면 멈춰 세우고, 맞는 방향이면 밥 먹듯이 안내하고 확인 질문하는 것. 그게 전부다.

​

거창할 필요 없다. 그냥 매일, 조용히, 반복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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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냄새 지우기 - AI를 쓸수록 내 사유가 더 강해지는 법 ㅣ AI 헬스장
벤진 리드 지음 / 자이언톡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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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검색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질문하는 시대다.

≪AI 냄새 지우기≫ 책은 기술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

검색해서 골라 쓰던 시대가 지났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면 답이 알아서 오는 시대가 왔다는 것.

과정 없이 결과만 0초 만에 튀어나오는 시대에, AI를 도구로 쓰면서도 사유는 오히려 더 깊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장면만 있으면 글은 산만해진다.

구조만 있으면 글은 공허해진다.

패턴이 없으면 사례는 우연한 경험담에 머문다.

연결 문장이 있을 때, 설명은 이해를 넘어 통찰로 이동한다.

해상도 조절은 적절한 거리에서 현실과 구조를 함께 붙드는 능력이다.

이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만이 평균적인 설명을 넘어 자기 생각의 밀도를 만들 수 있다. p98

총평

AI가 잘 써줄수록, 나는 점점 못쓰게 되고 있었다

편했다. 빨랐다. 그런데 뭔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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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냄새를 지우는 법》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다. 이 책은 AI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AI를 쓰면서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법을 이야기한다. 검색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는 법.

​

AI는 그럴싸한 문장을 순식간에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문장이 맞는지, 내가 원한 게 정말 이건지 판단하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판단은 0초짜리 답이 아니다. 마찰과 인내를 거쳐야 겨우 도착하는 것이다.

​

몇 해 전, 새로 맡은 업무에서 행정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짠 적이 있다. 서식 하나, 절차 하나를 뜯어고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냥 서식 몇 개가 바뀐 것으로 보였을 거다. 그런데 직접 손으로 짜보니 이전엔 몰랐던 것들이 다 이해가 됐다. 어떤 서류가 왜 이렇게 생겨야 하는지, 어디서 막히면 현장이 무너지는지, 몸으로 부딪혀야만 보이는 감각이었다. AI라면 그 서식을 3초 만에 뽑아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 3초짜리 결과물 안에는 내가 6개월간 부딪히며 익힌 흔적이 없다. 결과는 비슷해 보여도 안에 든 것은 완전히 다르다.

​

AI 시대의 진짜 격차는 사용량이 아니다. 사유 습관이다. AI는 환각과 편향을 타고난 도구라서, 내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구체적으로 짚어주지 않으면 순순히 맞장구를 쳐준다. 결국 AI 냄새를 지우는 첫걸음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맥락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 그뿐이다. 목적과 독자, 상황과 금지 요소만 제대로 짚어줘도 AI는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각하는 습관 자체를 바꾸는 출발점이다.

​

그럴듯함과 사실 사이엔 반드시 멈춤이 필요하다. 내 언어로 다시 옮겨보는 순간, 그 멈춤이 온다. 답은 AI 속에 있지 않다. 현실의 마찰 속에 있다. 급하게, 내가 맡지 않았던 일을 대신 발표하게 된 적이 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즉석에서 말을 이어가야 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말들은 어디서 베낀 문장이 아니었다. 오랜 현장 경험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AI는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다. 익숙한 자리에서만 답을 찾으면 그 답은 금방 평평해진다. 다른 분야, 다른 시선을 끌어와야 입체감이 생긴다.

​

AI에게 전부를 맡기면 결과물은 화려한데 정작 실무에는 못 쓴다. 초안으로 여기고 다듬는 연습이 꼭 필요

하다. 자치활동 회의록 초안을 AI에 통째로 맡긴 적이 있다. 문장은 매끈했다. 그런데 현장 냄새가 없었다. 근로자 대표가 회의를 진행하는 특유의 리듬, 참여자들이 실제로 쓰는 표현, 그 결을 AI는 몰랐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손으로 썼다. 한 문장으로 못 줄이면 중심이 약한 거고, 길게 풀수록 산만해지면 구조가 약한 거다. 그날 그렇게 배웠다.

