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관련 서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얀 반 에이크와 그의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
결혼을 기념하는 초상화인 듯 보이지만 축하하는 분위기는커녕 미묘하면서도 복잡해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 때문에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작품이다.
두 사람 사이로 보이는 벽에 걸린 볼록 거울과 그림 왼쪽 구석에 있는 나막신, 의자 꼭대기에 있는 용 모양 장식과 아래쪽 정면에 위치한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까지. 이 책에서는 쉽게 놓치거나 눈여겨 보더라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지나갈 다양한 소재를 자세하게 분석하여 작품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음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도>. 흔히 '보스'로 통하는 이 화가는 낙원이든 지옥이든 괴상하고 끔찍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한데, 세부적인 부분까지 눈에
담으려는 관람객들 때문에 보스의 작품 앞은 언제나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룬 <지옥도>는 스스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지옥에서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하프 연에 꿰뚫리고 류트의 목에 매달린 채 채찍질을 당하거나 사냥개
먹잇감이 되기도 하고 암퇘지의 색욕에 시달리는 인간도 있으며 새처럼 생긴 괴생물에게 통째로 먹히는 인간도 눈에 띈다. 그저 기이하고 어찌 보면
비위 상하는 여러 장면에 내포된 의미를 알아가며 보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생지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손끝까지
저릿했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남편이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탄 그네를 밀어주는 모습이 담긴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이 작품 역시 다분히 비밀스러운
구석 때문에 명화 서적에 종종 등장하는 작품이다. 남편을 등지고 그네를 타는 아내의 시선은 발치에 있는 덤불로 향한다. 실수인 듯 발로 차올려
하늘로 날아오른 신발은 아내가 불륜으로 순결을 잃었음을 뜻하고 그 상대는 볼 것도 없이 덤불 속에 있는 젊은 남성임을 알 수 있다. 황홀한 어찌
보면 언뜻 광기마저 스치는 젊은 남성의 눈빛과 장난스러우면서도 도도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의 추잡한 밀회를 상상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생기 넘치는 젊은 아내의 뒷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인물이 워낙 부각된
작품이라 숨겨진 장치가 없을 것 같지만 눈을 끄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애완견과 여러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진
않지만, 이 역시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니 한결 재밌게 느껴졌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그저 순수하게 명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귀동냥으로 이런 전문 지식을 얻으며 명화를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기에 명화 한 점, 해설 한 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저명한 명화 전문가를 모시고 세계 곳곳에 있는 명화를 찾아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 전체적인 작품 해설과 화가에 관한 설명도 좋지만, 모르고 보면 전혀 알 수 없는 명화 속 숨은 요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더 뜻깊은 여정이었다. 책에 실린 작품의 선명한 해상도와 꼼꼼한 설명 덕분에 몇 배는 더 즐거웠던 시간. 『가까이서 보는 미술관』! 이런 좋은 책을 만나다니 정말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