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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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한 밤을 자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당신은 희영의 여린 얼굴을 떠올렸다.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p.60


『몫』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엔 내가 받아야할 댓가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지 일러스트의 커다란 바위에 붙은 건 개미머리인지, 아니면 뭔가 돋아난건지 알 수 없었는데, 책 표지를 펼쳐보고서 선인장이란 걸 알았어요. 표지의 뒷면에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콘크리트와 선인장이 의미하는 바가 약간은 짐작이 되네요. 


이 소설은 특이하게 주인공 해진을 '당신'이라 부르는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해진은 우연히 대학에서 교지를 함께 만들던 편집부 선배 정윤과 마주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해진은 정윤을 보며 서로의 변화를 느낍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해진은 옛 생각을 떠올려요.


자신에 가득 찬,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그때의 당신은 생각했다. 정윤이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모습을 볼 때, 당신은 매혹되었으나 동시에 옅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p.10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는 말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 주는 일에 가까웠다. p.11

1996년 대학시절 해진은 정윤을 만나기 전, 교지에 실린 정윤의 글을 먼저 보았었죠. 폭력 사태에 대한 정윤의 견해와 그녀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건 아니었지만 그 능력에 동경과 부러움을 느꼈어요.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p.13

하지만 그런 정윤에겐 희영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희영은 날카롭고 유려한 문장으로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고요. 정윤은 해진의 글은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희영의 글에 대해선 매번 비판했어요.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 갔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p.32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p.58


두께가 두껍지 않은 미니북이라 더 꼼꼼히 봤습니다.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일러스트가 페이지 중간 마다 시선을 멈추게 했어요. 일러스트의 의미도 차분히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과 여성이 받는 억압과 학대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뚜렷이 나와요.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과 기지촌 여성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고요. 희영의 말대로 여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어요. 상처를 열어만 놓고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약자에 대한 사회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재능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망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이래로 계속 이어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공감을 갖게 하네요. 


시대적 배경과 무거운 주제 탓에 작가님의 연령대를 착각했습니다. 사진 속의 화사하게 웃는 인상과 글은 많이 다르네요. 젊은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내용이었을 텐데 잘 풀어내셨어요. 작가 인터뷰에서 소설에 대한 정의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은영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내 오래된 친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랑, 내 몸.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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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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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활력과 의욕, 열정, 끈기를 갖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이기 때문이다. P.24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을 때, 종교가 없는데도 기도를 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들어줄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으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예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없는 삶]에서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홀로 버티며 살아갈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미국은 1950년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채 5%도 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30%까지 증가했다고 합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성은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는 황금률의 논리가 작용한다고 해요. 


무신론자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지만 관대함, 자원봉사, 자선기부에는 박한 편이라고 합니다. 예상과 달리 미국 감옥에서 무신론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0.5%도 안된다고 해요. 



보이지 않는 신이 부여한 규칙들에 그냥 복종하는 것이 도덕성일 수 있을까요? 

도덕성은 타인들과의 경험과 우리의 인간성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P.64


저자는 세계 상위 국가들이 대부분 무종교에 가깝고 하위 국가들은 종교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위 국가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 건 흥미롭네요. 미국에서 경제력이 나은 주에 무신론자 비율이 높다고도 합니다. 무종교가 늘어나는 요인은 종교와 보수적 우파 정치가 결합하는 것에 대한 반발, 카톨릭사제들의 소아성애 스캔들, 동성애 등이라고 해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흔히 음악이나 문학, 자연, 연극 혹은 축구를 그들의 종교라고 말하는 주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런 세속적이고 초자연적이지 않은 것들도 높은 수준의 의미와 신성함을 제공해 준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P.178 


무종교에선 자녀나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갖는 취미나 단체 활동 등으로 의식과 전통을 대신한다고 해요. 동양의 영성에 호기심을 느껴 도교 승려가 되었던 사람의 경우가 소개됩니다. 그는 승려를 그만두고 록음악에 빠졌다가 인본주의에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자신을 완전히 깨달은 영혼의 스승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고 어떤 종교든 인간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창조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거죠.P.226  


