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의 섬 (4종 중 1종 표지 랜덤) - 개정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이정호 표지그림 / 알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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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이라면 무작정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색색의 모래 벼랑과 경이로운 바다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고 그 고요함과 잔잔하게 일렁이던 물결과 아늑함에 나는 넋을 잃었으며 바람이 몰아칠 때는 그 난폭함에 두려워 떨었다. 나에게 섬은 외지고 수수께끼 같고 강렬한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특별한 곳이었다. P.18-19


칼라에 익숙해서 흑백영화나 흑백 사진을 보면 처음엔 괜찮다가 몇분 지나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요. 그런데 선천적인 완전 색맹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 있고 [색맹의 섬]은 그 섬의 여행기라는 소개가 흥미롭네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올 법한,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섬 이야기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작가 올리버 색스가 썼다니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책 표지부터 흑백의 배경에 글자만 핑크색으로 되어 있어요. 색맹이라는 주제에 맞게 세심히 고른 느낌이 듭니다.


마서즈비니어드란 섬은 청각장애의 섬으로 듣는 사람이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수화로 대화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색맹의 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마침 선청적 색맹이 인구의 거의 10퍼센트라는 핀지랩 섬에 대해 듣고 그곳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빛깔이 가리키는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없어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 말이다. P.27  

그 여행에 친구 크누트가 동행합니다. 크누트는 정상 시력의 10분의 1정도지만 밤에는 하늘의 별을 정상인보다 더 또렷이 보는 흑백사진작가라니 아이러니하죠. 

섬 사람들은 낮에 일을 하기 힘들고 칠판의 글씨를 볼 수 없어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 많고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별 다른 직업이 없다고 합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교육을 받고 돌아온 제임스는 자신이 이방인이 된걸 깨닫죠.




나한테 색깔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렸을 때는 색을 볼 수 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색이란 함께 자라고 성장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의 뇌, 온몸,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과 함께 말이에요. P.92


크누트의 말로는 색맹은 색의 농도로 색을 구별하고 밤에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다른 감각이 발달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직업에도 제한이 있지요.  

색맹의 섬은 섬 주민 일부가 색맹일 뿐 완전한 색맹의 섬은 아니예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고립되거나 어려움을 겪지만 이곳에선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지요.


그러한 고립이 존재해야 했을까? 전 세계의 색맹인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교류하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새로운 네트워크 이 사이버공간이 진정한 색맹의 섬일 것이다. P.117


괌의 주민들에게 옛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리티코-보딕이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나와요.  


그는 우리가 두 번째 왔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곧 또 오세요." 그가 명랑하게 말했다.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만나면 또 반가울 겁니다." P.203


또 괌에는 뱀이 변전소 환기 통로로 들어가 정전을 일으키고 그 뱀 때문에 새가 사라졌다니, 믿기 힘든 일이지만 모두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는 로타 섬에서 무려 5억 년을 살아남은, 쥐라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소철과 마주합니다.   


머나먼 과거의 에덴동산. 나는 그 안에 들어가  나무를 만져보고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지나간 시간처럼 닫혀 있을 뿐이었다. P.209


이 책은 폴페이, 미크로네시아, 핀지랩, 괌, 로타를 방문하여 그곳의 풍토병, 문화, 역사, 동식물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핀지랩과 폰페이의 색맹, 괌과 로타의 신경퇴행성 장애가 소개되고 그 외 다른 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 나와요. 또 다른 색맹의 섬, 덴마크의 푸르섬도 있다고 하고요.  


후반부 1/3은 이전 내용에 대한 상세한 주석입니다. 크누트가 눈의 막대세포만으로 별을 볼 수 있고,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은 다양한 사투리와 언어들로 인해 다재다능한 언어학자가 되었다고 하고요. 태평양 섬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됩니다. 


1990년 대에 쓴 책이라 아니라 더 오래된 듯한 기분이 드는 내용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다양한 섬의 독특한 문화, 과학적, 역사적 배경, 동식물에 대해 다루는데 마치 탐험기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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