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착각, 나도 속았다.
빨리하면 유능한 거라 믿었다.
틀렸다.
≪일 안 하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카무라 가즈야는 일 처리 속도를 높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일 자체를 줄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반대로 살아왔다. 사회복지사 20년 차. 빈 시간이 보이면 못 참고 뭔가로 채웠다. 어느 날은 화장실 갈 타이밍마저 아까워하면서 9시간을 꼬박 앉아 이 일 저 일 처리하다 퇴근했다.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뭘 한 거지? 성과는 딱히 없었다. 그냥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저자는 이걸 정확히 짚는다. 아무 성과도 못 내는 사람이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한다. 반박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내 얘기였으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쁠까
한국은 근로시간이 해마다 줄고 있다. OECD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길지도 않다. 그런데도 다들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왜일까.
할 일이 너무 많아서다. 투자(주식, 금테크, 환율), 자기계발, 육아, 운동, 독서, 부업, SNS, 유튜브. 선택지가 넘쳐나니 그중 뭘 고를지 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친다. 결정피로다. 빈틈만 보이면 뭐라도 밀어 넣는 습관, 그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효율을 높인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멈췄다.
돈이냐 시간이냐
저자는 묻는다. 돈과 시간, 뭘 택할 거냐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부자는 시간을 고른다고 한다.
나는 월급쟁이다. 시간을 녹여 돈을 버는 구조 안에 산다. 이 문장을 읽고 뜨끔했던 이유는, 정작 내가 시간보다 성과와 처리 속도를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빨리 끝내는 게 능력이라 믿었는데, 저자는 그게 함정이라고 말한다. 빨리 끝내봤자 남는 시간에 또 다른 일이 채워질 뿐이다. 나만 몰랐던 거다.
공을 넘기지 못하는 병
이 책에서 가장 뜨끔했던 대목은 따로 있다. 공을 받으면 남에게 넘겨라. 스스로 공을 늘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나는 이게 제일 안 된다. 회의에서 누가 새 업무 얘기를 꺼내면 손이 먼저 나간다. "제가 할게요." 습관처럼 나온다. 왜 그럴까 곱씹어 봤다. 신뢰의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더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어쩌면 맡기고 뒤처리하는 게 더 피곤할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근데 그거, 결국 내가 일을 만들어낸 거였다. 넘길 수 있는 일을 넘겨야 직원도 크고, 나도 숨 쉴 틈이 생긴다. 창의적인 일은 그 틈에서 나온다.
하지 않는 일 리스트
저자가 인간관계까지 정리 대상으로 삼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인간관계로 고민하지 않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고민이 풀렸다고 한다. '하지 않는 것'을 정해두면 잡생각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책을 덮고 나만의 리스트를 적어봤다.
인간관계 고민하기
일정 빽빽하게 채우기
멀티태스킹
질 나쁜 기름 먹기
밤 8시 이후 먹기
적어놓고 보니 별거 아닌데, 이걸 글로 써서 눈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은 머릿속에만 두면 정리가 안 된다. 말로 뱉거나 글로 써야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아이비 리 방법, 그리고 바퀴를 다시 만들지 않기
저자는 매일 할 일을 세 가지로 압축하는 '픽 쓰리', 여섯 가지로 잡는 '아이비 리 방법'을 소개한다. 작업 전환 횟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사무실 얘기가 떠올랐다. 서류 간소화하겠다고 만든 양식이 오히려 더 챙길 게 많아진 경험, 다들 있지 않나. 큰 바퀴 하나 만들어놓고선 비슷비슷한 작은 바퀴를 계속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여기서 AI 얘기를 꺼낸다. 반복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사람은 사고를 확장하는 데 써야 한다고.
결국 남는 건 숨 내쉬고, 깊이 들이쉬고, 다시 내쉰다. 3분에서 5분, 그거면 머릿속이 비워진다고 한다. 저자가 마음챙김을 소개하는 방식은 간결했다.
일 처리가 빠르다고 개인 시간이 늘어난 적은 없었다. 나도 그랬다. 결국 답은 하나다. 불필요한 생각, 번잡한 절차, 과한 연락, 안 해도 될 실수. 이 네 가지만 줄여도 할 일은 반토막 난다.
빨리 일하는 사람 다음엔 더 많은 일이 기다린다. 이건 이미 겪어봐서 안다. 그러니 답은 속도가 아니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넘길지 가려내는, 그 선택의 무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