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묻힌 형제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원지인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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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중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솔직히 내가 속한 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걱정하거나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진 않다. 미국이 아무리 최신식 무기로 이라크를 공격해도 그리고 무장단체가 인질들을 놓고 협상하는 뉴스에도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고 내 눈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이 없었기에 직접적으로 전쟁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다 하루아침에 폭탄이 떨어지면 어쩌지? 지금 가진 것들을 모두 잃게 된다면? 사랑하는 내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간다면? 이런 유쾌하지 않은 상상들조차 몇 번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나와 꼭 닮은 십대 소년의 눈을 통해 전쟁을 보게 되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전쟁에 대한 공포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시작한 우리의 공통점은 더 나아가 남동생이 있는 것으로 그리고 실낱같은 한 가닥의 희망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점점 겹쳐지더니 책의 여러 장을 거듭할수록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땅속에 묻힌 형제>의 주인공 대니는 7살 난 남동생과 식료품점을 하는 부모님을 둔 평범하고 행복한 소년이었다. 적어도 그가 사는 마을에 핵폭탄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날아든 핵폭탄 하나로 그는 순식간에 엄마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또 다른 사고로 아빠를 잃게 된다. 이제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남동생 벤뿐인 상황.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마다 놓인 서러움과 두려움, 살고자하는 욕망을 보며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무안할 정도로 미안하고 또 미안해졌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고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생존을 위한 폭력들 앞에 대니는 어린 동생을 지키며 살기위해 몸부림친다. 아이의 눈으로 본 전쟁의 실상은 그 어느 누구의 눈을 통해 보는 것 보다 더 잔인하고 안타까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토양과 물에서 새로운 시작을 원하며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돌아오는 허무한 결과물 속에서 그들이 가진 희망은 하나하나 바스러졌다. 입이 없이 태어난 아기는 바로 죽어버리고 방사능 중독으로 머리칼이 빠지고 반점이 생기며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어느 것도 없었다.

 

 전쟁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곳에나 생존자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결코 죽는 것보다 낫지 않다. 죽지 못해 살아가고 살기위해 다른 이를 죽여야 하는 그런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해답 없는 의문들 속에서 대니는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 있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그리고 지옥의 한 복판에서도 희망을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명해주었다. 어린 동생 벤을 묻으며 흘렸던 눈물은 이제 곧 태어난 대니와 킴의 아이를 위한 기쁨의 눈물로 변할 것이고 그들은 밭을 일구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시며 새로운 삶을 향한 기대를  품게 될 것이다. 대니와 킴이 자신들의 삶을 포기했더라면 나는 분명 크나큰 충격 속에서 기운 없이 넋 놓고 있었을 텐데. 그들의 새로운 시작이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땅속에 묻은 형제>란 책은 그 어떤 책들보다 전쟁의 실상을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잘 표현한 책이다. 밑바닥까지 거침없이 보여주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실상을 폭로하며 그 사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고도의 문명 속에서 일어난 전쟁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결국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이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야기하게 될 최대의 비극임을 환기시킨다. 전쟁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고 나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게 되었다. 원자폭탄 그것은 인류가 제일 먼저 없애야 할 물건이며 우리는 상대를 위해서 만이 아닌 내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평화를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 어지럽게 흩어지는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마음속에 쌓아가며 대니와 킴의 행복을 빌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그저 책을 한 번 꼭 안아주는 것으로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그리고 대니와 킴에 대한 응원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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