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과 나 - 전설적인 미군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노먼 잭 클리스.티머시 J. 오르.로라 로퍼 오르 지음, 이승훈 옮김 / 일조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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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구의 주요 대 전투 중 하나로 빠짐없이 거명된다.


2019년에는 영화도 나왔을 정도인데, 이 책은 그 엄청난 해전을 특등석에서 참가했던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이다.


나름 전쟁 서적을 많이 읽은 입장에서 냉정하게 볼 때, 이 책도 다른 군인의 회고록과 비교할 때 내용상 그렇게까지 ‘튀는’ 존재는 아니다. 즉, 다른 회고록에서 나타나는 전쟁의 실상과 전훈들을 여기서도 다 볼 수 있다. 유능한 적보다 더욱 무서운 무능한 아군, 절대 카탈로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아군의 장비, 적에게나 아군에게나 똑같이 냉엄한 대자연, 군사적 비효율을 양산하는 경직된 관료 체계 등등의 문제점들을,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미군 역시 똑같이 겪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야말로 전쟁 게임이나 ‘카탈로그 스펙 놀이’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귀중하다. 더구나 이 책의 저자는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본 항공모함들에 직접 폭탄을 내리꽃았고, 전후에도 천수를 누린 <최후의 생존자>다. 그는 늘그막에 이 책을 냄으로서, 역사가 부여한 사명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집필 시점으로부터 무려 70여년전에 있던 전투를 회고했음에도, 그는 대량의 역사 기록의 도움을 받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6.25 당시의 전투 기록도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보여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우리 군과는 실로 비교되는 환경이다. 


미드웨이 전투 이후 종전시까지 미군이 그에게 교관 임무와 추가 교육 기회(대학원)를 부여한 것은 추축군과 비교되는 미군 시스템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우수한 인재를 전투에서 값 없이 소모시키지 않고, 또다른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연마할 수 있게 함으로서 아군의 전투력을 배양한 것이다. 반면 독일과 일본은 엄청난 전과를 자랑하는 수퍼 에이스를 다수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전투에만 투입된 탓에’ 종전을 보지 못하고 전사하고 말았다. 전쟁은 결국 시스템 간의 우수성 경쟁이며, 승리하려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이런 서적의 번역이 형편 없었다면 이런 부분을 캐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책의 번역자는 다수의 군사 서적을 훌륭하게 번역하여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물론 이 책에도 약간의 용어 오류는 눈에 띄긴 한다. 그러나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에 ‘미 공군’이 있었다거나, 해병대 ‘경호대’가 조총을 발사한다는 식의 해괴한 용어 선택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없었다. 역자가 앞으로 낼 작품들이 더욱 기대된다.  


 


PS: 이 책과 함께 2019년작 영화 <미드웨이>도 감상하도록 하자. 그 영화가 엄청나게 잘 만들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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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방군 제7기갑여단사
한종수 지음 / 길찾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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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던가?

이스라엘만큼 그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아마 유례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근대국가 이스라엘의 성립은 시오니즘이라는 이론적 기반 위에, 영국의 지원, 그리고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기폭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적대적인 아랍 국가에 맞서 독립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들로 엄청난 생명이 희생당했다.

이 책은 그 모든 과정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스라엘 육군 제7기갑여단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스라엘 독립투쟁사라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은 내용이다.

우선 기획과 출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이스라엘은 국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많이 참고해야 할 나라다. 면적은 한국의 강원도만하고 인구는 1000만이 채 안 되는 소국이, 수억 인구를 자랑하는 아랍 국가들에 맞서 매번 전쟁을 치르면서도 70년 넘게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책에서는 그 비법을 군의 민영화라고 밝히고 있다. 소수의 군부 엘리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국가를 일방적이고 군대식으로 근대화하여 그 부작용으로 민군간의 심리적 거리가 크게 멀어진 한국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생적으로 만든 민병 조직들이 군의 근간이 됨으로서 국방의 중요성과 병역 의무 수행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더욱 자연스럽게 납득시키고 더욱 민간 친화적이고 사기 높은 군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급속하게 늙어가는 한국이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국방력을 유지하기 위해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또한 경직성이나 자원 낭비적 요소가 적은 합리적이고 유연한 군 운영 노하우 역시, 장차 우리 군이 저비용 고효율적인 국방을 실현하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반유태주의는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는 특히 출판계에 많은, 진보 지식인연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 나만 해도 반드시 시오니즘을 나쁜 사상으로 묘사하라.”는 출판사의 압력을 당했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놀랍다. 한국의 미래 국방을 걱정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우리 군의 체질 개선에 필요한 비법을 많이 얻어 가실 수 있을 것이다.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책 내에서 초점의 변화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즉 거시사(이스라엘 국사와 세계사)와 미시사(전투 기록 및 장비 설명 등) 간의 시점 변화가 매우 급하고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독자에게는 좀 혼란을 준다. 그리고 일부 서술을 보면 이공학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차후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런 부분을 더욱 신경써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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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우트원 1~3 - 전3권 - 대한민국 공군 창설사 건들건들 컬렉션
장우룡 지음 / 레드리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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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에서 리뷰를 전제로 책을 제공받았으나, 일체의 외압 없이 양심적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나는 1978년생이다. 반공 교육의 끝물을 체험했다. 내가 국민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TV에서는 반공 영화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반공 관련 글짓기나 그림 대회 같은 것을 빈번하게 했다.


