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살인사건 -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
김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나 내 취향을 저격하는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신간! 이젠 휴머니스트 책이라면 일단 믿고 볼 정도의 애정에 이르렀는데 이번 책도 역시 대단하다! 조선사 연구자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검안을 풀어내 책으로 꾸린 <100년 전 살인사건>. 어떻게 이런 책을 출간할 생각을 했는지 감탄에 또 감탄. 이 책을 통해 기존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조선의 새로운 일면을 만났다. 자, 그럼 100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 조사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 '검안'이란 무엇인가?
 조선 시대,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 조사관이 시신을 검시하고 관련자를 취조한 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모든 정황을 세세하게 기록한 문서 

  <100년 전 살인사건>에는 검안을 토대로 15개의 사건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검안에는 검시 과정과 사인, 사건 현장 조사, 용의자와 목격자 심문, 전반적인 사건 정황 등 사건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지독할 정도로 세세하게 담겨 있다. 그 시절에도 '검시'를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데, 시신을 개복하여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현대의 검시와는 좀 달랐다. 조선 시대의 검시는 주로 낯빛, 상흔 그리고 조사관 사이에 전해지는 일종의 노하우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흉기로 사용됐던 칼은 빨갛게 달군 후 강한 식초를 뿌리면 핏자국이 선명히 드러난다거나 식초와 술지게미 등을 이용해 상처 자국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법과 같은 과학적인 노하우부터 죽은 자의 뼈에 떨어트린 피가 스며들면 친자로 인정하는 말도 안 되는 친자 판별법까지 조선 시대 조사관의 노하우는 상당히 다양했다. 예나 지금이나 '감'과 '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 그 시절에도 조사관이 확신을 품고 재차 조사하여 미궁에 빠질뻔한 사건을 해결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범죄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일까? 그 일련의 과정이 지금과 너무 비슷하여 세월의 격차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풍성한 볼거리와 다채로운 사연
 
 <100년 전 살인사건>에는 실제 사건 조사 일지(검안)와 그 시절 생활상 혹은 조사 과정 등을 그린 그림 자료가 여럿 실려 있어 지루할 새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살인사건이 벌어진 원인과 사건의 진상! 부인을 때려 죽이고는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꾸민 남편, 여인을 겁탈하려다 패 죽이고 여우인 줄 알았다는 어린 양반놈, 남편을 죽인 딸을 용서치 못하고 단죄한 친정엄마, 아이를 납치해 간을 빼먹은 나환자 등등,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애끓는 유가족의 고통,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여러 이유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의 변명까지 어쩌면 현대와 이렇게 판박이인지! 범죄 수법과 죄를 면하려는 꼼수까지 너무나 비슷하여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시절에도 술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핑계로 감형을 청하는 철면피들이 있었다니 더 말할 필요 없을 듯. 말도 안 되는 사건 사고가 즐비한 세상이라 이젠 심신미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데 조선 시대에도 그런 인간이 있었다니... 에효, 한숨만 나온다.

 

 

 

 

 살인사건 조사 일지가 이렇게 재밌을 거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검안'에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과 사고방식, 그 시절의 시대상까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가 한가득하다. <100년 전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조선의 실상은 꿈틀대며 살아 숨 쉬는 조선, 그 자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그 역동적인 흐름과 내밀한 인간사에 푹 빠져 조선의 사건 현장을 한참 동안 헤매다 힘겹게 현실로 돌아왔다.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를 엿보는 특별한 역사 수업.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다들 놓치지 않고 꼭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으니 2편을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을 터이니, 후속편도 꼭 출간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