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며칠간 이른 새벽 고향 한적한 바닷가에 차를 몰고온다. 명목은 책을 보려는 것인데, 실질은 생각정리만 하고 있다. 차창밖 풍경을 보니, 문득 무진기행이 생각난다. 찬양일색의 평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내 기억으로는 사춘기병에 걸린 중년의 일탈기로 정리되어 있다. 작가가 말년에 풍찬노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던 생각도 조금했던 것 같다. 나도 노년이 되면 바닷가에 소박한 집 한 채 지어 살았으면 싶다고 했더니, 그러다 우울증 걸린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 사람아, 콘크리트 숲에서 그간 살다보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우울증에 걸린 나라오. 더 이상 나빠질 게 어디 있겠는가. 여하튼 토지 1권을 조금 더 읽고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 가야겠다. 연휴가 조금 더 남았는데, 약간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 참을 수 없는 조급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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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달에 걸쳐 20권을 다 모았다. 우리 역사가 질퍽질퍽하여 지난번 혼불이나 태백산맥을 읽었을 때 몹시 가슴이 시려웠던 기억이 있어 시작하기 다소 두렵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이번 연휴부터 찬찬히 읽어 보련다. 오늘 고향 바닷가에 차를 세워넣고, 해풍을 느끼며, 카펜터스의 포근한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 속에서 책장을 넘겨본다. 첫장 배경이 시골, 때는 한가위라 더욱 정감있게 다가 온다. 이렇게 독서하는 것도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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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평점은 3.5가 적당할 것 같은데, 0.5단위로 세분화가 안되므로 반올림하기로 했다. 분량은 매우 적으나 사정상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을 근 이 주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수긍가는 면이 없진 않지만, 조금은 억지스러운 점도 보였고 결론도 내 지론과는 사뭇다르며 감동받은 지점도 딱히 없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마치 작가가 책은 내야 하겠고, 그 내용은 무의미로 해야 할 터인데, 평소에 배꼽티 입은 여자들이 눈에 거슬렸으니 이렇게, 저렇게 짜 맞춰서 한 권 억지로 써낸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요즘 나는 모든 일에 나름의 가치를 부여코자 노력한다. 이유는 과거 모든 사안에 대해 ‘그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로 치부했던 생각이 그간 습관으로 굳어져 결국엔 무의미와 무기력만 남게 되었다는 후회를 절실히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맘 자세를 고쳐 먹은지 몇년 되었고, 이 경험이 있기에 가끔 주위 동료나 후배들의 행동에서 예전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한다. 지난주에는 그들의 특정 모습에 실망도 들었고, 그간 비슷한 충고를 많이 해 주었기에, 내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일 그 자체에 의미의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결국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전부 좌우되는 법이다. 그리고 스스로 하는 일에 무의미를 부여할수록 그 일을 처리하는 본인이 정작 무의미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해주고 싶은 핵심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 책의 내용을 꼬집자면, 모든게 결국 무의미한 것이고, 그렇다고 말하는게 용기이며, 그 무의미를 기쁘게 받아들이자라는 말은 무기력을 부추기는 것이고, 변태적, 즉 사디즘적 성격이 보이는 주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주장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내가 100% 보장할 수 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 다. 들이마셔 봐요 ,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147쪽)

그리고 그 무의미의 원인을 숙명 탓으로 돌리는 것도 비겁한 것이며,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는 생각(개별성의 환상)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진지함 부족이라는 생각 밖에 들진 않는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들도 이리 다른 것을. 타인에 대해 진지하게 마음을 열 때 그 각자의 개성은 별처럼 반짝이는 법이다.

“네 주위를 둘러보렴.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에 있는 건 아니란다. (...)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자기 의지로 삶을 끝내는 일까지도 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허락해 주지 않아” (132쪽)

“여기 있으니까 좀 낫다. 물론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그래도 이 공원에서는 획일성이 좀 다양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는 네 개별성의 환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그럼에도 해법에는 일부 수긍한다. 결국 해결책은 사람간의 따뜻한 관계 형성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이다.

“나는 우리 거리들에 이름을 장식한 이른바 그 위인이라는 자들은 관심 없어. 그 사람들은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칼라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44쪽)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58쪽)

이번달부터 쿤데라 전집을 매달 5권씩 사들이고 있는데, 이 정도의 깊이면 좀 곤란하지 않나 싶다. 우리말 번역에서 등장인물들의 말투도 약간 어색하다. 전반적으로 조금 부족한듯한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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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읽는 중이다. 첫 번째를 휴가 때 불편하게 읽어서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그렇다. 처음 읽고는 북플평을 봤더니 칭찬이 대부분이던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마존 구독자 평을 봤는데, 그중에 솔직히 내 생각에 가까운 평에 눈길이 갔다.

“a bit disappointed. I didn‘t find the Kundera of the Lightness writings. or didn‘t I remember well. Also, this is a very short book”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감동을 아직 간직하기에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재차 확인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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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9-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진짜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글자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빅대디 2017-09-27 22:33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래서 다시 읽어요^^
 

몇년전 읽었는데 오늘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악의 평범함, 그 근원은 생각하지 않는 죄. 연휴 때 읽을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다른 책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자신의 개인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점을 제외하고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중략)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를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건 ‘철저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중략)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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