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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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한 밤을 자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당신은 희영의 여린 얼굴을 떠올렸다.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p.60


『몫』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엔 내가 받아야할 댓가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지 일러스트의 커다란 바위에 붙은 건 개미머리인지, 아니면 뭔가 돋아난건지 알 수 없었는데, 책 표지를 펼쳐보고서 선인장이란 걸 알았어요. 표지의 뒷면에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콘크리트와 선인장이 의미하는 바가 약간은 짐작이 되네요. 


이 소설은 특이하게 주인공 해진을 '당신'이라 부르는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해진은 우연히 대학에서 교지를 함께 만들던 편집부 선배 정윤과 마주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해진은 정윤을 보며 서로의 변화를 느낍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해진은 옛 생각을 떠올려요.


자신에 가득 찬,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그때의 당신은 생각했다. 정윤이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모습을 볼 때, 당신은 매혹되었으나 동시에 옅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p.10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는 말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 주는 일에 가까웠다. p.11

1996년 대학시절 해진은 정윤을 만나기 전, 교지에 실린 정윤의 글을 먼저 보았었죠. 폭력 사태에 대한 정윤의 견해와 그녀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건 아니었지만 그 능력에 동경과 부러움을 느꼈어요.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p.13

하지만 그런 정윤에겐 희영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희영은 날카롭고 유려한 문장으로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고요. 정윤은 해진의 글은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희영의 글에 대해선 매번 비판했어요.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 갔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p.32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p.58


두께가 두껍지 않은 미니북이라 더 꼼꼼히 봤습니다.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일러스트가 페이지 중간 마다 시선을 멈추게 했어요. 일러스트의 의미도 차분히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과 여성이 받는 억압과 학대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뚜렷이 나와요.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과 기지촌 여성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고요. 희영의 말대로 여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어요. 상처를 열어만 놓고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약자에 대한 사회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재능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망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이래로 계속 이어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공감을 갖게 하네요. 


시대적 배경과 무거운 주제 탓에 작가님의 연령대를 착각했습니다. 사진 속의 화사하게 웃는 인상과 글은 많이 다르네요. 젊은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내용이었을 텐데 잘 풀어내셨어요. 작가 인터뷰에서 소설에 대한 정의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은영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내 오래된 친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랑, 내 몸.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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