​

설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과, 그 구조를 내 언어로 다시 세우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왜 틀렸는지를 스스로 분석하는 사람만이 사고의 구조가 자란다. 학습에서 진짜 중요한 건 빠른 정답이 아니다. 내가 정확히 어디서 이해를 놓쳤는지, 그 막힌 지점을 내 손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빠른 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속도만 강조하고, 그럴싸한 답으로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 한다. 비교하고 연결하는 몫까지 AI에 넘기면, 그건 학습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글쓰기의 중심은 오히려 생성에서 판단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럴수록 손으로 글을 쓰는 연습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다. 내 생각을 글로 적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

AI 냄새를 지운다는 건 기계의 흔적을 감추는 기술이 아니다. 인간이 통과한 고통과 판단의 흔적을 다시 새겨 넣는 용기다. 내 언어로 다시 쓰고, 끝까지 혼자 퇴고해야 한다.

​

이제 AI와 함께라면 초안까지 순식간이다. 그럴수록 이 과정을 반복하며 자기중심과 긴장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 글을 맡기는 게 아니다. 틀과 방향,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AI를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기 사유를 끝내 놓지 않으려는 태도, 질문을 바꾸고 답을 의심하고 끝까지 다시 생각해 보는 습관,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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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냄새는 문체가 아니라 판단의 빈자리에서 새어 나온다. 의존형이 아니라 증폭형 사유. 맥락을 세우고, 검증하고,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관점을 바꾸고, 해상도를 조절하고, 형식을 바꿔가며 진짜 멀티턴을 나누는 것. 그렇게 꾸준히 학습하고 스스로 기획하며 글을 써야겠다.

​

AI는 갈수록 생각하는 기계가 되어가는데, 인간은 갈수록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 같다. 니체가 말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 익숙지 않은 것에 호의를 가져라." 우리는 AI로 빠른 답을 얻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그만큼 요구되는 능력도 함께 변한다는 사실은 자꾸 잊는다. 사고와 정보의 패러독스.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생각을 멈추게 된다는 것. 생각하는 힘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AI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쓰고 고민하는 시간.

​

AI를 대필자로 쓰는 사람과, 사유를 확장하는 협업 상대로 쓰는 사람은 다르다. 누구나 AI를 쓰는 시대지만, 어떤 사람의 답변에만 깊이가 있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

​

편하고 안전한 길은 좀처럼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AI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답을 너무 쉽게 주다 보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없이는 변화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날로그적이고 번거롭고 몸과 머리가 다 힘들었던 시간, 그 뒤에야 생각하는 힘이 세졌다. 가끔은 AI가 주는 편리함보다 머리가 주는 아픔을 일부러라도 느껴야겠다.

책이 던지는 질문

중요한 작업은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좋은 생각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p114

​

"질문에서 답까지, 시간이 0에 가까워진다"

중요한 작업은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생각도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

결국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한다. 공감이 되든, 새롭게 보이든, 의심을 심어주든, 어떤 판단 기준 하나라도 남기든. 그러려면 왜 이 글을 쓰는지 거듭 되물어야 한다.

​

AI를 쓸수록 AI 없이는 글이 안 써진다면, 자기 생각이 점점 흐려지는 게 느껴진다면, 일단 멈추자. 반대여야 한다. 쓸수록 판단이 더 또렷해지는 사람, 그게 맞는 방향이다.

​

버리고, 보완하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 그 반복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질문에서 답까지 걸리는 시간이 거의 0으로 수렴하는 시대다. 예전엔 좋은 자료를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가 실력이었다. 검색의 시대였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뭘 묻는가, 그 자체가 실력이 됐다.

​

데이터는 똑같이 주어져도 질문이 다르면 결론은 완전히 달라진다.