위기의 순간, 어려울 때, 힘들 때, 사람이 시련을 견디기 위해 종교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종교 없이도 기적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신이 알아서 해 주실 거라고 믿는 게 제 생각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이런 사고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책임을 떠넘기고 믿어 버리면 그 가능성은 사라져 버리죠. P.251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신을 믿거나 신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슬프거나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기본적이고 이성적인 문제해결 메커니즘을 종교가 있는 사람들보다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다룰 때도 더욱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P.281



삶은 힘들 때도 있고 평탄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유한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삶과 그 삶이 가진 소용돌이의 핵심에는 바로 삶의 유한성이 있다. P.339


저자는 반복해서 종교가 없다고 도덕심도 없이 살지는 않는다고 강조해요. 무종교라도 기본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있고 오히려 현재에 감사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요. 마냥 의지처를 찾기보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 답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현실에 충실히 사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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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의 섬 (4종 중 1종 표지 랜덤) - 개정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이정호 표지그림 / 알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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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이라면 무작정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색색의 모래 벼랑과 경이로운 바다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고 그 고요함과 잔잔하게 일렁이던 물결과 아늑함에 나는 넋을 잃었으며 바람이 몰아칠 때는 그 난폭함에 두려워 떨었다. 나에게 섬은 외지고 수수께끼 같고 강렬한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특별한 곳이었다. P.18-19


칼라에 익숙해서 흑백영화나 흑백 사진을 보면 처음엔 괜찮다가 몇분 지나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요. 그런데 선천적인 완전 색맹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 있고 [색맹의 섬]은 그 섬의 여행기라는 소개가 흥미롭네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올 법한,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섬 이야기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작가 올리버 색스가 썼다니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책 표지부터 흑백의 배경에 글자만 핑크색으로 되어 있어요. 색맹이라는 주제에 맞게 세심히 고른 느낌이 듭니다.


마서즈비니어드란 섬은 청각장애의 섬으로 듣는 사람이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수화로 대화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색맹의 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마침 선청적 색맹이 인구의 거의 10퍼센트라는 핀지랩 섬에 대해 듣고 그곳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빛깔이 가리키는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없어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 말이다. P.27  

그 여행에 친구 크누트가 동행합니다. 크누트는 정상 시력의 10분의 1정도지만 밤에는 하늘의 별을 정상인보다 더 또렷이 보는 흑백사진작가라니 아이러니하죠. 

섬 사람들은 낮에 일을 하기 힘들고 칠판의 글씨를 볼 수 없어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 많고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별 다른 직업이 없다고 합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교육을 받고 돌아온 제임스는 자신이 이방인이 된걸 깨닫죠.




나한테 색깔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렸을 때는 색을 볼 수 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색이란 함께 자라고 성장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의 뇌, 온몸,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과 함께 말이에요. P.92


크누트의 말로는 색맹은 색의 농도로 색을 구별하고 밤에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다른 감각이 발달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직업에도 제한이 있지요.  

색맹의 섬은 섬 주민 일부가 색맹일 뿐 완전한 색맹의 섬은 아니예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고립되거나 어려움을 겪지만 이곳에선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지요.


그러한 고립이 존재해야 했을까? 전 세계의 색맹인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교류하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새로운 네트워크 이 사이버공간이 진정한 색맹의 섬일 것이다. P.117


괌의 주민들에게 옛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리티코-보딕이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나와요.  


그는 우리가 두 번째 왔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곧 또 오세요." 그가 명랑하게 말했다.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만나면 또 반가울 겁니다." P.203


또 괌에는 뱀이 변전소 환기 통로로 들어가 정전을 일으키고 그 뱀 때문에 새가 사라졌다니, 믿기 힘든 일이지만 모두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는 로타 섬에서 무려 5억 년을 살아남은, 쥐라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소철과 마주합니다.   