그 모든 것은 1980년대까지였다. 동구 공산권과 국내 군부 정권이 몰락한 1990년대가 되자 반공, 반북은 급속도로 촌스러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TV에서 자주 틀어주던 반공 영화도, 배달의 기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반공이라던지, 북한과의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슬슬 6.25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국군 장병들의 희생을 경시하기 시작하는 풍조까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내 버리는 격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강산이 3번 바뀔 시간이 더 지나 2020년대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무려 70년 전에 있었던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을 잊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북한의 무력 도발 때 순직한 한국군 장병들을 가리켜 “평화를 원하던 북한 청년들을 죽인 살인자”라고 칭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군복무를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부르던 과거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요즘은 일부 장교들조차도 군복무를 종종 ‘노예 생활’로까지 대놓고 일컫는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진 걸까? 큰 관점에서 보면 아니라고 본다. 20세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극의 역사, 즉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은 아직까지도 그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힘이 없었기에 아우의 나라로 깔보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식민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지 못했기에 분단이 되었고, 이념의 용병이 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고 말았다.      


포성이 멎은 지도 만으로 70년이 지났지만, 6.25 전쟁은 아직 국내 및 국제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았다. 북한과의 군사적 적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북한은 핵을 손에 넣어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민족 내부의 이념적 갈등이라는 이 전쟁의 내재적 기원은 아직도 남한 땅 내에서 좌우 양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이라는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다. 애당초 이 전쟁의 목적이 민족의 이익이 아닌, 외세와 이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유튜브에서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상대방을 헐뜯는 좌우 양 진영들에게 민족과 민중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 


이 민족과 이 나라에는 애당초 조선 중기 이후 영광스러운 정복의 역사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이라는 절대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선두주자인 미국은 자신들의 전공을 신화화시켜 수많은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자랑스러운 군사적 역사와 전통이 없는 우리에게 그들만큼 고급스럽고 뛰어난 문화상품의 등장은 애당초 바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0년간 6.25 전쟁 관련 많은 문화상품들이 등장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1980년대 이전의 반공 선전 영화에서 외적으로건 내적으로건 전혀 성장 못 한 졸작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등장한, 아니 10년만에 재간된 장우룡 화백의 <바우트 원>은 한국군을 소재로 한 군사 문화 상품 중의 몇 안 되는 걸작으로 인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화백의 역사적 시각은 좌우로 치우침이 없다. 또한 일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하다.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행한다. 연구의 결과물을 화폭에 옮기는 솜씨 역시, 한국식 웹툰의 거칠고 단순한 그림체에 익숙해 왔던 젊은 독자들에게는 신세계다. 이 책은 장우룡 화백의 그런 면모를 아낌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책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일종의 팩션이다. 책 속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라고 보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그 원인은 한국의 문화적 풍토 자체가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절대 빈곤을 경험한 이 땅의 기성 세대들은 문화에 투자하는 데 인색하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묘사해도 사자 명예훼손죄로 입건되고, 70년 전의 전투 기록에도 군 당국이 ‘보안’을 들이대는 마당에 사실적인 역사 묘사는 언감생심이다. 심지어 그 역사적 평가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을뿐더러 좌우 양진영의 치열한 정쟁에 아직도 악용되고 있는 6.25 전쟁의 이야기다. 역사의 진실을 사랑하는 인문학도로서 이는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겠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하다못해 계란 자국이라도 남는 법이다. 척박한 땅에 심기운 묘목이 설령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그 몸은 썩어 땅을 조금이라도 더 비옥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 <바우트 원>. 역사에 대한 치우침 없는 시선을 제공하고, 척박한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 한 줌 밑거름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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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과 나 - 전설적인 미군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노먼 잭 클리스.티머시 J. 오르.로라 로퍼 오르 지음, 이승훈 옮김 / 일조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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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전문성이 기대된다.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에 미 공군이 있었다고 하는 자의 책보다야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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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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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06년이다.

이 책은 내게 번역가로서의 사명감을 주었다. 그리고 이후 현재까지 17년 동안 번역 및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준 밑거름도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 동안 현장에서 본 것들은 모두 절망적이었다. 책 속의 내용을 적용시켜 보면, 한국은 망하기로 작정을 한 나라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쩜 이렇게 번역을 홀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 17년 동안 번역가의 대우는 표면적으로 제자리걸음이고 실질적으로는 후퇴했다. 그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부당한 일들, 부조리한 일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21세기 한국인은 망하기로 작정을 한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번역 없이도 살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17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펴 보았다. 스스로의, 업계의 현실을 오버랩시키자 그저 한 없이 암울하다. 


상익이 형! 번역계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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