​

"원래 이렇게 해오던 건데요."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나는 AI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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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ㅣ 흔들릴 때마다 나는 OO를 읽었다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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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불행한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인상깊은구절

밑바닥까지 추락해 본 자만이 단단해진다는 말은, 추락 자체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추락한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만이, 그 자리에서 다시 무엇인가를 길어 올린다는 뜻이다. p46

​

완벽하게 준비된 시작이란 없다. p110

​

원망은 짧게, 살아남는 일은 길게. 그 비율이 그를 살렸다. p159

총평

도망치지 않는 법을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

희망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처음 들었다.

정확히는, 어떤 희망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천천히 질식시킨다는 것을.

읽다가 손을 멈췄다. 작년 이맘때 내가 딱 그 상태였기 때문에.

​

나는 꽤 오래 "다 잘 될 거야"를 믿었다.

안 믿었던 게 아니다. 진짜로 믿었다.

출근하면서, 버티면서, 억울한 채로 웃으면서.

근데 그 희망이 나를 버티게 한 게 아니었다.

그 희망이 나를 가장 오래 도망치게 만들었다.

​

부당한 일이 있었다. 말해봤자 안 바뀐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삼켰다.

다음에는 나아지겠지. 내가 좀 더 참으면 되겠지.

그게 희망이었는지 회피였는지, 당시엔 구별이 안 됐다.

지금은 안다. 그건 도망이었다.

​

도스토옙스키는 흙수저였다.

부유한 귀족 집안의 톨스토이를 질투했고, 그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 직전 5분 전에 특사를 받아 살아났다. 그 5분이 그를 바꿨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물이라는걸, 그는 총구 앞에서 배웠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을 때 비슷한 감각이 왔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낙관'이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봤다는 것. "여기서 나가면 다 잘될 거야"가 아니라, "잘되지 않더라도 나는 살아낼 것이다"는 단단한 결심.

그 차이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인간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다.

분석하고, 반추하고, 또 분석한다. 그러다 결국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

부당함을 느꼈을 때,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를 수백 번 복기했다.

왜 참았을까. 왜 말하지 못했을까. 왜 당하고만 있었을까.

근데 그 질문들은 하나도 나를 앞으로 보내지 않았다.

느낀 부당함을 안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와야 한다는 걸 나는 꽤 늦게 알았다.

그게 한 걸음이었다. 딱 그 한 걸음.

​

고통은 더럽다. 비루하다.

미화하면 거짓말이 되고, 회피하면 곪는다.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에서 했던 건 단 하나였다. 밤마다 한 문장. 매일.

기분 좋은 날도, 절망 속에서도, 오늘 밤 무엇을 쓰느냐는 변하지 않았다.

조건이 없었다. 기분이 조건이 아니었다. 상황이 조건이 아니었다.

​

나도 그게 필요했다. 거창한 루틴이 아니라, 무너지는 날에도 딱 하나 할 수 있는 것.

나는 그게 한 문장이라도 읽는것이었다. 어떤 날은 한 문장도 못 읽었다. 그게 시행착오였다.

근데 한 문장을 읽은 날과 못 읽은 날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달랐다.

​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 얘기를 읽다가 멈췄다.

착하다는 소리를 오래 들었다. 싫다는 말을 잘 못했고, 참는 게 미덕인 줄 알았다.

그게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사업가가 직원을 길들이듯, 좋은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거다.

​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포기해야 진짜 사람이 된다.

도스토옙스키가 이걸 150년 전에 썼다는 게 억울하다.

​

거장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 쓰지 말라.

걱정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는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 밖에 있다.

​

스토아, 니체, 도스토옙스키, 세네카, 쇼펜하우어

시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통하는 게 있다. 거장끼리는.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그 문장이 오래 남는다.

'삶의 의미보다 삶 자체를 먼저 사랑하라.'

사형 직전 5분을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억지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미화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런 시간이 있었구나. 그걸로 충분하다.

​

지금 눈앞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도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답 없는 채로 그냥 사랑하는 것.

그게 어른의 사랑이다.

​

도망치지 않는 것. 그뿐이다.

책이 던지는 질문

우리가 가진 것 중 진짜로 우리 것이었던 적은 없다. p139

내가 가진 것들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

나는 오래, 내 것이라 믿어온 것들이 있었다.

