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판으로 본 세계사>의 서평을 적기에 앞서, 우선 저자를 소개할까 한다. 이 책은 저자에 대해 알고 읽어야 글에 담긴 깊이와 진정성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박형남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출발해 30년 넘게 재판을 하고 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고 분쟁 이면에 존재하는 원인을 헤아리는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유가족, 직장 동료에 대한 면접과 주변 조사 등 심층 분석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적 부검’을 사법사상 처음 실시하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공정거래와 노동 행정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 재판장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의 꿈은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평소 역사서와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1년 전부터 시민과 학생, 후배 법조인에게 세계사에서 유명한 재판을 알리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적 오판과 정의로운 재판을 되돌아보면서, ‘법치주의는 무엇이고,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떻게 퍼져나갈 수 있었는가’ 살펴보았다. 재판과 사법에 관한 이야기가 법정 밖으로 나가 세상 속으로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그렇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는 현직 판사의 눈으로 본 15가지 세기의 재판에 관한 글을 엮은 책이다. 기원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로마의 카틸리나 재판부터 '미란다 원칙'이 생긴 계기가 된 1966년 미국 미란다 재판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15편의 재판 이야기로 누비는 세계사 여행은 상당히 독특하고 흥미롭다. 영화, 그림, 인물 혹은 시대를 중심으로 쓴 세계사는 읽어봤지만, 재판을 통한 세계사는 좀 생소해서 어렵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을 뿐! 여러 사진과 참고 문헌에서 발췌한 자료 덕분에 한결 이해하기 쉬웠고 작가(판사님이라고 해야 하려나? ^^;)의 꼼꼼한 설명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술술 넘어간다. 그러니 다들 걱정하지 말고 선택하시길!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 이야기를 살펴보자.
[마르탱 게르 재판 (1560, 프랑스)], 예전에 지식인의 서재 정여울 작가 편에서 추천도서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소개해줘서 나중에 꼭 읽어보자 생각했는데, 그 마르탱 게르가 실존 인물일 줄이야! 대체 어떤 사연이었을까? 사기꾼 아르노는 자신을 마르탱이란 인물과 착각한 사람들 덕분에 마르탱에 대해 알게 된다. 듣자 하니 예쁜 아내와 자식을 팽개치고 집을 나갔다는데, 재산까지 꽤 있다더라. 이렇게 구미가 당기는 건수가 또 있을까! 아르노는 그 길로 작업에 착수한다. 마르탱 행세를 하는 아르노에게 가족마저 끔뻑 속아 넘어갔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마르탱의 부인, 베르트랑드까지 속아 넘어간다. 두 사람은 금술 좋은 부부로 살며 자식까지 낳게 되는데, 재산 문제로 얼굴을 붉힌 숙부가 아르노를 가짜 마르탱이라고 의심하여 고발한다. 재판이 한창 진행될 무렵, 자신의 행세를 하는 놈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진짜 마르탱이 고향에 등장하면서 모든 사기 행각이 밝혀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과연 부인인 베르트랑드가 정말 아르노가 가짜라는 걸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아르노는 교수형 당하는데, 베르트랑드를 정말 사랑했는지 죽기 직전에도 마르탱에게 아내를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재판 이야기에 로맨스와 사기가 더해지니 인기 드라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이 책은 단순한 흥밋거리에서 끝나지 않고 마르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법원은 아르노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을 것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베르트랑드가 숨긴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자유롭게 추론해본다. 타고난 사기 기질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다가 결국 호된 대가를 치른 아르노의 사연은 오래도록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다.(심지어 이건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아니라고 한다.)'라는 준법정신이 아닌, 철학적 삶을 끝까지 지키려는 신념으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세속 권력이 교회의 권위보다 우월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다가 사형당한 토머스 모어, 유능한 변호사의 몹쓸 도움으로 가벼운 죄만 인정받아 수년 후 가석방됐지만 도박판에서 칼에 맞아 죽은 미란다의 얘기까지 '야사'라고 할 만한 '사건 뒷이야기'까지 담겨 있어 일요일 아침 '서프라이즈'를 보는 듯 즐거웠다. 그 시대의 상황과 정서가 법에 미쳤던 영향과 왜 그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도출하며 얼마나 황당하고 때론 얼마나 명쾌한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해주니 끝이 궁금하여 읽는 내내 묘한 긴장감마저 느끼며 집중했던 책. 재판으로 생긴 역사지만 결국은 역사에 의해 재판도 영향을 받는 불가분의 관계를 실감하며 앞으로 재판이 향해야 할 바른길과 역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봤던 시간. 문득, 한국에는 어떤 억울한 판례와 명쾌한 판례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으며 저자의 다음 책으로 <재판으로 본 한국사>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