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바우트원 1~3 - 전3권 - 대한민국 공군 창설사 건들건들 컬렉션
장우룡 지음 / 레드리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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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에서 리뷰를 전제로 책을 제공받았으나, 일체의 외압 없이 양심적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나는 1978년생이다. 반공 교육의 끝물을 체험했다. 내가 국민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TV에서는 반공 영화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반공 관련 글짓기나 그림 대회 같은 것을 빈번하게 했다.


그 모든 것은 1980년대까지였다. 동구 공산권과 국내 군부 정권이 몰락한 1990년대가 되자 반공, 반북은 급속도로 촌스러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TV에서 자주 틀어주던 반공 영화도, 배달의 기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반공이라던지, 북한과의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슬슬 6.25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국군 장병들의 희생을 경시하기 시작하는 풍조까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내 버리는 격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강산이 3번 바뀔 시간이 더 지나 2020년대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무려 70년 전에 있었던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을 잊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북한의 무력 도발 때 순직한 한국군 장병들을 가리켜 “평화를 원하던 북한 청년들을 죽인 살인자”라고 칭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군복무를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부르던 과거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요즘은 일부 장교들조차도 군복무를 종종 ‘노예 생활’로까지 대놓고 일컫는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진 걸까? 큰 관점에서 보면 아니라고 본다. 20세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극의 역사, 즉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은 아직까지도 그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힘이 없었기에 아우의 나라로 깔보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식민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지 못했기에 분단이 되었고, 이념의 용병이 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고 말았다.      


포성이 멎은 지도 만으로 70년이 지났지만, 6.25 전쟁은 아직 국내 및 국제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았다. 북한과의 군사적 적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북한은 핵을 손에 넣어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민족 내부의 이념적 갈등이라는 이 전쟁의 내재적 기원은 아직도 남한 땅 내에서 좌우 양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이라는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다. 애당초 이 전쟁의 목적이 민족의 이익이 아닌, 외세와 이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유튜브에서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상대방을 헐뜯는 좌우 양 진영들에게 민족과 민중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 


이 민족과 이 나라에는 애당초 조선 중기 이후 영광스러운 정복의 역사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이라는 절대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선두주자인 미국은 자신들의 전공을 신화화시켜 수많은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자랑스러운 군사적 역사와 전통이 없는 우리에게 그들만큼 고급스럽고 뛰어난 문화상품의 등장은 애당초 바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0년간 6.25 전쟁 관련 많은 문화상품들이 등장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1980년대 이전의 반공 선전 영화에서 외적으로건 내적으로건 전혀 성장 못 한 졸작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등장한, 아니 10년만에 재간된 장우룡 화백의 <바우트 원>은 한국군을 소재로 한 군사 문화 상품 중의 몇 안 되는 걸작으로 인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화백의 역사적 시각은 좌우로 치우침이 없다. 또한 일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하다.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행한다. 연구의 결과물을 화폭에 옮기는 솜씨 역시, 한국식 웹툰의 거칠고 단순한 그림체에 익숙해 왔던 젊은 독자들에게는 신세계다. 이 책은 장우룡 화백의 그런 면모를 아낌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책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일종의 팩션이다. 책 속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라고 보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그 원인은 한국의 문화적 풍토 자체가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절대 빈곤을 경험한 이 땅의 기성 세대들은 문화에 투자하는 데 인색하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묘사해도 사자 명예훼손죄로 입건되고, 70년 전의 전투 기록에도 군 당국이 ‘보안’을 들이대는 마당에 사실적인 역사 묘사는 언감생심이다. 심지어 그 역사적 평가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을뿐더러 좌우 양진영의 치열한 정쟁에 아직도 악용되고 있는 6.25 전쟁의 이야기다. 역사의 진실을 사랑하는 인문학도로서 이는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겠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하다못해 계란 자국이라도 남는 법이다. 척박한 땅에 심기운 묘목이 설령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그 몸은 썩어 땅을 조금이라도 더 비옥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 <바우트 원>. 역사에 대한 치우침 없는 시선을 제공하고, 척박한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 한 줌 밑거름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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