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쓰다가, 울음을 삼켰다.
스물일곱, 사회복지 3년차였다. 활동보조인 채용 공고 하나 올렸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청탁이 쏟아졌다. 그중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는 지원자가 있었는데, 면접 내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했다. 활동보조라는 일에 대한 마음보다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먼저 보였다. 나는 채점표에 점수를 매겼을 뿐,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할 권한조차 없는 실무자였다.
그런데 떨어지고 나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서울에 있다는 높은 사람,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까지 동원해서 전화가 왔다. 담당자를 자르라고. 고소장이 날아왔고, 기관 최고관리자에게도 여기저기서 압박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권도 없는 3년차 실무자 하나를 두고 벌어진 일치고는, 너무 컸다.
당신이라면 두 달을 버틸 수 있었을까.
민원과 고소에 지친 기관장이 주말에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쓰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조건 세 가지를 들이밀며 나를 악인 취급했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 곳에서 더 버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울면서 사직서를 써 내려가던 그 순간, 사무국장이 오늘은 그냥 가라며 나를 내보냈다. 기관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지만 사직서 쓰라고 이야기할 테니 기다리라고.
그 한 달 사이, 대상포진이 왔다. 스물일곱 몸에.
6개월을 앓았다.
그만두려고 마음을 굳히고 준비하던 어느 날, 억울함이 올라왔다. 인사권도 없는 실무자를,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이 주변 힘을 빌려 협박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뿌리내린 곳에서 꽃을 피우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물러나면 평생 억울할 것 같았다. 버티기로 했다. 진실은 밝혀질 거라 믿었다.
정직하게 일한 대가가 이거라면, 계속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버텼다. 끝내 고소는 취하됐고 민원도 정리됐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낙방한 자존심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과도 받았다. 전해 들은 말이었지만.
그 두 달, 대상포진과 함께 보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기는 싸움보다 지지 않는 싸움이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라는걸. 오피스 빌런은 어디에나 있다. 업무 능력보다 잦은 만남과 매끄러운 소통으로 승진 기회를 얻는 상급자를 보며, 정직하게만 일하면 된다던 믿음을 접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려면 버티는 끈기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재능보다 중요한 건 끈기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장도연이 스스로에게 건다는 주문, "다 X 밥이다."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고 자기 속도로 살아가려면 저마다의 주문 하나쯤 필요하다.
진짜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악플 달 시간도, 남 욕할 시간도 없다. 노하우 연마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니까.
그 두 달, 나는 히어로 스톤 하나를 몸에 새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