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돈키호테의 식탁

글쓴이: 천운영

펴낸 곳: 아르테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책과 음식에 관한 글을 가장 좋아한다. 영화도 좋아하는 편인데, 다양한 장르 중에서 요리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이런, 나의 취향은 기승전 음식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음식이 주는 따스함과 훈훈한 위로에 참 약한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주제인 음식과 책 혹은 음식과 영화, 혹은 책과 영화가 접목되면 일단 먹어 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까다롭지는 않지만 특별한 이런 내 취향을 100% 만족하게 하는 책을 찾기는 어려운데, 이번엔 진짜 중의 진짜를 만났다. 천운영 작가가 소설 돈키호테에게 빠져, 괴짜 기사의 발자취를 좇으며 그가 먹었던 음식을 탐닉하는 여정. 소설가 특유의 감성과 유려한 글솜씨에 더불어 그녀가 늘어놓는 돈키호테의 에피소드와 각 장면에서 등장하는 음식이 참 맛깔나게 구미를 당긴다. 뭐야, 에세이가 이렇게 재밌으면 반칙 아닌가? 이 책 재밌어도 너무 재밌다!

 

 

 

 우선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좀 살펴보자. 스페인어로 상대를 높이는 존칭인 '돈'과 허벅지 가리개를 뜻하는 '키호테'. 앗, 우리의 돈키호테를 직역하면 '허벅지 가리개 경'이라니! 원래 제정신이 아닌 건 알았지만, 이런 이름을 여드레에 걸쳐 고민하며 만들었다니... 아이고, 이 할배야! 기사가 되어 길을 나서기 전에 그의 식단을 살펴보자. 평일 낮에는 항아리 요리인 오야를 먹었다. 고깃국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저녁에는 쇠고기와 양파를 넣은 살피콩. 육식을 금하는 금요일에는 렌즈콩. 토요일은 염장 삼겹살 계란 요리, 일요일에는 굉장히 비싼 특식인 새끼 비둘기 요리를 먹었다고 한다. 재산의 4분의 3을 먹는 데 쏟아부었으니, 참 특이한 인물이다. 엉터리 투구를 쓰고 길을 떠난 첫날, 쫄쫄 굶은 그가 겨우 손에 쥔 건 제대로 요리하지도 않은 염장 대구와 더러운 검은 빵이었다. 투구를 벗을 수 없으니 여인네들이 먹여주지만, 반은 흘리고 반은 먹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제 겨우 시작인 터라, 수많은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염소 육포, 설탕을 입힌 도토리 열매와 딱딱한 치즈, 염장 돼지, 염장 청어(과메기), 레케손 치즈(리코타 치즈), 가차스 (죽), 와인, 달콤한 튀김 과자, 무화과, 막대 과자와 모과 쨈, 트론촌 치즈, 하몽 뼈다귀 등등.

 

 

 


 

 

 누가 화자인지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얼마나 재밌고 재미없어질 수 있는지 실감했던 시간이다. 돈키호테 완역본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절반도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나로서는 천운영 작가가 말하는 돈키호테가 정말 내가 아는 그 괴짜 시골 영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는데... 소설 돈키호테가 정말 이토록 재밌었단 말인가! 학창 시절 할리퀸 소설을 섭렵하여 '할리퀸 천'으로 통했다는 천 작가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진 듯 꿈틀꿈틀. 복숭아를 먹고 제대로 탈이 났던 천 작가는 옷을 홀딱 벗고 꼼짝없이 할머니의 참기름 세례를 받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야무지게 말아놓은 누드 김밥'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 부분에서 어찌나 배꼽 잡고 웃었는지. 아,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스페인에서는 '무화과나 먹어라'라는 표현이 '엿이나 먹어라'란 뜻이며, 상대를 욕할 때 '평생 마늘만 먹고살 놈아'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아니 왜 맛있는 무화과랑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마늘을 갖고 난리야!' 싶다가도 이 또한 특이하고 재밌는 문화 차이라 껄껄 웃었다. 천 작가의 인생 한 스푼에 돈키호테의 모험 한 스푼, 거기에 산초의 매력을 더해 완성한 《돈키호테의 식탁》. 아, 정말 이 책 재밌어도 너무 재밌다!

 

 

 

 

아르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깔깔 웃으며 읽고 즐겁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