머나먼 과거의 에덴동산. 나는 그 안에 들어가  나무를 만져보고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지나간 시간처럼 닫혀 있을 뿐이었다. P.209


이 책은 폴페이, 미크로네시아, 핀지랩, 괌, 로타를 방문하여 그곳의 풍토병, 문화, 역사, 동식물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핀지랩과 폰페이의 색맹, 괌과 로타의 신경퇴행성 장애가 소개되고 그 외 다른 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 나와요. 또 다른 색맹의 섬, 덴마크의 푸르섬도 있다고 하고요.  


후반부 1/3은 이전 내용에 대한 상세한 주석입니다. 크누트가 눈의 막대세포만으로 별을 볼 수 있고,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은 다양한 사투리와 언어들로 인해 다재다능한 언어학자가 되었다고 하고요. 태평양 섬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됩니다. 


1990년 대에 쓴 책이라 아니라 더 오래된 듯한 기분이 드는 내용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다양한 섬의 독특한 문화, 과학적, 역사적 배경, 동식물에 대해 다루는데 마치 탐험기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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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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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어떤 삶을 살건 고독하다. p.56



가끔 최연소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화제가 되는 뉴스를 접하곤 했습니다. 아직 가능성이 무한한 젊은 나이에 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앞으로의 미래도 밝고 많은 작품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아쿠타가와상의 수상자가 63세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당당한 제목, 책 소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 자유다, 자립이다. 더는 사랑에 무릎 꿇지 마라 그래. 사랑을 미화시켜선 안 돼. 인생 금방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p.92'는 생기 넘치고 도발적인 문장을 노년의 작가가 집필했다는 건 충격적이기까지 하네요. 인생의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고 생각되는 노년에도 아직 해야할 것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큼직하고 가슬가슬한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 눈앞에 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목소리는 천장으로 흐르고 초점 없는 눈동자가 방 안을 한 바퀴 빙 훑는다. p.7


모모코는 16년을 함께 했던 개가 세상을 뜬 후로 천장과 마루 밑에 사는 쥐들의 소란을 느낍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그녀는 일상 속에서 혼자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놀라곤 해요. 젊은 시절 활기차게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던 길을 걷다 자신의 나이를 깨닫습니다.


그 무렵 모모코 씨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을까. 

하물며 혼자 늙어 갈 것임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p.31



모모코 씨는 자신의 늙음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딸애가 늙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만큼은, 제발 그 아이만큼은 늙지 않게 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p.39

과거는 자의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고. 

그럼에도 자기가 있을 곳은 과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p.71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고 평소 호언장담해 왔다. 

하지만 한걸음 앞으로 다가온 쇠약함은 두렵다.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게 죽음보다 더 무서워. p.99


작가는 자신과 같은 연령대에 남편을 사별한 모모코 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녀는 딸이 나이드는 모습을 슬퍼하고 딸을 조종하려 든 것과 자신이 동경하던 걸 강요한 걸 미안하게 느껴요. 오빠에 비해 차별받았다고 불평하는 딸에 대한 애틋함과 소식이 드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남편과 관계에서 느낀 따뜻한 애정,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풍깁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한 솔직한 기분은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지문 너머로 들이치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끼는 것처럼 아직도 새로운 감각들을 알아가는 흥분이 자리합니다. 늙음도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고 미지의 길이라는 생각이 철학처럼 다가오네요.



어쩌면 나 아직 죽지 않을지도 몰라. 늙음이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가 아닌가.

 나이를 먹었으면 응당 이렇게 처신해야지, 라고 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인간을 늙게 만든다. p.144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강하다'는 거예요. 작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과 생동감, 개성, 의지까지 어느 것 하나 약한 부분이 없습니다. 솔직히 나이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젊은 사람이 쓴 글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어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이전부터 상당한 문장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원래 뛰어난 재능이 있었겠지요. 추리소설을 쓰기에도 어울리는 문체와 구성입니다. 