직함. 관계. 건강. 시간.

그것들을 잃었을 때 그렇게 무너졌던 이유가 뭔지 이제야 안다.

빌린 것을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

10년을 다닌 직장을 떠났다.

새 직장 첫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0년 동안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근데 그게 내 실력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리가 만들어준 신뢰였을까. 새 곳에서 제로부터 시작하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들고 다닌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그 회사가 빌려준 것들이었다는걸.

​

'잃는다'는 표현이 슬픈 건 그래서다.

빌린 것을 돌려줄 때 슬픔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빼앗겼다'고 느낀다.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분노도 원망도 잦아든다.

​

도스토옙스키는 시련을 피하지 말고 씹어 삼키라고 했다.

한 방에 되는 건 없다. 오래 씹는 것. 천천히.

솔직히, 싫었다.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 상황도, 이 감정도.

밑바닥에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딱 그거다. 한 번에 다 회복하려는 욕심.

단숨에 갚을 수 있는 빚은 없다. 오늘 한 줄. 내일 또 한 줄.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냥 오늘 하루, 딱 하나.

​

달마대사 글에서 우산 얘기를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도스토옙스키 책에서 똑같은 비유가 나왔기 때문이다.

외부의 구원을 기다리는 삶은 빌린 우산으로 비를 피하는 것과 같다. 잠깐은 안 젖는다. 근데 언젠간 돌려줘야 한다. 다음 비엔 또 빌려야 한다.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구원은, 좀 작고 허름해도 내 것이다. 비가 오면 내가 펼치고, 그치면 내가 접는다.

빌린 우산의 개수가 아니라, 내 우산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모든 걸 결정한다.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쓴 두 사람이 같은 그림을 그렸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그렇다. 거장끼리는 통한다.

​

나를 가장 오래 아프게 한 말들이 있다.

그것들이 다 진실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두려움, 누군가의 상처가 내게 잠깐 얹혀 있었던 것뿐이다. 내 것인 줄 알고 오래 들고 다녔다.

관계도, 기회도, 행복도 빌려온 것이라 생각하자.

이건 체념이 아니다. 살아남는 방법이다.

​

내 것은 딱 하나였다.

고통을 통과한 이후에도 남아 있는 것.

그게 진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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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그 마음을 내 앞에 꺼내 보아라 - 진짜 나를 마주하게 하는 달마의 가르침 ㅣ 동양철학전집 고전보감 시리즈 1
달마 지음 / PHILO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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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공덕은 없는 것이다.


인상 깊은 구절

달마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사람이 너에게 무엇을 해주었기에 너의 가장 귀한 시간을 그토록 내주느냐.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아기면서,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무한정 내준다. 이상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과는 가끔 보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매일 머릿속에서 만난다. 그러니 사실상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우리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다. p135

​

해는 곧 진다. 오늘 끝낸 한 가지가 당신을 조용히 지킨다. p157

​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게으른게 아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다. 일 자체에 쓰는 에너지보다, 일에 얽힌 감정에 쓰는 에너지가 몇 배는 더 크다. p150

총평

불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

나는 그 사람을 하루에 백 번씩 불러들인 적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백 번.

​

그 사람은 그냥 한마디 한 것뿐이었다.

회의 자리에서 별 감정 없이 던진 말이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퇴근길에 꺼내고, 밥 먹다가 또 꺼내고,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꺼냈다. 억울함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짐작이 사실보다 더 단단해진다는 것도.

​

달마는 말한다.

우리를 진짜로 망가뜨리는 건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나를 망쳤다는 스스로의 짐작이라고. 짐작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짐작을 들고 법정에 선다. 증거도 없이 판결을 내린다.

​

나는 오래 그랬다.

​

누군가를 도왔던 기억을 통장에 적립해뒀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지, 얼마나 참았는지, 얼마나 먼저 손 내밀었는지. 그걸 다 기억해두고, 돌아오지 않으면 화로 나를 태웠다. 사람한테 배신당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내 계산에 배신당한 거였다. 그걸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다.

