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하루에 백 번씩 불러들인 적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백 번.
그 사람은 그냥 한마디 한 것뿐이었다.
회의 자리에서 별 감정 없이 던진 말이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퇴근길에 꺼내고, 밥 먹다가 또 꺼내고,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꺼냈다. 억울함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짐작이 사실보다 더 단단해진다는 것도.
달마는 말한다.
우리를 진짜로 망가뜨리는 건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나를 망쳤다는 스스로의 짐작이라고. 짐작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짐작을 들고 법정에 선다. 증거도 없이 판결을 내린다.
나는 오래 그랬다.
누군가를 도왔던 기억을 통장에 적립해뒀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지, 얼마나 참았는지, 얼마나 먼저 손 내밀었는지. 그걸 다 기억해두고, 돌아오지 않으면 화로 나를 태웠다. 사람한테 배신당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내 계산에 배신당한 거였다. 그걸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불안한 그 마음을 내 앞에 꺼내 보아라≫ 책이 조금 따가웠다.
싫어하는 사람이 뒷담화를 했다 해도, 그 일은 저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루 종일 곱씹고, 잠들기 전에 다시 꺼내는 건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사람은 한 번 나를 싫어했을 뿐인데, 나는 백 번 그 사람을 내 안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끊는다는 건 지우는 게 아니다.
떠올랐을 때 거기에 살을 더 붙이지 않는 일이다. 잡고 있는 사람도 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나다. 잊지 않는다. 다만 데려오지 않는다. 한 줄을 더 보태지 않는다.
바람은 분다. 바람을 잡지 말자.
결과보다 과정의 나를 기억해두는 일.
달마가 가장 조용하게 강조한 부분이 여기였다. 결과는 조건의 몫이 크다. 날씨처럼. 내가 어떻게 했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온다. 그걸 가지고 나를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날씨로 나를 평가했다.
잘 안 되면 내 탓, 안 풀리면 내 부족함.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떤 건 그냥 조건이 안 맞았던 거였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도, 더 잘 준비했어도, 그날 비는 왔을 거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진짜 내 것이었다.
각자의 봄이 오는 때가 다르다.
누군가 봄이 왔다고, 내 봄이 안 왔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달마는 조건이 모이면 일이 생기고, 조건이 흩어지면 일이 사라진다고 했다. 비교할 필요가 없다. 기준이 무너지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사실 그 기준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냈다가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이 책을 집었다.
없는 것을 만들어서 호랑이로 키우고 있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불안은 실제로 어디에도 없다. 있지도 않은 것으로 나를 이만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게, 신선하다기보다는 조금 허탈했다.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기만 해도 불안은 사라진다.
달마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향해 다시 눈을 돌리는 일. 그것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