그리고 사투리가 많아서 번역에 무척 힘드셨겠어요. 신경을 많이 쓰신 덕분에 읽은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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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말 걸지 않아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법
기무라 다카시 지음, 이혜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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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능숙하게 대화하는 것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기 위한 소통능력이 더 중요하다. 

대화란 본래 나와 상대를 잇는 소통이며 오히려 말을 잘하고 못하고는

 '기술'의 영역에 해당한다. P.7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지키며 사는 중입니다. 말을 할수록 왠지 주위 사람들에게는 점수가 깎이는 기분이 들어서요. 상대방이 대화를 이어나가게 할 능력은 되지 않고 그저 가끔 추임새만 넣고 고개만 끄덕여 대화가 재미없습니다. 

[애써 말걸지 않아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법]은 상대가 술술 말하게 만들고 수긍할 수 없는 말도 받아넘기는 기술 등 초실용적인 대화법을 가르쳐준다고 소개되어 있네요. 침묵보다 더 나은 대화의 기술이 기대되었습니다.


Prologue 말을 잘하지 않아도 당신의 대화는 즐거울 수 있다

CHAPTER 1. 애써 말 걸지 않아도 저절로 시작되는 대화의 원칙

CHAPTER 2. 상대가 말을 걸게 만드는 현장 테크닉 10

CHAPTER 3.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리액션

CHAPTER 4.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호감형 대화의 기술

CHAPTER 5. 언제 어디서든 대화가 끊이지 않는 법

CHAPTER 6. 부담을 내려놓고 무심코 웃게 되는 대화법

Epilogue 일단 시도하면 변화가 시작된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어색함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가가게 합니다.  의외로 소심한 사람이 많으니 공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해요. 눈을 마주쳐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내용에서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가 커다란 눈으로 순진한 표정을 지어 상대를 속이는 장면을 예로 들어 쉽게 이해되네요.



눈동자가 커질수록, 더 반짝거릴수록 상대는 더 호감을 느끼고 말을 걸어올 가능성도 높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애매하고 바쁜 척이라도 해야 덜 어색할 것 같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이겠지만 그래서는 대화가 시작될 수 없다. P.29      

가장 중요한 첫인상을 결정짓는 첫 만남에서 0.034초 안에 판단이 이뤄진다고 해요. 첫 만남에서는 취향과 개성을 미뤄두고 가까워진 후에 서서히 보여주라는 말도 수긍하게 됩니다.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신호를 보내는 3-3 접근법이 솔깃하게 들려요. 3단계로 세 번 눈을 마주치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눈길이 마주치게 한답니다. 여러 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호감을 일으킬 수 있고 같은 자리에서 계속 눈이 마주치면 부담스럽다고 해요. 상황을 상상하니 이해되네요. P.45


좁은 장소에선 턴 앤 게이즈라는 다른곳을 바라보다 의도적으로 몸을 돌려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방법을 쓰면 된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이 대화 중일때 은근슬쩍 끼어드는 방법, 상대의 왼쪽에 서기, 소품이용 등도 유용해 보여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시선 처리, 앉는 방향에 신경을 조금 더 쓰면 상대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하게 될 때는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공부하는 학생처럼 하라고 합니다. 

사람은 가르쳐달라거나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남들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P.125



상대와 의견 차이가 있어 곤란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도 껄끄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또 중요한 건 서로 생각이 달라도 여전히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거라고 해요. 

상대의 의견을 수긍할 수 없을 때는 상대의 말을 부정하는 대신 

'선 수용 후 반대'공식을 적용하도록 하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단 상대의 논지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왜 상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때까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P.188 


이 책은 대화를 시작하는 것부터 마무리 짓는 인사법까지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알려줘요. 행동, 눈빛, 자세, 옷차림 등 기본적인 것부터, 상대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소소한 팁들도 많아요. 실행이 바로 되기는 어려울테니 곁에 두고 하루를 마감하며 내 대화 방식은 어땠나 되돌아보고 수정하면 되겠어요. 실전에 잘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좋았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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