​

그래서 ≪불안한 그 마음을 내 앞에 꺼내 보아라≫ 책이 조금 따가웠다.

​

싫어하는 사람이 뒷담화를 했다 해도, 그 일은 저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루 종일 곱씹고, 잠들기 전에 다시 꺼내는 건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사람은 한 번 나를 싫어했을 뿐인데, 나는 백 번 그 사람을 내 안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

끊는다는 건 지우는 게 아니다.

떠올랐을 때 거기에 살을 더 붙이지 않는 일이다. 잡고 있는 사람도 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나다. 잊지 않는다. 다만 데려오지 않는다. 한 줄을 더 보태지 않는다.

​

바람은 분다. 바람을 잡지 말자.

​

결과보다 과정의 나를 기억해두는 일.

달마가 가장 조용하게 강조한 부분이 여기였다. 결과는 조건의 몫이 크다. 날씨처럼. 내가 어떻게 했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온다. 그걸 가지고 나를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

나는 한동안 날씨로 나를 평가했다.

잘 안 되면 내 탓, 안 풀리면 내 부족함.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떤 건 그냥 조건이 안 맞았던 거였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도, 더 잘 준비했어도, 그날 비는 왔을 거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진짜 내 것이었다.

​

각자의 봄이 오는 때가 다르다.

누군가 봄이 왔다고, 내 봄이 안 왔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달마는 조건이 모이면 일이 생기고, 조건이 흩어지면 일이 사라진다고 했다. 비교할 필요가 없다. 기준이 무너지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사실 그 기준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냈다가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이 책을 집었다.

없는 것을 만들어서 호랑이로 키우고 있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불안은 실제로 어디에도 없다. 있지도 않은 것으로 나를 이만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게, 신선하다기보다는 조금 허탈했다.

​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기만 해도 불안은 사라진다.

달마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향해 다시 눈을 돌리는 일. 그것이 전부였다.

책이 던지는 질문

선종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여덟가지 경계인 '팔풍'을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p142

비가 와도 우산만 편다

​

'팔풍'. 여덟 가지 바람.

​

선종이 이름 붙인 것들이다. 이익, 손해, 칭찬, 비난, 영광, 굴욕, 기쁨, 괴로움. 나는 이 여덟 글자를 보면서 잠깐 멈췄다. 내 지난 몇 달이 여기 다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바람은 불었다 흩어진다. 달마는 그것뿐이라고 했다.

​

인정하기 싫었다. 이익과 손해 중에 내가 이룬 것이 없다는 말. 내가 망친 것도 없다는 말.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말. 몇 년을 공들인 일이 조건 탓이었다면 너무 허탈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

그러나 달마는 그 말 다음에 조용히 이렇게 덧붙인다. 날씨처럼.

​

우리는 비를 미워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해를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우산을 펴거나 빨래를 넌다. 비가 오는 날 창밖을 원망한 적이 있다. 면접 날이었다. 결과도 안 좋았다. 그날 나는 한참 비 탓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우산을 든 사람이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듯. 빨래가 안 마른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릴 일도 아니었다.

​

나는 꽤 오래 날씨로 나를 평가했다.

크게 실패했을 때,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다. 밥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망한 날 밥을 먹어도 되나, 그런 생각이 실제로 들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린 날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기분이 붕 떴다. 감정이 나를 다 차지하도록 두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지는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

달마가 원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이 자기를 다 차지하도록 두지 않는 사람. 크게 실패해도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크게 성공해도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출근하는 사람. 그게 냉정한 게 아니다. 그게 오히려 단단한 거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

10년으로 보면 어떨까.

오늘의 성공이 그 10년 안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가. 오늘의 실패가 정말 내 발목을 잡을 수 있는가. 대부분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매일 오늘만 산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건 나쁜 습관이라기보다 인간의 설계상 문제에 가깝다.

​

바람은 분다. 팔풍도 분다.

잡을 수 없다. 붙들려 있을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우산을 편다. 해가 뜨면 빨래를 넌다. 그 사이에 바람을 원망하거나 날씨를 자랑할 시간은 없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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